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운명론과 자유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의 짧은 영상이었는데, 판사가 죄를 지은 소년들에게 판결을 내리는 장면이었다. 판결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가정을 포함한 주위 환경이 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점은 사실이나, 다양한 선택지 중 범죄를 선택한 건 소년이다. 그런 환경에 있는 소년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
그런 소년들에 대해 기존에 내가 가진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어쩌다 저렇게 마음이 엉키고 뭉개지게 되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본 후에는, 그래, 판사의 말에 일리가 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는 잘못된 선택이고, 그 선택은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선택'은 과연 자유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선택'은 자유 의지를 전제로 한다. 자유 의지가 있어야 선택을 할 수 있다. 법정에서도 강제로 자백한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를 겁박하여 강제로 범행에 가담하게끔 한 경우 등에 대해서는 그런 사정을 감안하여 판결을 내린다. 강제성이 있더라도 자백이나 범행 가담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위협을 무릎 쓰고 선택하는 상황을 자유 의지가 충족된 것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선택'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은 의지를 제한하기도 하고, 때론 자유 의지를 빼앗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다양한 환경에 놓여 있다. 가정 폭력, 버려짐, 따돌림, 경제적-정서적 빈곤, 결핍 등. 이러한 부정적 환경은 아이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부정적 마음을 가진 아이는 사회에 부적응하면서 상처를 받고 부정적 삶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없다. 부모, 부모의 사회적 지위, 경제력, 정서적 요인, 학교, 친구 등의 환경이 모두 그러하다. 태어나 보니 그런 환경에 놓여 자라게 되었다.
유전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나 보니 운동을 잘하고, 음악을 잘하고, 외모가 어떻고, 인내력과 끈기가 있고 없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 3,4살의 어린아이인데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을 예쁘게 하거나 비교적 성숙한 아이 같아서 자라는 동안 사랑을 듬뿍 받을 것 같은 아이가 있다. 한편 샘이 많아서 그런 부분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도 있다. 모두 그런 기질을 우연히 타고난 아이들이다.
그렇게 아이는 우연히 갖게 된 유전적 기질로, 우연히 놓이게 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주변의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삶을 배워 나간다. 이렇게 세상에 던져진 존재에게, 너희보다 더 좋지 않은 환경에 있는 아이도 잘 사는데, 너희는 왜 그러니?와 같은 '선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선택'과 그로 인한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건 폭력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사회가, 어른들이, 아이들의 선택과 책임을 논하기에 앞서, 그런 부정적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고 싶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삶, 이라는 말처럼 매 순간의 선택은 삶의 가치를 향한 나아감이다. 우리는 특별히 자각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은 운명의 굴레에 따른 선택이다. 그러다가 선택지가 보이고, 선택에 따른 책임, 그로 인한 삶의 변화들을 생각해 보면서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많은 아이들은 선택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인 줄 모른 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그러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다 이번 생은 망했다, 라고 하는 이생망이라는, 자기 삶에 대한 무기력한 표현을 뱉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비자발적으로 운명론적 삶의 굴레에 놓인다. 그리고 그 굴레 속에서 선택과 결과, 책임을 서서히 배워 가면서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간다. 자기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게 운명의 굴레에서 서서히 자유 의지의 삶으로 전환된다. 그것이 실존하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적 삶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맞이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사람마다'라고 하는 건, 결국 우연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가, 배고픔이나 경제적 어려움, 큰 정서적 결핍 등 없이 자유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건 행운이다. 그런 마음에서 우연히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교사로서 또는 어른으로서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생각해 보게 한다.
운명론에 대한 생각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다가가게 해 준다. 또,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인간적 포용력과 함께 연민을 갖게 한다. 그리고 자유 의지로의 전환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하며 아이들의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게 하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한다. 학생들에 대한 정서적 지지를 바탕으로, 우리 삶에는 언제나 선택지가 놓여 있으며,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삶의 가치를 선택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가 삶에서 알게 된 가치들을 공유하며 함께 배우는 삶을 살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부분이 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누구나 미성숙한 부분을 갖고 있으며, 모두 우연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보듬을 수 있고, 서로를 보듬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또, 그런 부분이 있기에 인간적이라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연히 된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할, 누군가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그럴 자격이 없다. 그 자체로 바라봄, 이해, 연민, 겸손. 실존, 만남... 과 같은 단어를 되뇌면서 그동안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가졌던 미움과 비난, 편견을 덜어내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같이 덜어내는 삶을 살고 싶다. 조금씩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