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몸풀기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철학자는 누구일까? 맞다, 데카르트다. 그렇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삼국을 통일한 나라는 어디일까? 신라! 정답이다. 아마도 이 두 문제는 쉽게 맞혔을 것이다. 혹시 틀렸더라도 문제를 어렵다고 탓하기보다는 상식을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 문제만 더 풀어보자. 힘을 측정하는 단위는?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올라간 느낌이 들지 않는가? 정답은 뉴턴, 즉 N이다. 이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 배우는 내용이다.
철학이나 문학, 역사 같은 과목은 많은 사람들이 교양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비교적 쉽게 접근한다. 그러나 과학은 다르다. 예전에 교사 독서 동아리에서 과학책이 이번 달 읽을 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모두 난색을 표했던 기억이 난다. 교양 있는 선생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 앞에서는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과학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꼭 필요한 지식이다. 인문학이 인간을 탐구하는 수단이라면, 과학은 그 탐구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과학이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과 함께 우리의 교양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학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왜 우리는 그 두통을 견디며 과학을 배워야 하는 걸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중학교 첫 수업 시간이 되면,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학이 뭐니?” 그러면 다양한 대답이 돌아온다. “실험하는 수업이요!” “외울 게 많아요!” “세상을 편리하게 하는 지식이요!” 물론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대답들은 과학의 한 속성일 뿐, 과학의 정의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을 정의하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학은 세상의 질서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을 체스 게임에 비유했다. 공원에서 두 사람이 체스를 두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룰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경기를 보면서 스스로 룰을 알아내야 한다. 과학도 그렇다. 자연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지만, 그 룰을 말해주는 이는 없다. 우리는 그저 자연이 보여주는 힌트들을 통해 그 규칙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연의 룰을 알아야 할까? 모른 채 살면 안 될까? 물론, 안 될 거야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리 법칙과 화학반응, 생물학적 원리로 움직인다. 우리는 뉴턴의 운동 법칙에 따라 걸어 다니고, 상대성 이론에 맞는 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조차 우리는 양자역학의 산물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삶이 힘들어질 때,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위로와 조언을 구한다.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또 다른 격려를 준다. 내가 힘든 것은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속성 때문임을 알려준다. 병들고 늙는 것도 삶의 일부임을, 그래서 서운해할 필요가 없음을 설득한다. 과학이 겉으로는 차가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따스함을 한 번 느끼기만 한다면 우리는 과학과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슈퍼마리오' 게임에 비유해 보자. 슈퍼마리오가 사는 세상은 위아래, 좌우로만 움직이는 2차원 공간이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그 세상의 규칙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사는 첫걸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앞뒤로 이동하려고 애쓰는 슈퍼마리오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과학을 배운다는 것은 단지 어렵고 복잡한 공식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수많은 고민과 문제에 대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를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얻는 지혜는 우리 삶을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절대 과학을 맹신하지 말 것. 우리는 흔히 과학이 명쾌하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학은 그 반대다. 과학의 역사는 오답과 수정의 연속이다. 지금은 웃음거리가 된 이론들도 한때는 진리처럼 여겨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봉했다. 그래서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과학을 '현재 상황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면 누군가 그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이 이론은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칙 사례'들이 나타난다. 그때부터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공격받고, 방어하며 진화를 거듭한다. 결국,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기존 패러다임은 밀려나게 된다. 이 과정은 반복되며, 이것이 바로 과학의 발전 과정이다. 과학이 결코 진리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오늘날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도 내일은 바뀔 수 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듯, 명왕성이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재분류되었듯이 말이다. 과학은 일종의 '잠정적 합의'일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현대 사회에서 진리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 설득력 때문이다. 과학은 관측과 수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묘사한다. 과학은 관측을 통해 귀납적으로 정보를 모으고, 수학적 논리를 통해 그럴듯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렇게 해서 과학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 모두는 무지에서 비롯된 본능적 불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른다. 이 세상에 대한 무지는 두려움으로 모습을 바꿔 우리를 괴롭힌다. 만약 누군가가 그 불안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면, 우리는 삶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종교는 고대부터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물을 교리로 만들어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무신론자라는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종교의 빈자리를 과학이 천천히 채우는 중이다. 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과학이 풀어내고 있다.
물론, 과학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기에, 종교와 과학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종교가 인간의 불안을 달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면, 이제 과학도 그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지만, 그 설득력 덕분에 우리는 과학을 통해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이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여행의 목적과 주의사항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대략적인 여행 코스를 살펴볼 시간이다. 우리의 여정은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여 점점 나에게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끝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우주다. 우주는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무대이며,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이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우주는 시간적으로도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우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히 먼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과거를 본다. 별빛이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우주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된다. 가장 먼 별은 우리에게 수십억 년 전의 빛을 보내고 있고, 그 속에서 우주의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그다음으로 우리는 지구로 향할 것이다. 지구는 우리의 발이 닿는 곳이자, 우리가 삶을 경험하는 무대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의 피부에 와닿고,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구는 온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일지 모른다. 이 유일한 생명체,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진화의 이야기를 따라가 볼 것이다. 생명체의 기원에서부터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서사시와 같다. 우리는 이 여행에서 그 서사를 빠르게 훑어보며, 인류가 어떻게 이곳에 이르렀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나'다. 온 우주를 통틀어 나라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서로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나를 이루는 세포와 분자가 비슷하다 해도, 나와 당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다르다. 생각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이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그 다름의 이유를 탐구하고, 그 다름을 인정했을 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것이다.
이 여행은 단순히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거나 과학적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나를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각자의 답을 찾게 될 것이다.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이 여행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방황하고 있다면 인생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자연은 우리가 묻는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그 답을 찾고 해독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