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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Oct 04. 2019

<배영옥 육아>

프로젝트 이름부터 정했다.


 30대 애기 엄마, 우리 엄마의 이런 모습은 상상해보지 못했다.
내가 겪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가장 어린 내 모습은 유치원 때다.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평평해야 정상(?)이다'라는 얘기를 들은 뒤 너무나도 우울해졌던 그 어느 순간이었다. 빈 책장 같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듯 쪼그리고 들어가서, 배를 이러저리 넣어보고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렀던 기억이 난다. 숨을 훅 하고 배에 힘을 확 준 다음, '이러면 좀 평평한데'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얼마나 우울했을까. 6살 어린이 배는 자고로... 빵빵한 법인데.


아가 배는 빵빵하기 마련...


그보다 더 앞선 어린 시절 기억은 거의 없다. 떠오르는 게 있다 한들, 오래된 사진 한 컷 같은 '순간'만 생각난다. 그 순간조차, 진짜 내 경험인지 어느 순간 만들어낸 상상 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0살부터 5살. 그렇게 5년에서 6년여간의 기억은 나한테 없는 인생이다. '나'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대략 5년의 시간. 그런 '빈 시간'이 있다는 것조차 나는 인규를 낳기 전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나는 늘 학생이었다가 성인이 된 나고, 우리 엄마는 늘 '엄마'였다. 싱글, 새댁, 30대 애기 엄마... 우리 엄마의 이런 모습은 상상해보지 못했다. 내가 겪어보기 전까지는.


누군가 나한테 '애는 꼭 낳아야 하나요?' 물어보면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출산을 앞둔 친구에게 '주먹을 쥐어봐. 그리고 그걸 니 콧구멍에 넣는다고 생각해봐. 그게 바로 출산이야.' 라면서 놀려대기도 하고. '네가 뭘 생각하든, 더 큰 고통이 기다릴 거야' 라며 짐짓 겁을 주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대체 이 짓을 어떻게 하는 거지?', '인류가 어떻게 존속되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육아만큼, 인규를 키우는 것만큼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다른 일은 없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5년. 그 빈 조각을 채워주면서 비로소 삶 하나가 온전히 완성된 느낌이다.  


인규를 키우는 내 모습엔 늘 우리 엄마,
'배영옥'의 모습이 겹친다.


임신, 출산, 육아만큼 내 삶에 절대적인 변화는 없을 거 같은데. 나는 임신, 출산, 육아를 하기 이전의 삶 30여 년 동안 정작 임신, 출산, 육아를 준비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배운 적도, 보고 익힌 적도 없는 그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면서 나는 내가 엄마랑 무척 닮아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아는 육아란 내가 겪어본 육아, 즉 우리 엄마 '배영옥 육아'가 전부였다. 물론 책도 읽고 전문가 조언도 찾아보지만, 책은 어디까지나 책일 뿐이다. 밥 한 술 먹기를 매번 거부하는 애를 키우면서 '즐거운 식사 경험이 중요합니다, TV는 끄세요, 음식과 친해져 보도록 경험을 시켜주세요' 이딴 글을 읽으면 화만 돋을 뿐이다. 인규를 키우는 내 모습엔 늘 우리 엄마, '배영옥'의 모습이 겹친다. 언젠가 당신도 젊은 여자였을 내 엄마. 지금의 나처럼 아등바등하면서도 온 정성을 다해 우리를 키워냈을 엄마.


나는 우리 엄마의 육아가 무척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정적 증거. 우리 딸 셋이 각자 나름 잘 컸다. 그리고 엄마에서 나로 이어진 육아법으로 우리 인규가 꽤 멋진 사람으로 크고 있는 거 같다. 이 프로젝트는 그래서 시작했다. <배영옥 육아> 이름으로 엄마의 육아법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해야지. 당신의 멋진 삶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졌다, 말씀드려야지. 물론,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함께 공유하고 싶다. '일일우일신'. 늘 내 인내보다도 한걸음 앞에서 매번 새로운 고비를 만들어내는 육아 앞에서 헉헉대는 누군가 있다면. 도움이 됐음 좋겠고,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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