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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나의 아들, 윌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운다.  운다.   운다. 아들은 내게 끊임없이 소통하자고 소리 지르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없다.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주면 좋으련만 아직 그런 애플리케이션은  본듯하다. 여러 육아정보에서 말해주는 울음소리 분석도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온몸을 써서 우는 녀석을 앞에 두고 앉아서 어떤 소리인지 냉정하게 분석할 정신머리가 없는 까닭도 있다. 물론 아들도 내가 말하는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어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덕분에 아들은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었다.


  출산 전에는 주말이 되면 아내랑  둘이서  한잔 기울이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재미  하나였다. 맥주  모금이 주량인 아내는 음주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잔을 기울이는 것은 의식에 불과할 뿐, 우리들의 주말 저녁 시간은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을 알지만 밀렸던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내며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빈자리를 서로 채워주곤 했다.


 신혼의 부산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균형이 잡혔다고 생각했던 일상은 아들의 탄생과 더불어 와장창 깨져버렸다. 우리는 아니, 나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 이후 새로운 균형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다. 퇴근과 동시에 이두근으로 아들을 받아 들고 아내는 못다 한 휴식과 밀린 것들을 해결한.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시간이 없다. 잠깐 둘이 마주하는 때에도, 하루하루 지쳐가는 서로의 심신을 향해 단순한 위로의   마디를 건네는 것이 전부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말없이 포옹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주말마다 열렸던 나의 아무 말 대잔치는 개최될 날을 잃어버렸고 쌓여가는 나의 아무 말들은 어쩔 수 없이 아들 앞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가 배구공 윌슨에게 감정 이입하여 대화를 이어갔던 것처럼 나는 필연적으로 아들을 나의 '윌슨'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기저귀를 갈면서 상사의 욕을 하고 젖을 먹이며 오늘 봤던 뉴스를 평하고 목욕을 시키며 내일 해야 할 일을 되새겨본다.


 아들은 아직 모음 하나 조차 제대로 발음할  없지만 살아있는 존재가 맑은 눈동자로  눈을 쳐다보며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통 욕구가 해소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말에 반응하는 아들의 수준은 배구공과 다를 바 없지만 톰 행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반응에 멋대로 의미부여를 해버린다. 가끔 트림 혹은 단순히 내쉬는 숨으로  말에 맞장구 쳐주는 모양새를 보이면, 반색하여 라테를 좋아하는 직장 상사들처럼 말을 길게 이어 나간다.

  

 아들은 점점 자라서 말을 하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배구공이 되어갈 것이고 이윽고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말이 잘 통할 수 있는 나이에 아들은 우리 가족을 떠날 채비를 마치게 된다. 누가 먼저 인사를 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먼저 떠나보내는 입장이 덜 슬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무인도를 탈출하려던 톰 행크스가 무인도를 탈출하여 윌슨을 떠나보내는 입장이 될 수 있었다면 그의 슬픔은 바다에서 잃어버린 윌슨 앞에서 느꼈던 감정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육아라는 무인도를 탈출하게 된다. 무인도를 탈출하여 우리 아들을 내가 먼저 놓아줄 것인지 육아를 끝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아들이 먼저 떠나갈 것인지,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 부자도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처럼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불쑥 여자를 데려오고, 세상의 반대편에서 살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별을 통보받게 되면 아마 망망대해에서 떠내려가는 윌슨을 향해 절규하던 톰 아저씨처럼 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인도를 탈출한 후유증을 한참 겪다가 그때 가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신혼 때처럼, 주말마다 찾아오는 부부의 저녁을 다시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


 부부의 저녁뿐만 아니라 아들이 떠나가더라도 나의 삶을 채워줄 좋은 친구들, 또 다른 가족이 있겠지만 벌써부터 그런 생각이 든다. 늙어버린 내가 아주 오래전 무인도에 갇혀 말 한마디 없는 나의 배구공만 바라보던 그때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할 것 같은, 그런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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