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여기 머리가 흰색이야?"
뭐든지 신기한 아들이 물었다. 왜 흰색일까? 나오는대로 답하였다. 물건을 많이 쓰면 고장 나듯이 사람도 점점 고장난다고. 머리카락도 고장나서 그렇다고. 아들은 대충 알아먹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언제 고장나?"
"아직 멀었지."
"아빠 고장 안 났어~."
아들은 내 몸을 훑어보면서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직 미혼인 친구들도 많고 젊은 편이니까. 하지만 많은 또래들이 염색을 한다. 분명히 내 나이 이상이면 흰 머리가 났을텐데 한 두 가닥도 눈에 안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거울을 보다 가끔 발견되는 흰 머리가 있으면 똑, 똑 뽑곤 했는데 어느날부터 뽑아서 해결하기에는 흰 머리가 너무 많아져서 고민에 빠졌다. 염색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선 가족에게 의견부터 물어봤다.
아내는 둘 다 괜찮다는 대답을 하였고 아들은 흰 머리가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두 사람 다 염색 유무가 크게 중요한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어차피 머리색이 분홍색 정도로 바뀌지 않는 이상 내 얼굴이 크게 달라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분들은 염색을 하는 게 단정하다고 생각하고 권하는 말을 했다. 백발이 멋있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철 없는 놈'이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다고 크게 말릴 생각도 없으셨다. 머리를 안 자르는 것도 아니고 염색을 안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으니 말이다.
오로지 내가 결정하면 되는 문제였다. 평소에 염색을 한 사람을 봐도, 염색을 안 한 사람을 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이 나를 봐도 그런 느낌일 것이다. 유부남에 애아빠니 흰머리가 있어도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염색을 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염색을 하면 젊어보이고 머리색이 통일되어 단정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본다면 그닥 끌리지 않는다. 요즘 유행한 말로 묘사한다면 '테무에서 산 000' 같은 느낌이랄까. 테무에서 산 젊음, 테무에서 산 20대의 나, 테무에서 산 흰머리 안 난 검은 머리. 저렴하고 질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를 대체할 수 없는 가짜가 가질 수 있는 유쾌함 대신 서글픔을 조금 더 넣은 느낌.
그래서 늙음에 대한 방향성을 자연스러움으로 정했다. '젊어 보이는' 30대 같은 40대, 40대 같은 50대가 아니라 멋있는 40대 같은 40대, 멋있는 50대 같은 50대처럼 늙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클래식카의 내부를 최신식으로 바꾸는 대신 출고 시 그대로 최대한 잘 보존하며 세월의 흔적도 멋드러지게 보이도록 말이다.
소위 말하는 아름답게 늙기란 힘들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냥 늙으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가진 것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썬크림을 바르고 운동도 꾸준히 하며 건강을 위해 식단도 조절해야 한다. 영양제도 챙겨먹고 그 외에도 할 것이 많아서 부지런해야 한다. 어차피 살아 있을 때 건강하려면 해야 할 일을 조금 더 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주 2회 정도 운동을 하며 술도 끊었다. 가끔 시야가 뿌옇게 되는게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썬크림도 바르고 선물 받은 향수도 뿌려보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앉아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는데 뒤에서 나타난 여동생이 내 근처로 와서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옆 머리를 슬쩍 들추며 흰 머리를 보고 말았다.
"오빠, 미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멋있는 30대 같은 30대가 될거라니까. 아이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