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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연어와 부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생명의 탄생하면 강렬히 떠오르는 장면은 연어의 산란이다. 연어의 한 살이와 그들의 희생이 수없이 회자되었기 때문일까. 아들이 태어나고 육아의 피곤함이 몸을 짓누르거나 어여쁜 아내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눈에 띄게 영토를 확장할 때마다 연어가 생각났다.


 연어를 처음 본 것은 뷔페나 초밥집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구빛의 살점은 보기에도 호감이었고 입에 넣었을 때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꽤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다. 해체된 살점의 매력을 알고 난 뒤에야 TV에서 살아 있는 연어의 머리를 보게 되었고 그때의 느낌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연어의 대가리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전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장의 경험이 풍부한 대전사. 반찬으로 자주 오르는 생선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비할 수 없는 굵고 거친 선으로 빚어놓은 대가리를 보고 있자니 부드러운 살점이 입에 녹던 기억과 상반되어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연어의 한 살이를 짚어보면 그들의 대가리와 몸에 난 수많은 상처가 납득이 간다. 수개월간 수천 km에 이르는 여행을 거쳐 바다에 도착하고, 바다에서 살아남아서 다시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겨우 돌아온다. 그리고 산란을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스스로를 소진시켜서 죽어가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산란 과정 속에서 포착된 연어의 머리에서는 그들의 삶에 걸맞은 분위기가 풍긴다. 물고기에 무슨 표정이 있을까 싶지만 담담하면서도 필사적인 태도에 엄숙해지고 처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토록 험난한 삶을 살아온 이유가 종족 번식을 위한 짧은 순간 때문이었다는 점이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허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최근에 생겨나는 부모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 한 극단에 연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다.

 

 죽을힘을 다하여 나를 희생해 누군가의 삶을 탄생시키거나 지속하게 만들어주는 행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굳이 맡아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부모나 가족의 병간호와 다르게 2세를 낳는 것은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죽기 전에 눈 감을 때까지 마음이 쓰이는 존재 하나 더 만들어 내는 것에 논리적이며 합당한 이유를 대기란 어렵다.

 

 다들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힘들다고 하고 그들을 기르면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손목이 너덜너덜해지고 허리가 굽고 피부가 망가지는 것 등등을 모두 감수하며 아이들을 길러낸다. 연어처럼 눈에 띄는 상처는 없어 보이지만 부모 또한 전장에서 다친 병사를 등에 엎고 싸워 살아남은 전사들 못지않은 비장한 각오로 삶을 살아나가는 것 같다.


 바꿔 생각해보면 연어의 삶은 인간의 보다 미련 없이 마감하기 좋아 보인다. 수정란만 수정시켜놓고 눈을 감는 연어처럼 삶을 마감한다면 2세의 좋은 점, 부족한 점을 생각할 필요 없이 긍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길어서 2세가 3세를 낳는 것까지 볼 수 있는 기쁨도 얻지만 2세가 먼저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부모의 삶을 살기 시작한 지금,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중인지, 강의 상류로 열심히 돌아가는 중인지, 앞으로 어떤 수많은 변수가 있을지. 과연 소수의 연어들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고 눈 감을 수 있을지.


 우리는 종족 번식에 성공하여 눈 감는 연어도, 도중에 낙오되어 곰에게 먹히는 연어도 모두 연어라고 부른다. 낙오되는 수많은 연어들은 한 치 앞을 모르고 그렇게 폭포를 뛰어넘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인간도 그러하다. 각자 목적을 갖고 살아가지만 멀리서 지켜본 모습은 맹목적인 연어들과 같아 보인다. 우리를 지켜보는 누군가만이 알고 있는 그곳을 향해,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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