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셋째 주.

드디어 봄

by SAN

_음식, 어디까지 해봤니.


생전복을 처음으로 손질해 봤다. 2호가 영 밥을 안 먹고 기운 없어하길래 야심 차게 준비한 특식. 생전복 한 마리에 4.99불이라니 한국보다 가격도 좋은 거 같고. 레시피 읽어보니 '숟가락으로 살살 돌리면 가운데로 움찔하는데 그때 숟가락으로 떼어냅니다'라고 쓰여있어서. 숟가락으로 떼어만 내면 되니 별거 아니다 싶어 정말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와...... 하지만..... 오징어도 냅다 손질하고, 물고기도 잘 잡는 내가. 전복 손질하다 인류애가 바사삭하는 걸 목도했다. 요리하다 소름 돋은 거 처음.


일단, 살아있는 전복을 숟가락으로 떼어낼 때... 목숨 끊는 느낌이 난다. '우지끈'. 그때 예감이 좀... 안 좋긴 했다. 다음, 바다를 사랑하는 나는 물속에서(!) 그들의 눈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좀 찝찝하긴 했는데... 우지끈 목숨을 끊은 뒤 눈 있는 부분을 칼로 그어 이빨을 떼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들은 살아 움직......... 그래, 여기까지.


다시 생각해 보니 레시피에 '전복죽은 전복 손질만 하면 그리 어려운 요리가 아니에요'라고 쓰여있었다. 아. 당했다. 전복요리는 함부로 도전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맛은 있었다ㅠ)


내가 전복죽에 별생각 없이 쉽게 도전한 이유는, 우리 엄마가 전복 요리를 자주 해줘서다. 특히 전복장을 잘해주셨는데 그 입맛 까다로운 우리집 1호도 '전복젤리'라고 부르던 외할미 전복장으로 배를 채웠다. 나를, 내 아이를 먹이는 동안 나는 엄마가 '우지끈' 하며 전복 수십 마리를 해치웠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결국은 또, 겪어야만 안다.

맛은 있지요. 네네.


_미국 생활에서 '어디까지 해봤니'로 잊지 못할 사건 중 하나다. 전. 복. 손. 질.


다른 기억은 지난해 고춧가루를 직접 만들어낸 거다. 내가 모종부터 키운 고추를 빨갛게 익었을 때 따다가 정성껏 말렸다. 어릴 때 집 어딘가에 엄마가 고추를 펴 말리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볕에 빨간 고추를 펴놓던 짧은 기억. 시간이 지나 바스락 소리가 나던 기억. 알싸한 냄새까지. 그런데 막상 내가 고추를 말려보려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쉽게 곰팡이가 피어서 손이 보통 가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또 내가 직접 말린 고춧가루는 한인마트에서 파는 새빨간 고춧가루보다 더 맛있었다. 손이 더해져야 맛이 깊어지나 보다.


우리 엄마는 그 모든 걸 하고 어떻게 살았을까.


_미국은 정말 이벤트의 나라다. 특히 학교에서 가족 동반 행사가 무척 많은데 2호 PreK에서 'Spring Fling' 초대장이 날아왔다. 플링? 검색해 보니 썸에 가까운 연애를 플링이라 한단다. summer fling 이런 거. 오호라...? 흠흠... 스프링 플링은 봄철 주로 학교에서 개최하는 '즐거운 행사'라고. 1호와 1호 친구까지 같이 학교해 2호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날은 따뜻하고, 마당에는 아기자기한 기차가 돌고, 서로 이름 부르며 뛰어다니는 아가들은 너무 귀엽고. 라쿤이 음식 훔치려다 들키는 장면까지- 완벽했다. (네, 티켓값 빼고요^^)


너~무 좋은 2호 글씨.


이 많은 학교 이벤트를 부모들은 다 어떻게 참석하나 싶은데. 그만큼 유연한 노동도 많고 재택도 많고. 특히 내가 사는 마을이 워낙 'Family First'가 확고한 곳이라 다들 부지런히 참석하고 부지런히 집을 꾸미고 부지런히 즐긴다. 애 셋이 기본이다.


_'또' 비가 예보된 토요일.

그런데도 또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내 원칙 중 하나가 '미국 자연재해 무시하지 말자'인지라 비 예보에 따로 계획을 안 세웠다. (또...ㅠㅠ) 어제까지 너무 무리하기도 했고 2호 컨디션도 아직 안 돌아온지라, 가볍게(?) 실내 놀이터 한 곳을 다녀왔다. 대형 트램펄린 놀이터인데 딱 미국 스럽게 그냥 뭐, 대충 크고 대충 돼 있다. 한국처럼 아기자기 잘 돼있지 않기도 하고, 비싸고, 여기는 밖에서 놀 거 천지인지라 굳이 실내 놀이터를 가냐 싶은데. 실제로 주로 생일 이벤트로 온 사람들이 많은 듯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들은 신이 남으로. 신나게 노는데. 입장할 때 2시간 제한에 한 시간 초과 때마다 한 명당 10불씩이 붙는다는 말에 시간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막판 한바탕 트램펄린도 뛰고, 게임도 하고, 인형뽑기까지 야무지게 하고- 방전된 애들을 재촉해 가며 출구로 나갔다. 8분쯤 늦어서 괜찮나, 싶으며 나갔는데. 어머, 아무도 퇴장 시간을 체크하지 않고 있었다...!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체크아웃 어디서 해?' 했더니 그냥 가랜다. 여기 시간제한 있잖아... 더 놀면 돈 더 내야 하잖아?? 그 직원은 동공지진 일으킨 나를 보고 '그냥 가! 가면 돼!'라고 반복한다. 끝내 미심쩍어서 더 똘똘해 보이는 다른 직원한테 또 물어봤는데- 그냥 가면 된단다.


나는 왜 아이들을 재촉하였는가... 트램펄린 한 번 더 타고 올걸. 그러면서도, 참 미국 스럽다 싶었다. 어떤 면에서 시스템이라고는 없는 듯이 보이고, 무뢰배들이 판치는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신뢰사회인 곳. 특히 비용을 내고 '입장'한 곳에서는 더 그런 면이 있는 듯싶다. 디즈니랜드에서 새 굿즈, 옷, 딱 집어가기 좋게 보이는 물건 그냥 그대로 유모차에 두고 놀이기구 타러 가는 거 보면서 신기했다. 이 나라에서 다리 하나 지으려면 100년은 걸리겠다 싶을 만큼 느리게 느리게 돌아가지만 그래도 이 나라에서 다리가 무너질 일은 없겠다 싶은 곳. (물론, 배가 다리를 갖다 박는 일은 오늘도 일어났지만...)


무튼. 알아보고. 쫌만 더 놀다 올 것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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