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죽었다. 젊음과 늙음,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활력과 노쇠의 모든 생애를 겪으며 살아냈다. 다 살았구나...하고 눈을 감으며 평온해진다. 분명 죽음을 맞이했는데 어떤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생각이나 욕구나 그런 것 없이 오로지 의지만 있다. 다시 삶을 시작할지 선택할 수 있는 의지.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아니, 시간이란 개념도 없다. 생각도 없다. 그저 의식 속 줄다리기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 지적인 존재로서, '나'의 가장 본질적인 근원 의식만은 갖고 태어날 수 있음이 느껴진다. 다시 태어나느냐 마느냐. 찰나의 순간이면서 영겁의 시간 속에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그러다 노인은 다시 태어나기로 한다.
죽음 이후에 다시 태어나는 삶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생애를 모두 짊어지고 노쇠하여 임종에 다다른 노인의 삶을, 그런 한 생애의 무게를 생각해 본다면, 다시 태어나기를 선택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나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나는 왜 다시 태어나기로 결정했을까. 그런 결정을 했다면 적어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또는 누군가에게 고백해야지와 같은 아주 미시적이고 특정한 목표는 아닐 것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일 것이다. 더 낫다고 하는 건, 과거에 스스로 발견한 중요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았을 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닐 것 같다. 내 생각에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동일한 정도의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겠지.
"그게 아니야", "좀더!"
내 스스로를 몰아붙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을 찾아라, 더 의욕적으로 부딪히고, 더 즐겁게, 더 값지게, 더 의미 있게, 내 삶을 살아가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안다. 그게 나다. 과거에도 있었을, 그리고 지금도 있는. 어쩌면 죽음 이후에도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