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 초반, 친구 집에서는 마지막으로 머무는 날이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근처 카페에 가서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림 그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힐링 그 자체로 너무 좋았다. 친구는 오전에 다른 일이 있어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점심때에 만나서 함께 제주 투어를 진행했다.
점심에 어떤 음식을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날지 고민하다 친구가 '말고기'를 제안했다. 제주도에 왔으면 말고기는 먹어봐야 한다며 제주 표선면 쪽에 유명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차로 한 시간 가량 달려 도착했다.
그때부터 그날의 체함이 시작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말고기를 즐기는 방법은 소고기 느낌과 같았는데 모둠회, 숯불 생구이, 곰탕까지 있었다.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말고기'이고 또 언제 먹어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 맛보자하여 하나씩 시켜나갔다. 식감은 소고기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고 더 담백했다. 모둠회를 다 먹고 나서 생구이로 갈아탔다가 마지막으로 곰탕에 밥도 말아먹었다. 배가 많이 부를 만큼은 아니었지만 든든히 먹었고 소화시키러 나섰다.
표선면 쪽에 있는 해비치 호텔, 리조트와 근처 해변을 걸으며 둘러봤다. 동남아에 있는 호텔과 리조트처럼 정말 외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연인끼리 오면 정말 행복하겠구나 싶을 만큼.
끝으로 제주도 북쪽의 함덕 해수욕장으로 다다랐다. 노을이 질 때여서 풍경을 멍하니 앉아서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해가 지는 노을 풍경을 맞이할 때면 좋은 일들만 생길 것만 같고 힘든 일들은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 힘을 준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마음은 따뜻한 감상에 젖어 소소한 행복에 잠겼다.
친구와 저녁 메뉴를 다시 고민하는 때가 오고야 말았다. 점심을 든든히 먹어서 가볍게 먹고 싶어 하는 둘의 마음은 일치했으나 메뉴 일치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당장 배가 고픈 것도 아니므로 집에서 생각하자고 했다. 집에서 한참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다 닭날개 구이와 분식류에서 주먹밥, 해물라면을 시키기로 합의(?)했다. 저녁 9시 30분이 넘어서 시키게 되어 야식이 돼버렸다.
친구와 나란히 맥주 한 캔씩 하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먹고 바로 눕지 않고 반 누운 상태로 소파에 앉아 기대서 폰을 보고 있었다. 저녁 먹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문제는 곧 시작된다.
갑자기 배 속에 음식들이 얹히는 느낌과 소화가 안 되는 더부룩함이 계속되었다.
나도 모르게 일단 일어났다. 그러면서 내 뱃속의 상황을 계속 체크했다. 확실한 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이고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체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내 금쪽같은 휴가를 아픔으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 바깥에 나가서 한동안 쭉 걸어서 소화를 시켰으면 나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지만 밤도 늦고 추워서 나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일어선채로 책을 양손에 들고 읽으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발을 움직이기도 했지만 얹힌 걸 내리기 위해 양 발은 바닥에 붙이고 몸은 위아래로 움직였다. 일명 '바운스'를 탔다. 그렇게 30분간 넘게 이리저리 움직이니 괜찮아지는 듯하여 잠에 청했다. 그때가 12시 넘어서 였을 것이다.
다음날, 눈 뜨자마자 신경을 배에 집중했다.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나에게 수없이 질문해갔고 답은 '아직도 체해서 아프다는 것'이었다. 머리에는 식은땀이 나있었고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아팠으면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되는 거라 생각했겠지만 한정된 휴가 기간 동안 여행하는데 아픈 것은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슬펐다. 게다가 기분도 좋지 않을 것이기도 하고. 다행히 병원 갈 정도 수준은 아닌 듯하여 약 먹고 쉬면 괜찮길 바랐다.
점심때 넘어서 전복죽을 먹으러 갔지만 반의 반도 못 먹은 채 남기게 되었고 그 날부터 친구 집이 아닌 새롭게 예약한 숙소에서 머무는 것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잠이 역시 보약인가 보다.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나니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 이상 아픔의 서러움을 체험하고 극복했다.
아직까지도 무엇 때문에 체했는지 모르겠다. 내 기준에서는 급하게 먹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더 많이 먹었을 때도 체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나마 여행 초기였고 체할 거 같은 낌새를 미리 파악해서 조심했기에 장기화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여행할 때에는 더욱 조심해서 음식을 적당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시간은 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