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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조기퇴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출산의 필수요소인 조리원을 조기 퇴원했다. 당장 뛰쳐나올 만한 일은 없었지만 조금씩 얇아지다가 툭 하고 끊어진 조리원과 아내의 신뢰 관계 때문이었다.  일을 하다가 통보를 받고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니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분들은 오히려 기간 연장을 주장하고 조기퇴원은 말도 안 된다고 하였지만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10일 더 있는다고 달라지겠어’라며 쿨하게 퇴원한 아내는 집에 와서 며칠간 고생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들과 상생의 합의를 이루어냈고, 더불어 양가 어머님들의 육아 품앗이 덕분에 며칠간 달고 살던 다크서클이 소폭 후퇴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퇴원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가끔씩 조리원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면밀히 조리원의 길과 다른 길을 검토해보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갔어야 하는데 워낙 육아 전문가들이 많아서 한 번씩 입을 대는 탓에 판단력이 흐려졌다.


 처음부터 조리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조리원에 도착하자마자 지나치게 반겨주는 분위기도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조리원 자체만을 바라본다면 산모에게 아주 좋은 몸조리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호텔과 유사한 시설에 차분한 실내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항상 친절하게 고객 응대를 하고 다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산모의 몸조리와 신생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마사지, 육아 교육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여 입맛에 맞게 조리원 생활을 풍요롭게 채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본 조리원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신생아는 밤낮 구분이 없고 눈도, 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태다. 조리원에서는 (사업의) 효율과 (육아)의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전문가들을 24시간 순환 교대로 근무시키며 전문가 1명당 수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한다. 살아남으려는 자와 살아가려는 자의 관점은 명백히 다르다. 눈을 감고 신생아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배가 고파서 눈을 떴다. 아무리 눈을 부릅 떠도 시야가 흐리다. 온 사방이 새하얗다. 보이지 않는 신생아들이 칭얼대거나 울고 있다. 나도 배가 고파서 입을 오물거려 보지만 조리사들이 다른 아기들을 보는 탓에 날 쳐다보지 못한다. 칭얼거려본다. 옆에서 크게 우는 아기 때문에 내 칭얼거림이 들리지 않는다. 힘이 없지만 온몸의 힘을 짜내서 울어본다.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는 조리사는 하던 일을 급히 마무리한다. 나는 울 힘도 없어서 눈을 감아본다. 잠이 들려고 하는데 입에 희망의 젖줄기가 내려 꽂힌다. 급히 먹어본다. 정신이 돌아온다. 엉덩이가 축축하다. 칭얼대본다. 먹는데 집중하기로 한다. 배가 부르다. 기저귀는 갈지 못한 채 잠이 든다.




 가상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부모만큼 못 챙겨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면회 몇 번만 가도 알게 된다. 아기는 선택권이 없다. 몸조리를 해야 하는 산모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조리원에 들어갔고, 다시 산모의 결정에 따라 조리원을 얼른 나오게 되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의 선택이 아들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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