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CM의 말하기와 무인양품의 디자인

브랜드를 살리는 여백(餘白)

by 이경

나는 무언가 이야기할 때 신경을 쓰는 부분이 많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재미있는 것인지 혹은 도움이 될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최소한 불쾌하지는 않을 이야기인지, 이야기를 하는 장소와 시간에 너무 어긋나지는 않을지,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상대방의 귀를 아프게 하지는 않는지, 상대방도 공감을 해서 반응할 만한 이야기인지 등등.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거고 그게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누가 나한테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림이라 그렇게 행동하려고 애를 쓸 뿐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혹은 좋아할 사람에게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알고 싶다"



흥미롭다는 생각이 중요한 것은 사람-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브랜드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관계에서 흥미로움은 소비로 직행된다. 소비의 경험에서 오는 감정이 최초로 느낀 흥미로움과 일치한다면 소비자는 재구매를 하고 브랜드 자체를 인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두 번, 세 번 반복된 이후에는 팬이 되어 해당 브랜드를 주체적으로 알리는 새로운 기지국이 될 것이다.


대체 흥미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이 성립하려면 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어떤 외양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가늠만 할 정도의 거리. 여기서 가늠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한 두 걸음 더 거리를 좁히면 더 풍부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경험은 입체적이 된다. 호감을 갖고 한 걸음 다가간 사람과 사이가 깊어지는 것처럼, 브랜드와 사용자의 만남도 그렇게 차근차근 관여하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29CM / 메인 페이지


29CM의 메인 페이지 카피와 화면 구성은 함부로 들이밀거나 세게 잡아끌려고 하는 대신 살짝 떨어져서 이런 게 있습니다- 하고 말한다. 여기에는 주제가 명확히 보이는 이미지, 사용자가 평소에 떠올렸을 만한 언어를 활용한 텍스트가 전부고 디자인은 이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심플하다. 그래서 어렵다.


29CM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이다. 매일매일 수익과 관련된 수치가 기록된다. 사용자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아서 빠르게 판매율을 높여야 하는 숙명을 지닌 곳인 셈이다. 그래서 쇼핑몰은 자주 자극적이고 화려한 언어와 디자인의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미디어 커머스'를 표방하는 29CM의 브랜드 정체성은 이런 속성을 드러내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상품을 살 만한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것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코멘트를 건네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친근하지만 파동은 생각보다 크다. 감응한 사용자는 리액션-클릭/터치하여 상품 정보를 알아보는 것-을 하게 된다.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 메인 페이지에는 이를 통해 훌륭하게 제 기능을 해낸다.




"가져오고 싶다"


무인양품 / 홈페이지 '無印良品' 이야기' 페이지 헤드 이미지


'인장이 없는 양질의 상품'이라는 브랜드 이름처럼 무인양품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고 심플한 상품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나무 소재나 백색, 오트밀 색, 회색 등 부드러운 색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형태가 눈에 띄게 유니크한 것도 아니다. 로고만 새로 붙여서 다른 데서 나왔다고 우기면 납득할지도 모른다. 무인양품 대부분의 상품은 그저 어디에 두어도 튀지 않고 무난하게 공간을 채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광한다. 내 공간에 가져오고 싶기 때문이다. 무인양품에 가면 무엇을 고르든 내가 여기 있다! 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소품을 살 걱정이 없다. 내가 있는 공간이 어떤 식으로 꾸며져 있든 무인양품의 물건들은 잘 녹아들 것이다. 내가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어도 무인양품에서 파는 양말이나 신발은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심지어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그것들로만 공간이나 패션 스타일을 구성해도 모던한 분위기를 쉽게 연출할 수 있다. 가격대가 높은 편도 아니니 큰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고 실패할 확률이 낮다. 가져오고 싶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 꾸준히 모아지면서 역설적이게도 브랜드의 색을 만들었다. 이제 많은 사용자들이 극도로 절제된 모양과 색을 지닌 소품을 보고 무인양품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크고 작은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들은 '무인양품 스타일'로 꾸민 공간에 자신의 상품을 배치하고 홍보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 좋아하는 혹은 좋아할 사람에게 흥미롭고 싶다고 썼다. 조금 말을 바꿔 쓰자면 여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관계는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점거하면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마음과 생활에 들어가고 들어오게 하는 것. 브랜드도 다를 바 없다. 여백이 있는 브랜드는 스스로를 살리고 사람을 숨 쉬게 한다. 브랜드를 다룬다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내가 다가가고자 하는 상대에게 나는 얼마큼의 여백을 허용해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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