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후반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직접 그린 에코백을 만들어 봤기에 드로잉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전제 조건이 있었는데 ‘취업’이었다.
2017년도에 입사해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렸다. 덕분에 회사 다니며 일하고 돈을 벌고 있으며 그 외적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입사 이후부터는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뤘기 때문에.
성격상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도전’을 좋아한다. 내가 의미하는 안정성은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인데, 평소 해보고 싶었던 취미나 다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직장 다니며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직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직장이 있으면 심적인 부담이나 걱정 없이, 주위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비슷한 예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라는 흔한 어른들의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모험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네요 안정적으로만 생각하고..”라고 묻는다면 “스스로 확신이 있는 것에는 도전적입니다.”라고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서론이 아주 많이 길었지만 요약하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한 할 일을 해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로 정리하고 마무리 지어야겠다.
지금까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대한 글이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아트마켓을 한 이유와 처음 마켓 참여했을 때의 일화를 얘기하고자 한다.
주로 내가 그리는 그림은 유럽 풍경들이다.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고스란히 가져와 추억하면서 그려낸다. 완성한 그림을 보니 문득, 유럽으로 여행 갔던 사람 혹은 가고 싶은 사람에게 추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필요했는데 ‘엽서’가 떠올랐다.
직접 그린 그림을 스캔해서 만든 엽서들
그림은 개인 SNS에 올려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뭔가 손에 잡히는 게 있으면 했다. 그림 원본이 제일 좋지만 그림이 크기도 제각각이고 일일이 들고 다니긴 힘들다 보니 일정 규격으로 통일된 148mmx100mm의 엽서가 안성맞춤이었다. 여담이지만 지금도 가방에 엽서를 넣고 다니며 가끔 꺼내 본다.
대학시절 대외 봉사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형은 여행 경험이 풍부하고 사진을 잘 찍고 좋아한다. 여행과 각자 하고 싶어 하는 것 등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어떠한 얘기 끝에 아트마켓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 호의적인 생각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함께 아트마켓 참여하기로 했다.
나는 펜으로 그린 유럽 풍경의 그림, 형은 직접 찍은 미국 풍경의 사진으로 굿즈를 만들었다.
엽서를 제작할 업체 선정과 아트마켓을 하는 곳 조사 및 신청, 테이블 구성해야 할 물품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사전에 서울, 부산에서 만나면서 조율하고 각자 할 일들을 분담하여 준비했다. 서로 하고 싶은 것을 해서였을까, 적극적이었다.
2017년 아트마켓 사진 (부산 서면)
2019년 아트마켓 사진 (서울 합정)
2017년 8월 5일, 서울의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첫 아트마켓을 했다. 그때 품목은 ‘엽서’와 ‘에코백’이었다. 날이 아주 무더워서 땀이 비 오듯 흘러 긴급히 부채를 샀다. 그러나 땀을 말리는 역할만 했을 뿐, 더위를 식혀주진 못했다. 땀 흘리며 테이블에 판매할 굿즈들을 진열해 놓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여기, 빅벤 아닌가요? 여기 작년에 갔었는데..”, “타워브리지에 올라가 보셨어요? 거기 못 올라가 본 게 한이 되는데..”, “여기 어디예요? 가보고 싶네요” 등 각자의 여행 추억들을 얘기하며 공유했다. 유럽 풍경이 담긴 굿즈를 통해서 추억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게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사람들과 여행 얘기를 하는 것이 행복하고 또 즐거웠다.
그 후로 다양한 굿즈들도 고민해서 제작해보고 정기적으로는 아니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서울, 부산 아트마켓에 참여하고 있다. 아트마켓 하면 얘기할 것들이 많은데 다음 글에서 이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