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Oct 04. 2019

개미 키우는 할머니

인규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거다.

'우리집은 비폭력주의' 라고 알려주면서 모기를 때려 죽여야 하는 순간, 이런 거.

육아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는데, 모기는 왜 때려 죽여도 되는건지 설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한테 해가 되는 곤충이어서 죽이는 거야'라면, 쉬워 보이지만. 과연 사람한테 해가 된다는 게, 절대적 기준일 수 있을까? 되짚어보면 답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거미는 해가 되는 곤충인가, 아닌가? 징그러워서 나한테 심리적 충격을 주면 그것도 해가 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식.


완전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우리집은 대체로 '모기만 잡는다' 뭐 이런 식으로 정해졌다. 어릴 때, 남자아이들이 잠자리를 잡더니 날개 양쪽을 잡아 산채로 뜯는걸 목격한 뒤로, 공포감 비슷한 게 있어서. 인규가 아무리 작아도 '생명은 소중하다'는걸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기야 미안...)


친정집에는 개미가 곧잘 출몰한다. 20년 넘은 낡은 빌라기도 하고, 집 바로 뒤가 산인지라 개미 나오는 건 귀여운 수준이다. 친정집 거실에서 인규가 자그마한 붉은 개미를 발견했다고 하면, 어김없이 '작전'이 펼쳐진다.


내가 "인규야, 개미 그냥 둬, 그거 할머니가 키우는 개미야"라고 하면,

엄마가 "그거 할머니 키우는 개미야, 할머니가 데려갈게"라고 하는거다.


우리 엄마는 따뜻한 미소로 다가와 손 끝으로 개미를 꾹 누른 다음 부엌으로 가신다. 인규는 뒷베란다 문을 여는 할머니가 개미를 창문 밖에 놔준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개미는........ 무튼 그렇다.

서로 눈짓손짓 할 필요도 없이 착착. 개미가 나오면 어김없이 착착, 할머니는 개미를 조용히(!) 데려가신다.


'개미 키우는 할머니' 얘기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였을까... 쌀나방이 벽에 붙어있는데, 내가 엄마한테 농담처럼 '엄마, 얘 내가 키우는 애야' 라고 말했다. 쌀나방이 꽤 착해 보여서 그랬던 거 같다. 거미나 돈벌레에 비해 모양새가 징그럽지도 않으면서, 걔는 소리도 안 내고 잘 이동하지도 않고 떼지어 다니지 않았으며 그냥 조용히 벽에 붙어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 뒤로 몇 년을, 우리 집에서 더이상 쌀나방이 발견되지 않을 때까지 절대 쌀나방을 '때려잡지' 않으셨다. 심지어 언니들한테도 '걔 경아가 키우는 애야' 라고 소개하셨다. 나는 그런 상황이 재밌었고,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호응해주는 게 좋았다. 인규를 낳기 전까지 나는, 우리 엄마의 그런 모습을 그냥 '센스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인규가 개미를 함부러 밟지 않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육아 파트너가 우리 엄마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런 사소한 마음에 공감해주는 육아 파트너가 있다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반대로, 꽤 많은 어른들이 개미를 밟는 아이들을 그냥 두거나, '개미 밟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나를 까다로운 엄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규야, 할머니가 키우는 개미야' 라고 말해주는 엄마가 고맙고, 좋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개미를 함부러 하지 않는, 그 마음 자체가- 엄마한테서 온 거였다. 쌀나방 키우는 엄마, 개미 키우는 할머니.


한겹 더 들어가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변기에 앉아 있는데 개미가 줄지어 올라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종종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왜 개미가 줄지어 가는 이런 집에 사는가, 뭐 이런 류의 짜증이었다. 그리고 그 짜증의 끝은 늘 만만한 엄마를 향했다. (아, 나쁜 딸년...)


엄마와 내가 '그 쌀나방, 키우는 애야' 라고 하는 건. 쌀나방이 집에 붙어있는 그 환경. 그게 당장은 쌀나방이지만, 언제는 발톱만한 거미였고, 언제는 새끼손가락만한 돈벌레였고... 그런 환경에 대한 서로의 '이해'기도 했다. 빛이 적은 오래된 빌라에 사는 우리 가족이 서로 짜증내는 대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장치였던 거다. 배영옥과 그 셋째 딸은. 아무리 작아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니까.


인규는, 모기도 잘 안 나오는 깨끗한 고층 아파트에 살지만. 인규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크고 있는 거 같다.


덧)이 글을 쓰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러고보니, 배영옥 여사. 쌀나방도 나 안볼 때 때려잡으셨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배영옥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