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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죽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죽음은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지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 각종 매체에 언급되는 죽음도 건성으로 넘기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이나 자신이 아픈 경우가 생긴다면 모를까. 그것도 심하게 아픈 경우가 아니면 죽음까지 생각하는 경우는 잘 없다.

  

 어느 날, 누가 암에 걸렸다고 말했다. 살면서 내 앞에서 직접 본인이 암에 걸렸다고 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죽음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고 내 차례를 상상하게 되었다.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매일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봐야 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항상 나만 비켜나지 않는다. 그것이 죽음이냐 아니냐의 차이일뿐. 혹시 예기치 못한 죽음이 다가온다면 고통이 적으면 좋겠다. 그 외의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사후에 나의 죽음에서 영향을 받을 몇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예전엔 죽음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먼저 생각났지만 이제는 내가 꾸려가는 가족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태어난 지 1년이 겨우 지난 아들의 존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부모님과 아내, 아들 모두 가족이지만 죽음을 가정하였을 때 아들만큼 걱정되는 사람이 없다.


 부모님과 아내를 생각하면, 나를 잃고 슬퍼하거나 힘겨워할 그들의 모습이 상상되지만 아들은 다르다. 만 1세를 겨우 넘긴 아들은 죽음을 알지도 못하고 상실감도 느끼지 못한다. 슬퍼해야 하는데 슬플 수가 없으니 주변에서 더 극성일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갓난 아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비극적인 존재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생존 가능한 상태라면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어차피 언젠가 떠나야 할 세상을, 평균 수명 정도에 떠나게 된다면 성인인 아들을 두고 가는 것이 어린 아들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울 것이다.


 어쩌면 나 대신 나랑 닮은 존재가 삶을 이어주는 듯한 느낌까지 들어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기 전에 떠나는 것이, 남아서 이어가는 자에게 부담을 덜 씌우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병시중으로 가족을 고통케 하다가 죽어가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 아들에게 의지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아들보다는 홀로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아내가 먼저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되는 아들보다 걸어온 길이 많은 아내가 측은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사람이 먼저 갔을 때, 남겨진 자의 슬픔은 가늠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어느 때에 맞이해도 그때가 가장 힘든 일이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키우는 지금은 지금의 죽음이 제일 슬프고 곤란하다. 여전히 품 안에 쏙 들어가는 자그마한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기란 너무 힘겨운 일이다. 아직 자라야 할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아들에겐 가혹한 일이다.


 내가 없어도 잘 자랄 수 있다. 당장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진다 해도 가장 중요한 양육자인 어머니가 있고 세상은 많은 가능성과 기회가 있으며 좋은 사람들도 많다. 아버지의 상실을 에너지 삼아 삶을 좀 더 열심히, 제대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를 생각하면, 아버지인 나는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부모가 아이를 보면서 내가 돌보지 않은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르게 말하면 책임이라고도 하고 어떤 법과 윤리도 가로막을 수 없는 아이에 대한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아들이 커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대부분의 사람이 죽는 나이가 될 때까지-당분간 죽지 않기로 결심했다. 운명을 거스르겠다는 말은 아니다.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성실한 삶을 살자는 말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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