퐈.열.쳑.
_외국에서 처음 살아본다. 친구들 대부분이 교환학생이나 워홀 등으로 짧고 긴 유학 생활을 해봤는데. 내 대학생활은 좀처럼 낭만도, 자아실현도, 자기계발도 틈을 내기 어려웠다. 서운함이랄까 '한'이랄까. '나만 못해봤다' 이런 마음이 늘 있었는데. 그걸 나이 마흔에 하게 됐다.
큰일 났다. 지금까지는 영어를 못 해도 '나는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는 연민 한 방울 넣은 꽤 괜찮은 핑계가 있었는데 이제 그 핑계가 사라졌다. 미국 거주 15개월 차, 나는 '브로큰 잉글리시'의 강자가 됐다. 하고 싶은 말을 제법 하지만 어느 문장 하나 맞는 게 없다. ChatGPT는 나에게 "의미는 잘 전달되지만, 조금 더 자연스럽고 매끈하게 다듬어 드릴게요"라고 하거나, "조금만 다듬으면 더 자연스럽고 문법에 맞습니다"라고 한다. '문법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는... 들은 적이 없다.
나는 늘 내 무식한 문법과 짧은 어휘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의외로 '발음과 억양'이 큰 걸림돌이었다. 미국 영어는 정말... 내가 생각한 수준에서 버터를 크게 한 조각 더 발라야 했다. 맨해튼 아니고 '맨.햇-은'이다. 이게 사실 물결모양 그래프 같은 미국식 억양이 더해져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나는- 글렀다. 특히 R과 W발음은 유난히 안 되는데, 나는 하필 Ridgewood라는 곳에 산다. 스몰 토크의 제왕 미국인들은 날씨 얘기 다음으로 '어디 살아?'라고 많이도 물어보는데. 내 답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 Ridgewood 사는데 너네 R과 W발음이 너무 어려워"를, 틀린 문법으로 말하며 스몰톡을 자연스럽게 끝낼 수는 있게 됐다.
_지하 골방에서 1년 일하고,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애정하는 한국 이웃들 혹은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일본 이웃들과 신나게 교류하는 나와 달리. 미국 학교에 다니며 매일 반나절 이상 영어를 쓰는 아이들은 영어가 정말 빨리 늘었다. 최연소자, PreK에 다니는 2호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현지 발음을 구사한다. 형한테 "영어 이상하다"며 구박받는 엄마를 보며, 2호가 "내가 영어를 가르쳐주겠노라" 나섰을 땐 정말 '학씨!'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래, 육아는 인내다, 인내. 그리고 영어 쓰는 2호가 귀여워서 앉아서 따라 해봤다. 주제어는 'fire truck'. 파이어 트럭. 그런데 2호는 나에게 다섯 음절이 아닌 세 음절을 알려줬다.
퐈.열.쳑.
하- 이거구나. 내가 영어가 안 되는 이유.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모든 미련이 사라졌다. 영어, 학- 씨. 됐다, 여기까지만 하자. 얘들아, 너네라도 행복해라. 그리고... 엄마 덕분인 거 잊지 마라. (그리고 한국 가서도 열심히........ 그래,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