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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책방 Sep 04. 2024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빅뱅우주론

과학 차갑고 딱딱한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과학을 도형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아마도 네모나 세모 같은 모양이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전혀 다르다. 우주는 낭만으로 가득하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무한한 공간이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였을지. 기원전의 별빛 아래에서부터 오늘날의 도시 불빛을 넘어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별자리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했다. 나 역시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오리온자리를 찾아 헤매며 수없이 많은 밤을 보냈다.


우주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몽환적인 느낌이 다가온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주의 거대함에 압도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는 그저 웅장하고 오래된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을 넘나드는 신비한 존재다. 하지만 그런 광활한 우주도 한때는 티끌보다 작은 시절이 있었다.


이제 깊은 밤 잔디밭에 누워 반짝이는 별들 수놓은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감성을 따라 우주의 끝없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그 신비로운 공간 속으로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탐험해 보자.


고대부터 인간은 우주를 탐구해 왔다. 영국의 스톤헨지부터 신라의 첨성대까지 다양한 유적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기술이 부족하여 우주는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망원경이 발명되고 다양한 이론이 발표되면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천문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별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하고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며 상황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벨기에의 물리학자 조르주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면서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 냈다. 그의 수학적 계산에 따르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우주가 변한다는 개념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주가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믿었고 이를 ‘정적 우주론’이라고 불렀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자신의 이론에서 도출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이유는 단순히 우주가 변화한다고 믿을 수 없어서만이 아니었다. 만약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는 뜻이고, 결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정적 우주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우주는 실제로 팽창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허블 망원경으로 익숙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우주의 모든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했다. 은하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모든 은하의 빛이 원래의 스펙트럼보다 ‘적색 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 경적 소리가 멀어질수록 음이 낮아지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이를 통해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할 관측적 증거를 얻게 되었다.


점차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증거들에 의해 과학계에 받아들여졌다. 이제 논쟁은 우주가 어떻게 팽창하는가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두 가지 이론이 대립하게 된다. 하나는 ‘정상 우주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빅뱅 우주론’이었다.


정상 우주론은 우주의 불변성을 놓칠 수 없었다. 이 이론은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그 팽창하는 공간 속에 새로운 물질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우주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빅뱅 우주론은 기존의 우주에 대한 사고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전환을 요구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모든 물질이 하나의 점에 응축되어 매우 뜨거운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팽창하면서 밀도와 온도가 점점 감소했으며 지금 우리가 느끼는 차가운 우주는 그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흥미롭게도 ‘빅뱅’이라는 이름은 이 이론을 비판하려던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 정상 우주론을 믿었던 프레드 호일은 라디오 토크쇼에서 빅뱅 우주론을 비꼬며 “그럼 우주가 ‘빅뱅(Big Bang)’ 하고 생겨났다는 말인가요?”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그의 의도와 달리 이 이름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와닿았고 결국 공식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승자는 빅뱅 우주론이었다. 이 이론이 승기를 잡은 결정적 이유는 우주배경복사의 발견 덕분이었다. 1960년대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 공간 전역에 퍼져 있는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다. 이는 초기 우주가 뜨거웠을 때 방출된 복사로 시간이 흐르면서 온도가 낮아져 미약한 전파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 발견은 빅뱅 우주론이 예측한 것과 정확히 일치했으며 그 공로로 두 과학자는 노벨상을 수상했다.


빅뱅 우주론이 제시하는 태초의 우주는 매우 뜨겁고 모든 물질이 에너지의 곤죽처럼 뒤섞인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공간이 팽창했고 온도는 점점 낮아졌다. 온도가 떨어지자 전자와 양성자가 만나 원자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원자들은 중력에 의해 뭉쳐져 별을 만들었다. 그 후 수많은 별과 행성이 탄생했고, 결국에는 우리가 아는 이 아름다운 우주가 되었다.


마치 고대의 대장장이가 거대한 화로에서 철을 녹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듯 우주는 자신을 재구성하며 끝없이 변화하고 팽창해 나간다.


