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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May 27. 2021

로도스(RHODES) 인연

로도스를 아시나요?



  마음이 지칠 때 떠올리면 웃음 지어지는 곳이 있나요? 나에게 있어 그곳은 로도스입니다. 이름도 낯선 로도스(Rhodes)는 나에게도 이름 모를 섬이었다. 15년 전 친구와 여행 중 터키에서 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해 들른 장소였을 뿐인데 유럽여행을 얘기할 때면 무용담처럼 늘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휴학을 했다. 학생이던 나와 친구는 돈은 없었지만 시간은 많았다.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 오래 여행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는 저렴한 동남아 어느 항공사의 유럽행 항공권을 끊었고, 유레일패스는 치밀한 일정으로 계획하여 최소한의 기간만을 구입하였다. 영국에 도착한 뒤 저가항공을 타고 불가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가서 본격적인 유럽여행을 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복잡한 여정 중 들리게 된 곳이 '그리스의 로도스'였다. 낯선 섬에 가게 된 것은 돈을 아끼고자 한 휴학생의 꼼수 어린 노력이었다.


로도스에 도착하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던 날, 터키 남부의 마르마리스란 휴양도시에서 로도스로 가게 되었다. 로도스에 대해 아는 것은 마르마리스에서 쾌속 페리로 두 시간이 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크레타로 가는 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출발 전 챙겨 온 로도스 숙소 한 곳의 전단지가 전부였다. 10월의 어느 날 아침, 요트가 가득하던 터키의 세련된 휴양도시에서 로도스로 출발했다. 두 시간 뒤 내린 로도스의 항구는 휑하였다. 파란 물결과 쨍한 햇빛만이 나를 맞았고 지도나 안내 센터도 없었다. 나와 친구는 무거운 짐을 옆에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시커멓게 그을린 그리스 아저씨가 다가와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로 가자고 하였다. 별 다른 선택지가 없던 나와 친구는 아저씨를 따라갔고 그 숙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손에 챙겨 온 전단지 속 숙소는 어떤지 궁금했다.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얼렁뚱땅한 영어실력으로 다른 곳에 가본다고 했다. 지도 한 장 없이 모험이 시작되었다.


울퉁불퉁한 돌길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 골목 저 골목 걸었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전단지 속의 숙소를 한참만에 찾았지만 사진과 다르게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데다 저렴한 방은 이미 게스트가 차 있었다. 더운 날씨에 이미 한참을 헤매고 온 뒤였다. 돌길을 달달거리며 끌려오던 캐리어도 힘들어 보였다. 다음 행선지인 크레타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페리 일정에 맞추어 무조건 4일은 이 섬에 머물러야 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지만 나는 원래도 불안이 많은데 지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무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 관광객이 있을만한 곳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분수가 있는 조그만 광장에 도착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자 여행 시작부터 소극적인 모습으로 내 속을 태웠던 친구가 아까 그 아저씨를 찾아오겠다고 나에게 짐과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항상 마음 급한 내가 무엇이든 앞장서 해 와서 답답하고 화가 났었는데 친구도 여행기간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거 같다. 길도 잘 못 찾고 의사소통도 서툴 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되었지만 친구의 용기가 고마웠다. 친구는 떠났고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초조했다.  

   

  나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광장에서 겉으로는 여유로운 관광객 인척 분수 담장에 앉아 있었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불안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친구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알다시피 15년 전 해외여행은 핸드폰이 무용지물이던 때였다.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 친구는 숙소의 주인아저씨와 함께 달달거리는 낡은 티코를 타고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기다리는 내 마음에는 한차례 태풍이 지나갔지만 고작 20여 분만의 일이었다.


  우리 셋은 모두가 행복했다. 주인아저씨는 호객에 성공했고 우리는 안전히 머물 곳을 찾았다. 우리가 4일을 머물겠다고 하자 아까보다 더 좋아 보이는 별채를 보여주며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게 해 주었다. 개인 화장실과 부엌도 있었다. 방안에는 다리를 벌린 채 우뚝 서있는 남자 동상이 우리는 맞았는데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로도스 거상이라고 했다. 그 모습은 로도스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로도스에서 만나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없던 우리는 숙소 근처 올드타운을 산책하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맥주 한 캔을 먹는 것이 일과였다. 그날도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우리 방 문 앞에 커트머리의 동양 여인이 "저기" 하며 말을 걸었다. 한국말에 서로 놀랐며 반가워했다. 로도스에서는 동양인 관광객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말을 건 멋진 커트머리 언니는 로마에 살고 있으며 로도스에 놀러 왔다고 했다.


