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로 정직하게 체감하는 삶의 원리
삶에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출발선이 있다. 하얀 선이 그어진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더라도 실제적인 출발선은 서로 다르다. 다리 근력의 좋고 나쁨이 있고, 다리 길이가 길고 짧음이 있으며, 유연성에도 차이가 있다.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는 상황. 0m의 출발선과 100m의 결승선이라는 동일한 조건이지만, 실질적으로 100m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힘은 서로 다르다. 특히나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한 목표 시간이 동일하다면 더욱 그렇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과 힘 등은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 유전적 요소와 환경의 영향에 어른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종속된(?) 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실제적 출발선은 운에 달렸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밤 10시.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어떤 아이는 잘 뛰어 앞서 가고, 어떤 아이는 따라오기 버거워했다. 나는 처음 뛸 때, 4km를 뛰었는데 매우 힘들어서 더 뛰지 못했었다. 아이들은 힘들어하면서도 8km를 뛰어냈다. 버거워하던 아이도 쉬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앞서 달린 아이도 대단했지만 버거워하면서도 끝까지 참고 달린 아이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앞서 달린 아이는 예전에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버거워하던 아이는 5km 지점쯤에 한계에 다다랐고, 한계를 이겨내고 또 이겨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앞서 달리던 학생도 말했다. 자신도 중간에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앞에 달리던 학생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을 뿐, 매우 힘들었다는 것이다. 힘든 데도 티를 내지 않고 뛴 것도 대단했다.
달리기에는 자기 이해와 상호 이해가 담겨 있다. 인간의 고난과 극복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여준다. 언제부터 힘든지, 얼마나 견디고 이겨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순간순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떤지, 동일한 달리기 상황에서 어떤 차이가 있고 왜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상황을 '우리가 함께 함으로써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사냥감을 추격하는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행위, 단순히 '달리기 위해 달린다'는 맹목적일 수 있는 행위를 통해서 삶의 기본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인간 태생과 본능에 가까운 행위에 삶의 기본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실질적으로 체감하며 삶으로 잇기 어려운 근본적인 삶의 원리를 달리기를 통해 정직하고 온전히 얻어낼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의 힘듦에 집중하며 이겨내는 경험, 서로의 다른 힘듦을 이해하는 경험, 그리고 함께여서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체감하는 경험... 이를 통해 우리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출발선에 있으며 그곳에서 각자의 나아감이 있음을 몸으로 느꼈다. 서로 다름에도 함께여서 멀리 갈 수 있음도 체감했다. 서로의 출발선이 앞서거나 뒤에 설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그것은 각자의 출발선에서의 '나아감'임을 함께 배우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달리기를 이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