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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Dec 18. 2021

K는 지난 새벽, 모르는 이의 탯줄을 잘랐다.

지금 여기, 코로나19 한 장면.

K는 응급실에서 일한다.

K는 지난 새벽, 탯줄을 잘랐다. 아이 아빠를 대신해서.


산모와 신생아는 탯줄이 연결된 채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들어왔다. 코로나19 양성이 확인되자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없었다. 아이가 곧 나올 것 같다고, 119에 도움을 요청한 산모는 결국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고, 탯줄이 연결된 채 응급실에 들어왔다. 응급실에 신생아를 눕힐 배시넷은 없다. 포대기에 쌓인 아기는 산모 옆에 자리 잡았다. 태반까지 무사히 빠져나왔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지만 분만실에서 이뤄졌을 꼼꼼한 후처치까지는 어려웠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지만 코로나에 감염된 산모와, 그가 이제 막 낳은 아기를 받아줄 병원은 없다. 그 둘은 계속 응급실에 있다.


K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부디 첫 아이가 아니기를.


1년 전 겨울, 아기를 낳기 전, 나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음성이 확인돼야 입원이 가능했다. 그때 내가 양성이었으면 그때 난 어떻게 됐을까. 지금 응급실에 누워있을 그녀와 그녀의 아기는 나와 내 아기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어딘가에서 몇 개의 병상을 비우고 나를 받아줬을지도 모른다. 그럴 여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위중증 환자는 1,016명. 과연, 지금 이 시간, 코로나에 감염된 중증 환자 1천 명을 받아줄 격리 병원과 의료진이 있을까? 분만 직전 산모라고 '일단 여기로 오세요'라고 할 시스템? 그런 건 없다. 심장이 덜컹 한다.


부디 첫 아이가 아니기를.

보통의 경우, 병원에서 출산하면 산모가 후처치를 받는 동안 간호사들이 아기를 데려가 기본적인 검사를 한다. 열이나 출혈이 없는 질식분만 산모라면 몇 시간이 지나 전화를 받는다. '아기한테 젖을 물려보시겠어요?' 첫 수유를 시도할 것인지 물어온다. 어디까지나 시도다. 온갖 고통을 겪고 세상에 태어나 '중력'이란 걸 처음 경험하고 있을 아기도 무척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처음 아기를 낳은 여자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수유란 경험 자체가 굉장히 이질적이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아기를 위한 도구라니. 사실 그런 당혹스러움을 직면할 여유조차 없다. 온몸의 뼈는 벌어져 있고 훗배앓이는 시작된다. 대체로 아가들은 그사이 신생아실에서 신생아 전문가인 간호사 선생님들을 통해 분유를 먹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급격한 내 몸의 변화와 신생아란 존재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 그 산모는 응급실에 있다. 아기도, 응급실에 있다. 그래도 경산모라면, 한 번 해봤던 사람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나을 텐데. 그녀는 지금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신생아를 돌봐줄 선생님들은 계실까. 아, 초산이면 어쩌지. 몸도 제대로 못 추슬렀을 텐데 아기 수유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격리'된 곳일 텐데. 적절한 도움을 잘 받고 있을까. 아... 대체 얼마나 힘들까.


위드 코로나를 빨리 중단해야 한다고, 의료 현장은 준비가 하나도 안 됐다고 K가 말할 때, 사실 조금 시큰둥했다. 벌써 2년이 넘었는데, 다들 백신도 맞았는데. 일상을 살 사람들은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정부가 다시 방역을 강화하자 K는 중얼중얼 이렇게 말했다.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그때까지도 사실 느낌이 잘 안 왔다. 내 이야기가 아니면 이토록 감각이 무뎌진다. 잔인한 일이다.


잘 모르는 사람. 하지만 지난 새벽 막 출산을 했고 신생아를 안고 응급실에 있을 한 여자. 그녀를 생각한다.

기껏 생각한 게 저거다. 부디 첫 아이가 아니기를.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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