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적 폭력
강원도에는 참으로 이슈가 많다. 과거 레고랜드부터 요즘은 가뭄, 케이블카 등... 도지사나 시장 등 공직자의 행정에 시민들의 불만이 쌓여 있다. 이슈가 되다 보니 유튜브에 영상도 많이 나오고 사람들도 관심 있게 본다. 나는 영상을 보면서 댓글을 함께 보는데, 공감이 많은 댓글이 참으로 불편하게 느껴진다. 댓글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잘 뽑았어야지. A 뽑아놓고 B한테 왜 그러냐'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수준 높은 영상들도 많지만 댓글의 의견들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강원도 영상에 달린 댓글들도 참으로 날카롭다. 그런데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눈감고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조건 1번, 무조건 2번 하는 식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나 그가 소속된 정당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알든 모르든 무조건이다. 반면에 성심성의껏 투표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과 정당을 함께 보고, 정책을 살피면서 누군가에게 신뢰를 느끼며 투표를 한다. 그렇게 모든 표가 모여 한 사람이 당선된다. 당선자가 일처리가 미숙하면 시민의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따르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터전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일상의 일부를 덜어내어 길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정치 운동을 나서야 할까. 훌륭한 대통령 후보 A에게 투표했더라도 민주주의에 따라 B가 당선된다면 우리는 모자란 B가 운영하는 국가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B가 모자란 운영을 하게 되면 심적으로 괴로움이 큰 사람은 A에게 투표한 사람들이다.
강릉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는 외지인이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강원도 또는 강릉 관련 영상에서 댓글을 본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다. 강원도민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제3자의 입장에서 영상을 접하게 된다. 내가 경기도에서 영상들을 접했다면 저런 댓글에 좋아요를 클릭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원도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과 안타까움의 마음을 갖게 된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 마음에 비난의 마음보다 공감의 마음이 자라날 수 있어서.
인터넷 세상이란 참 냉혹하다. 가뭄을 겪는 사람이 지나갈 때 '그러게 투표를 잘했어야지.'라고 면전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사람이 마치 모두 결정한 것처럼 말이다. 대신 '불편하겠다, 힘들겠다, 무슨 난리냐...'와 같은 말들을 하지 않을까. 소통의 거리는 가까워지지만 공감의 거리는 멀어지는 요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