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마음 헌혈하기

by 아직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생명이 꺼져가는 생명의 최전선에서 삶의 바깥으로 사라지려는 몸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는 의료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떤 직업보다도 고귀하고 원초적인 행위였다. 분명 인간은 문명을 영위하고 뛰어난 과학 기술을 이룩한 뛰어난 지적 생명체이지만 우리 몸은 죽음 앞에 평등한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삶의 최전선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 환자는 죽음에 내던져 진 채 흐릿해지는 가녀린 의식 속에서 삶의 사라짐을 아스라이 경험할 뿐이지만, 의료인들은 분주히 살아 있으면서 삶과 죽음을 숨가쁘게 경험하는 사람들이었다. 생명을 이어 붙이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이 죽음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순간, 죽음을 몰아내고 다시 삶으로 물들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리하여 다시 삶으로 방향을 돌이킨 타인의 생을 보자니, 안도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이국종 교수의 영상을 보았다. 짧은 부분만 보았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 몸에는 피가 많지 않다. 체중의 5%. 그중에 절반 이상 떨어져 나가면 죽는다. 약 1.5리터쯤 된다. 1.5리터의 우유를 쏟아보는 상상을 해보라.

1.5리터의 우유가 쏟아지는 상상. 너무나 쉽다. 상상도 쉽고 쏟기도 쉬우며 쏟아지는 시간도 짧다. 혈액을 공급하는 일은 그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다. 절반쯤 떨어졌을 때 혈액 한 팩이 공급되면 생명은 연장된다. 혈액 한 팩은 생명을 연장하는 한 개의 생명코인이다.


오늘 헌혈을 하고 왔다. 400ml. 혈액이 부족하여 죽음에 이르려는 사람의 목숨을 한 번 연장할 수 있는 정도의 혈액이다. 헌혈을 하고 나왔더니 300번 이상을 헌혈하신 분의 기사가 보였다. 300번 이상의 생명을 연장해 주신 분이었다.

나는 지금껏 다른 사람의 생명을 몇 번이나 연장해 주었을까. 한 사람에게 혈액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가능성. 나는 가능성을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사고를 당한 사람, 우연히 사고를 면한 사람. 사고가 난 사람은 자신이 사고가 날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히,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 뿐.


채혈을 시작했다. 붉은색 피가 빠져나왔다. 사실, 빠져나오는 것인지 나에게 들어오는 것인지 알긴 어려웠다. 붉은 피를 보다가 내 피를 수혈받을 누군가를 떠올려 보았다. 노인, 젊은 사람, 어린 아이...어린 아이에 이르니 꼭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예전에 읽었던 '왓칭'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누군가에게 물을 주었을 때, 그 누군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는 물과 그렇지 않은 물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결과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느끼며 살고 있고,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존재와 현상과 작용이 있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서 거짓이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충분히 그리해도 된다. 더군다나 타인을 위하는 마음은 매우 아름다우니까. 그런 생각에서 피를 수혈받는 사람이 건강해지길, 아픈 곳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생명을 일부 내보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헌혈을 하고 나니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이 조금 묵직해지는 듯했다. 위안을 얻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기적으로 헌혈을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와 삶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내 피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대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좋은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죽음에서 멀어지게 애를 쓸 수 있는 혈액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누군가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분주히 오가며 생명을 피워내는 사람들의 숭고한 분투에 작디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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