우주와 신, 그 둘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늘 함께 얽혀 있었다. 인간에게 우주는 초월적인 무언가로 여겨졌고, 그 초월적인 무언가는 종종 신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주'라는 단어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영어로 '우주'를 표현하는 세 가지 단어가 있다.


space, universe, cosmos


Space는 대기권 밖의 빈 공간, 즉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가 보는 그 끝없는 영역을 뜻한다. Universe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물질과 에너지, 그들이 따르는 법칙들 그리고 그 법칙이 형성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Cosmos는 질서 있는 우주, 즉 조화와 패턴을 가진 우주를 뜻하는 미학적 개념이다. 우리가 여기서 논할 우주는 바로 'universe' 모든 것을 포함하는 총체로서의 우주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변하는 것은 흔하고 천한 것으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은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신과 영혼이 서양 철학의 주요 소재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 한다. 필멸의 존재로서 우리는 언제나 불안에 시달리며, 그 불안을 잠재워줄 불변의 존재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초월적인 존재로 떠받들며 신이 영원하고 불변하며 전지전능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아마도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고대 인류는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매일 체감했을 것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 재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해결해 줄 초월적인 존재를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갈망은 인류의 사고방식에 깊이 새겨졌고, 마치 유전자처럼 전해져 내려왔다고 많은 학자들이 추측한다.


우주를 불변의 존재로 믿는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인슈타인조차 우주가 팽창한다는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이유는 단지 그의 생각과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역시 무언가 불변의 것을 믿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주가 신이라면 그 신은 절대적으로 질서 있고 변하지 않는다"라고 여겼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고 변한다는 사실은 이 모든 신념을 뒤흔들었다.


그런데도 우주의 변화를 반겼던 이들이 있었다. 교황청은 빅뱅 이론을 크게 환영했다. 그들에게는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겨났다"는 창세기의 구절이 빅뱅 이론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빅뱅 이론은 의도치 않게 창조론의 근거로 사용되었고 이는 신이 우주의 창조자라는 믿음을 강화했다.


우주의 불변성에 대한 믿음은 ‘부동의 동자’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움직임에는 원인이 필요하며 그 최초의 원인을 부동의 동자라고 불렀다. 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움직임을 일으키는 존재다. 신학자들은 이 '부동의 동자'가 바로 신이라고 주장하며 신만이 우주를 창조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반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과학과 종교가 다루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반증 가능한 것들만을 다룬다. 즉 실험과 관찰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탐구한다. 반면 종교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


파스칼은 "신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믿는 것은 이성이 아닌 신앙의 영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음은 이성적 증거가 명확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없어도 믿는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우주가 변한다는 것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변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우주가 변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러나 그것 신의 존재와 무관하다. 우주가 변하는 것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우주가 가변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우주 속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와 신념을 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우주가 변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이자 경이로움이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불변의 신을 찾는 대신 변화하는 우주 속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와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일 것이다.


우리 집 베란다 창문을 열면 관악산 연주대가 눈에 들어온다. 매일 보는 경치지만 이상하게도 늘 새롭다. 어느 날은 봉우리에 걸린 구름이 붉은 노을에 물들고, 또 다른 날은 안개가 산자락을 감싸며 은밀한 그림을 그린다. 산을 덮고 있는 나무의 색도 계절마다 다르다. 어쩌면 자연을 보며 무의식 중에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변함에 있지 않을까? 자연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한 적이 없다. 이렇듯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과연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연애 초기 상대를 향한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믿음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경험하게 된다. 조금 냉정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의 몸 역시 늘 변화를 겪는다. 외모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매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매일 우리를 이루는 세포 중 일부는 죽고 새로이 분열된 세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과정은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고정되어 있다고 보이는 사물도 사실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다. 원자 단위로 확대해 보면 모든 것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으며, 온도를 지닌 모든 물질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리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뿐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했던 말은 강력한 울림을 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그의 말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갔을 때 그것은 이미 첫 번째 강물이 아니며, 그 순간의 물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그의 말처럼, 광활한 우주도 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팽창하며 차가워지고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주는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모든 것이 흐름 속에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우리는 때로 인생에서 깊은 우울감에 빠질 때, 이 슬픔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럴 때는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멀리서도 꾸준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변화를 받아들이는 우주의 넓은 품을 떠올려 보자. 지금 이 순간 우주가 변하듯, 우리의 삶도 변할 것이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고통이든 슬픔이든 영원할 수 없다.


우주가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주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변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변화하는 우주의 일원으로서 우리도 그 변화에 몸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슬픔과 기쁨, 불안과 희망이 모두 우주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가 가는 길을 우주와 함께 걸어가 보자.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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