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로 바라보기
그들이 이뤄낸 결과물을 나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곱 명이 기록하는 놀라운 숫자는 다른 채널에서 충분히 이야기되고 있다. 나는 그저 성장 서사에 한없이 무르고, 브랜딩 작업에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방탄소년단이 선보인 좋은 브랜드의 요소에 대해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브랜드 스토리가 중요하고, 그만큼 잘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는다. 브랜드 스토리는 사실상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음악을, 왜 이런 물건을 나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지 당위성을 만들어주는 장치인 셈이다.
방탄소년단 음악의 내러티브는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실패와 환희에서 온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그리고 유혹에 관해 말했던 WINGS를 넘어 사랑에 관해 말하는 LOVE YOUR SELF까지. 이 과정에서 노래 주인공의 세계는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며 하나의 맥락을 만든다.
학교라는 특정 공간에서 눈을 뜬 후에 학교 바깥으로 나와 혼란스러운 세상을 보며, 그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상처 입은 나를 바라본다. 이내 이 상처를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됐지만 곧 무참히 끝나버리고 만다. 소년은 쉽게 기쁨에 차오르고 배짱 좋게 소리를 지르다가도 깨지고 무너진다. 이는 소년이 거대한 세상에 서기 위해 겪는 전통적인 성장 서사이며 더 쉽게는 '청춘'이라 부를 수 있다.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과정을 그와 같은 나이대의 소년들이 직접 그려냈다. 그들은 일상생활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 그러하듯-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을 흥 넘치게 말하고 음악을, 음악을 하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노래했다. 주요 활동곡도 그렇지만 First love, Reflection, Awake, Begin, MAMA, 네 시, (믹스테잎) August D, (믹스테잎)Hope world와 같이 수록곡이나 아예 비상업 앨범을 통해 멤버 개인이 직접적인 화자로 등장하는 음악은 몰입도를 더 높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은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콘셉트를 표현하는 퍼포먼서가 아니라 이야기 속의 주인공 그 자체가 되었다. 즉 똑같은 사랑 노래라 하더라도 이들의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서사의 일부분이 된다. 아이돌 그룹의 짧은 생명력, 그로 인한 장기적인 서사/콘텐츠가 부재하는 상황에 비춰보면 이들이 축적한 맥락은 곧 브랜드가 그토록 원하는 '고유한 가치'로 귀결된다.
상징은 힘이 세다. 서사가 함축되어 있는 상징은 눈에 보이는 색감과 형태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깊은 의미의 영역으로 대상을 끌고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을 잘 활용하는 브랜드는 긴 말 필요 없이 세련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뮤직비디오에서 다양한 상징을 활용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것이다. 알을 깨고 날아가는 새의 그림, 진과 석고상의(실은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키스, 신의 뜻을 거스른 천사와 이카루스의 그림 등등. 이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것으로,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기존의 소년 세계에 균열을 내고 선악이 뒤섞인 세계로 진입하는 데 등장했던 상징물이다. 이는 뮤직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로 일곱 명 각각의 멤버들이 유혹에 흔들려 기존 세계를 깨버리게 하는 장치로 쓰인다.
'봄날'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차용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결시킨다. 해당 소설은 죄 없는 어린아이의 희생을 통해 유토피아와 같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뮤직비디오에서는 Omelas라는 집에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더러운 옷가지-희생당한 존재-를 깨끗하게 해 준 후, 기쁨을 누리던 모두가 그곳을 함께 떠나고 새로운 곳에서 빛을 맞는다. 원전에서는 모두 혼자서 떠나지만, 방탄소년단은 함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상징은 훼손되지 않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단초로 거듭났다.
한편 방탄소년단은 화양연화 앨범부터 THE NOTE라는 이름의 북클릿을 제공하고, 뮤직비디오 역시 이와 관련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이는 BU(BTS Universe)라는 이름으로 엮이며
거대한 팬덤이 직접 그들의 세계를 탐험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든다. 상기한 두 가지 상징 예시는 개별 곡-앨범 자체의 스토리이자 BU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도 작용한다. 일관된 문맥 안에서 확장되는 이야기, 그리고 꼭 맞게 배치된 상징은 설득력을 높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방탄소년단의 세계는 앞서 말한 방식을 통해 공간적으로, 감정적으로, 음악적으로 꾸준히 확장되어 왔다. 학교-청춘-사랑으로 넘어가는 단계마다 넓어진 감정의 폭을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놀라운 퍼포먼스로 표현해 폭발적인 지점을 만든 것이다. 팬덤의 규모는 이러한 성장과 맥을 같이 했다. 2014년 2,000석의 (구)악스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했던 이들이 올해 8월 5만 석 규모의 잠실 주경기장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스타디움 공연을 포함한 월드 투어를 통해 총 79만 명의 관객을 만난다고 할 정도다.
브랜딩 에이전시 플러스엑스가 지난해 진행한 방탄소년단 BX 디자인 리뉴얼 작업 결과물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플러스엑스는 방탄소년단의 단순 약자였던 BTS에 'Beyond The Scene'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뛰어넘어 꿈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며 성장하는 청춘'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정의는 방탄소년단이 그동안 보였던 행보를 아우름과 동시에, 변하지 않는 맥락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5년 차에 정규 앨범(한국어 앨범 기준) 3장을 냈다. 각 앨범의 곡 수는 14곡, 15곡, 11곡이고 정규가 아닌 미니 앨범도 9~10곡이 실려있다. 모든 정규 앨범뿐만 아니라 화양연화 pt 1/ pt2, LOVE YOURSELF 承 'Her' 등의 미니앨범에도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꼭 들어가 있다. 음원이 아닌 하나의 무드를 완성하는 앨범을 중시하며, 음악을 듣는 순서를 고려해 구성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상당수 작사/작곡가에 멤버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안 바쁜 게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BANGTAN TV, V앱 영상, 트위터 등등의 콘텐츠를 보다 보면 멤버들의 대화를 통해 평소에도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르도 다양하게 시도한다. 뭄바톤, 트랩, 칠 아웃, 이모 힙합, 라틴 팝 등등 팝 시장의 트렌드를 발 빠르게 뒤쫓되 자신들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입힌다.
이렇게 만든 결과물은 모두 완벽하지는 않아도 당시의 그들에게는 최선이었던 덕분에 수많은 사람에게는 놀라움과 기쁨이 되었다. 국내 음악 방송 1위를 꿈꿨던 한국의 신인 아이돌이 5년 차에 빌보드에서 상을 타고 무대를 선보이는 일, 콧대 높은 팝스타들도 긴장한다는 스타디움 공연을 전석 매진시킨 일은 단순히 팬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토록 많은 팬이 무엇을 듣는지 알아야 이해가 될 일인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24일 LOVE YOURSELF 結 'Answer'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 포토에서 일곱 명의 청춘은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실타래 위에 앉아 마주 선 이를 똑바로 바라본다. 사랑을 발견해 기뻐하고 또 절망했던 이들이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지, 다시 한번 현재를 넘을 수(Beyond The Secne) 있을지,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하나의 브랜드로써 어떤 콘텐츠를 통해 대중을 만날지 기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