숙소 주인이 자신을 픽업하며 숙소에 이미 코리안 걸 두 명이 있다고 하여 따라왔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숙소 본채에 또 한 명의 한국 여인이 있었다. 치위생사 일을 그만두고 온 긴 머리에 쿨내를 풀풀 풍기는 언니였다. 동양인도 드문 곳에서 대한민국 여자 네 명이 모였다.


 우리를 픽업하여 이 인연을 만든 숙소 아저씨의 능력이 대단했다. 우리는 마트에서 장을 봐온 오징어와 뻣뻣한 유럽 대파로 파전을 만들어 먹으며 이 인연을 ‘로도스 핑클’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저 여자가 네 명이라 빌려온 이름이지만 진정 예쁜 핑클이 아니더라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여기가 로도스’인 것을. 로도스에서 우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로도스는 넓은 섬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중세 성곽이 있는 올드타운으로 로도스의 일부였고, 반대편에는 공항도 있고 유명한 아크로폴리스도 있다고 했다. 커트머리의 멋진 왕언니는 책을 준비하는 작가였는데 섬의 반대편에 갔다가 인적 없는 멋진 해변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자연인이 되어 수영을 했다고 한다.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한다. 나는 왕 언니의 이야기도, 직업도 멋져 보였다. 그때는 한 직장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는데 일을 그만두고 여행 온 쿨내 풀풀 둘째 언니도 용기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언니들의 나이를 지나고 보니 학생 둘이 500만 원으로 3개월 넘는 여행을 한다고 이곳까지 온 것도 무모하도록 멋있어 보였을 것 같다.



로도스에서 아테네까지



  로도스 핑클은 각자 다른 행선지로 갔다가 일주일 뒤 다들 다시 아테네로 간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서 만나자며 이메일을 교환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핸드폰은 무용지물인 때였으니 말이다. 나와 친구는 며칠 뒤 새벽 배를 타고 크레타로 갔고 또 며칠 뒤 아테네에 도착했다. 크레타에서의 며칠은 꽤 힘들었고 도착한 아테네는 갑자기 너무 추웠다. 추운 날씨를 피해 들어간 식당에서는 고가의 팁을 요구해서 나는 동양인 학생을 놀려먹는 것이라며 혼자 울그락붉그락 말도 못 하고 화가 난 상태였다. 그래도 숙소는 깔끔한 곳으로 잡은 터라 일찌감치 쉬자는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개인이 침대만 빌려 쓰는 형태인 도미토리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빈 침대에 게스트가 또 한 명 왔는지 누가 방문에 노크를 했다.   


  “Yes~ come in” 하며 문을 열자  놀랍게도 커트머리 멋진 왕언니가 서 있었다. 우리는 다시 놀란 눈으로 서로를 얼싸안았다. 수많은 호스텔 중 이 방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쿨내 풀풀 둘째 언니에게도 연락하여 같이 아테네를 여행하였다.


  함께 파르테논 신전을 오르고 디오니소스 공연장에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해외생활에 익숙한 왕언니를 앞세워 현지인들이 가는 재래시장에서 푸짐한 그릭 샐러드와 무사카를 먹었고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훌륭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언덕으로 용기 있게 밤마실도 다녔다. 로도스 핑클은 아테네에서 다시 뭉쳤고 우리에게 아테네는 별것 없음에도 특별했다.
 
   여행에서 만난 한 명의 인연이 우리에게 여행의 묘미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같은 대답을 했다. 그건 ‘변수’였다. 워낙 준비성이 철저한 나는 긴 일정의 여행을 엑셀로 만든 빽빽한 계획표를 들고 떠났다. 그러나 여행의 날들은 엑셀표와 같을 수 없었다. 나의 여행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서, 파리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억이 될 줄 알았다. 이름도 모르던 섬, 로도스가 내 마음속에 알토란처럼 남을 줄 몰랐다. 다음 행선지를 위한 징검다리였던 로도스가 나의 추억의 주춧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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