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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외않됀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교사라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대체로 비슷한 어조로 아이들을 훈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에 천불이 나도 이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어조로 말해야 하니 얻게 되는 기술이다. 덕분에 아들을 키우면서도 도움을 받고 있다.


 감정을 싣지 않고 훈육하는 어조를 유지하면 아들도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서로가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육아가 너무 힘든 때에도 돌아서서 된소리를 낼지 언정 아들에게 훈육하는 말투는 달라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어서, 같이 지내다 보면 모든 게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장면이었지만 아기 의자에 앉은 아들과 식탁의자에 앉은 나, 모두 비정상에 아주 근접한 상태였다.


 육아가 너무 힘겨웠고, 아들은 아들대로 밥을 평소처럼 먹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나 보다. 아들은 이유식과 식기를 지나치게 함부로 다뤘고 온 사방이 난리였다. 어조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지만 아들에게 하는 말이 많아졌다.


 "안돼, 안돼, 안돼."


 아들은 내가 말할 때마다 멈추긴 했지만 모든 것이 통제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서러움이 폭발하여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평소보다 예민한 나도 문제였지만 지나치게 아빠 말을 잘 듣는 아들도 평소와 달랐다. 아들을 달래고 난 뒤에야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작 1년 정도 산 아기를 데리고 이병 굴리듯 지시를 하고 있었으니 서러울만했다. 밥을 다 먹고서 아들이 뭘 해도 아무 말 없이 아무렇게나 집을 어지르도록 두었다. 재밌는 놀이인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놀았다.


 아기가 자라면서 안 되는 일은 너무 많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안돼'이다. 안돼라고 말하는 때는 대게 안전, 건강과 관련이 있다. 아들이 다치거나 건강에 헤로 울 수 있는 행위를 제지하는 목적으로 쓰이지만 부모의 노력에 따라 사용 빈도가 달라진다.


 언제나 안돼라고 말할 경우라면 그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해주는 것이 좋다. 우리 집은 아들이 침범하는 공간에 위험한 것들은 모두 없애버렸다. 안전용품으로 막거나 보호를 할 수 있지만 통일성 없는 인테리어는 가뜩이나 힘든 나를 더 스트레스받게 하므로 안전용품을 사기 보단 있던 물건을 최대한 치우고 버리고 팔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화장실이나 부엌과 같은 공간 또는 청소기나 쓰레기통 같은 물건들이다. 그 외에도 불가피하게 노출되는 것들이 있다. 모든 것을 없앨 수 없지만 아이의 동선에 맞추어 아이에게 적합한 환경을 최대한 조성해주어야 한다.


 환경이 조성되고 나면 안 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든다. 개인 sns에 올리기 위해 돌잔치를 하루 종일 하면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사진을 찍어대거나, 뛰면 위험한 공공장소에서 손도 잡지 않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두는 일 등은 아이가 자라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안 되는 것들만 경험하게 만든다.


 환경, 상황 모든 것을 연출하고 나면 크게 안 되는 일이 없다. 부모가 자기 관리만 잘하면 된다. 놀이를 하며 놀아줄 때와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아들에게 안돼라고 말하는 빈도가 다르다. 피곤하고 귀찮을 때는 역시나 말로만 육아를 하게 되어 안돼라고 자주 말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힘들어야 아이는 부모가 바라는 대로 큰다. 자라면서도 안 되는 것이 많은데 그때마다 말로만 억누를 수는 없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처음부터 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삶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나중에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노력보다 힘이 덜 든다.


 학부모 중에 그런 상담을 많이 한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 잘 이야기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는지 묻고 공부를 어떻게 좋아하게 만드는지 묻고, 스마트폰을 그만하게 혼내달라고 요청한다.


 이미 공부를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 공부를 못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는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을 계속 만진 아기와 다를 바 없다. 다칠 대로 다쳤고 건강을 해칠 대로 헤친 후다. 제대로 된 대처를 해주지 않으면 '안돼'라고 입 아프게 이야기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부모는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맹자의 어머니처럼 아이의 삶을 연출해야 한다. 이것저것 만져도 아기가 제지당하지 않는 환경, 스마트폰이 없어도 아이가 즐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원하는 목적에 따라 자연스러운 환경과 상황을 연출하면 아이가 절로 움직인다. 아이의 세상에 안 되는 것이란 없다. 할 수 있는 게 많은 채 자라는 아이와 할 수 없는 것을 지적당하며 자라는 아이, 둘 중 어떤 아이를 선택할지는 부모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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