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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욜로족과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나는 또래에 비해 늦게 독립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태어난 것처럼 인생을 새롭게 배워갔다. 그즈음에 '욜로'라는 말이 유행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대로 정하지 못한 나에게, 욜로를 외치는 젊은이들은 강렬한 유혹과 의혹으로 다가왔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현재에 충실해라.' 같은 말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누군가 정해놓은 삶의 경로대로 따라가는데 바빴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사람 한 명 몫을 제대로 해낸다고 바쁘게 살았다.


 대부분 나처럼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각자의 길을 개척하는 젊은이들이 몇몇 있었다. 욜로,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와 같은 말들로 묘사 가능한 그들의 삶이 때론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부럽기도 했다.


 그들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들처럼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서 과감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싫어서 도망가려고 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들은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정말 간절한 소망과 의지가 있는 그들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도 이겨낼 수 있었지만 동기가 불순한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도 젊고 독립된 인간이었지만 마음먹고 다르게 살아보려는 시늉만 하면서 세월을 보냈고 결국엔 결혼과 가족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평생 막연하게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당연한 삶의 경로였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어서 가족을 꾸리며 사는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단일 경로로 수직화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세대원이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세대주가 되어서도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대체로 숭고한 일이다.


 하지만 회사원으로 승승장구하던 듬직한 아빠가 아들, 딸, 아내를 앞에 두고 갑자기 빵집을 열고 싶다고 할 때, 육아와 일을 완벽하게 해내던 엄마가 세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나와 맞지 않는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문제가 한껏 복잡해진다.


 흔히들 말한다. 퇴사하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며 24시간 올라가는 부동산이 두렵지 않냐, 저성장 시대에 노후 대비를 어쩔 거냐, 등등. 하지만 그런 말들은 잘 들리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고,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앞에 두고 내린 선택이기 때문에 각오가 남다르며 한 번 스위치가 켜지면 멈출 수 없다.


 가끔씩 매체나 주변에서 인생을 갑자기 다르게 살아가는 사례를 접하게 될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나에게도 아마 찾아올지 모르는 그때는 언제일지, 나에겐 과연 찾아올 것인지 알고 싶어 진다. 아니면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편한 옷을 입은 듯 불쑥 찾아오는 이질감만 느끼다가 끝나는 것이 나의 인생인지 누군가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알고 보면 나는 어떤 일을 해도 만족할 수 없고 적성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삶을 살아야 하고, 언젠가 흰머리 염색을 포기한 할아버지 같은 나이가 되기 전까진 신기루 같은 허상이라도 쫓아가는 삶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고 바라던 삶을 살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된다면 좋겠지만 아들까지 생기고 난 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을 덜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다른 일을 시도해보거나 마음먹을 시간이 나질 않고 가족을 부양하는데 내 몫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계형 비리까진 아니지만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생계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생 선배들을 보며 나도 안면 몰수하고 우리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을까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내가 생기고 아들이 생기는 과정에서 점점 더 내 마음대로 살아가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어떤 일도 맞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점점 커져가고 다른 일을 시도해볼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까닭이었을까. 내 삶이 변하지 못한다면 지금 삶의 테두리 안에서라도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무의식 속에서 커져간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직장에서 거절을 하지 못하여서 며칠을 고민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뇌까지 거치지 않고 거절을 해버 리거나 조금이라도 내 가치관과 맞지  않다 싶으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날 때도 달라졌다. 좋은 게 좋은 거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행동이 반복되면 친인척 사이도 과감히 정리하였다. 물론 대놓고 통보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선을 긋고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만 만남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덕분에 삶에서 겪는 잡음이 많이 사라졌다. 사소하게 나를 피곤하고 신경 쓰게 만들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는 좀 더 가족과 나 자신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어 가면서 가족과 나를 위한 삶을 우선으로 결정을 내리고 불편하거나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들은 더욱 과감히 거절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 틀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고요한 삶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겠다는 사람들 앞에는 항상 더 가지려는 자들이 나타난다.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칠 수도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내가 원치 않던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역사가 증명하는 수많은 변절자들을 거론하며 과거의 나를 깨끗이 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소신껏 꿋꿋하게 살아가다가, 견디다 못해서 그토록 바라던 순간을 맞이하여 가족에게 중대발표를 하고 전혀 다른 삶을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게 되든 앞으로도 가족의 삶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더불어 내 삶의 순간들을 아끼며 순전히 내 것으로 살아가고 싶다. 한 번뿐인 인생, 현재이자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이 시간들이 한 줌의 재가 되더라도 밤하늘의 별처럼 저마다 반짝거리는 순간이 있었음을 회고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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