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완성하는 과정

- 순간의 생을 살자

by 아직


나는 분해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나는 아득함 속으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죽음으로 나아가며 서서히 분해된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어야 삶이 의미 있고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 들이려고 한다. 죽음은 삶의 마침표이자 완성이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을 꼭 온전히 경험해 보고 싶다. 다만 내가 과연 그 죽음의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나는 분해되고 있다. 분해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나는 틀림 없이 죽음의 순간을 그다지 의미있게 보내지 못할 것이며 삶의 완성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분해의 가속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삶의 순간들을 놓치며 이루어진다. 하루라는 커다란 순간을 단지 몇 조각으로 크게 뭉뚱그려 쪼갠 후 크게 한입 두입 먹어치우듯. 그렇다. 먹어 치우듯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을 먹어 치우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먹어 치고 있다. 먹어 치움의 목표는 그저 없애는 것이다. 맛, 영양, 호와 불호 등 무엇도 아니다. 단지 없앨 뿐이다. 나의 고유한 시간과 감각들도 먹어 치우듯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분해되고 있다. 따뜻한 햇볕, 아득한 어둠 속에 빛나는 별, 나를 스치는 바람, 초록 잎, 울긋불긋 단풍, 빈 가지, 걷는 동안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촉 등 감각할 수 있는 것, 감각을 통해 내 안으로 전해지는 신비로움이나 삶의 의미. 그것들 대신 딴 곳에서 일어나는 일, 딴 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 화면을 종료하면 발견하는 죽음 속에 파묻힌 순간들, 그리고 이제는 그 순간이 사라졌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시간들을 분해하고 나를 분해하며 나의 감각과 생각을 검은 화면의 블랙홀 속으로 흘려 보내고, 그러면서 나를 잃어 버린다. 그렇게 나는 더욱 빨리 분해되고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살아가야 하는지, 이대로라면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잃은 채 우주의 미아가 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산다. 좋고 싫고, 기쁘고 짜증나고, 신나고 지루하고, 사람들을 살피고 걱정하고 배려하기도 하고, 시기질투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자신으로 살다 잠든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곳, 다른 생각, 다른 걱정 등을 하면서 나의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떠올리다 하루를 오롯이 내 자신으로, 내 삶으로 채우지 못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공허감으로 채운다. 채우지 못한 만큼 나는 완전해 지지 못하고 나의 의미를 잃어간다. 분해되어 간다. 건축물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듯, 뜨개질을 한올 한올 엮어 가듯이 나를 채워야 하지만 듬성듬성 채우고 있다. 허술하다.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여유를 갖고 순간순간을 느껴야 한다. 해와 달과 별과 바람 같은 자연이든 건물과 자동차와 걸어가는 사람이든 무엇을 하든 보든, 감각을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는 나를 살펴야 한다. 나를 채우는 무언가가 한 덩어리의 시간이 아닌 모래처럼 작은 알갱이들의 촘촘함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나의 죽음이 정신을 잃고 아득함을 헤매는 경험이 아니라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달하는 경험이 되었으면 싶다. 나를 완성하여 죽음으로 데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