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일까 둘 이상일까
언제나 내 안에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공존한다. 밤 10시, 야식을 먹을까 말까. '지금 매콤한 닭발과 부드러운 계란찜을 시켜 먹으면 너무나 맛있겠지.', '지금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살도 찌고 건강에 좋지 않아.' 그러다 보면 어느덧 매콤하고 부드러운 진수성찬이 눈앞에 놓여 있다.
이별 후에는 그 사람을 떠올리며 '왜 헤어졌을까, 이런 게 좋았는데, 이해와 인내가 부족했어, 내가 참 부족했다.' 하다가도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런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 어차피 오래 못 만나, 잘됐다.'하는 생각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이런 내 모습에 혼란을 느끼곤 한다. 무엇이 진짜 나의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생각은 하나의 '나'를 상정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이것도 나, 저것도 나. 가장 진심에 가까운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책에서 '나'가 하나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글귀를 보았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나다', '둘 이상이다'라는 진실보다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생각이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가이다.
내가 하나라는 생각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내 안에 드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 중에서 가장 본래적이고 중심에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식을 고민하는 상황이나 이별 후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하지만 '둘 이상'이라는 생각은 그런 혼란을 잠재워주는 면이 있다.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른 '나'들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하나 모두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소리치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거기에 강렬하게 끌려가기보다는 이런 부분에 대한 결핍이 강하구나, 이 부분에 대한 보살핌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마치 부모가 여러 아이들을 기르는 중에 어떤 아이가 크게 울부짖을 때 그 아이에게 더 관심을 갖고 보살피게 되는 것과 같다. 내가 둘 이상이라는 생각은 내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돌볼 수 있게 한다. 지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고 달래줄 수 있다.
(김주환, 내면소통, 159p
많은 뇌과학자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하나의 '나'란 존재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조정하고 있다는 느낌은 환상에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