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자정이 조금 안되는 시간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잔잔하게 흔들리는 택시 뒷좌석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죠. 팔이 아팠거든요. 옆구리에 낀 천가방은 회사에서 쓰는 노트북과 이런저런 인쇄물로 터질듯했고, 일을 하면서 마실 맥주와 안주거리를 담은 종량제 봉투는 지나치게 컸습니다.
차가 깜깜한 대공원을 돌아 큰 도로로 막 접어들었을 때 양 옆에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차들이 바쁘게 스쳐갔습니다. 다들 이 늦은밤에 어디를 가는 걸까 생각하다 금요일이니 신났나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죠.
라디오에서는 잘 모르는 노래를 잘 모르는 DJ가 계속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제 이어폰을 끼고 싶었기도 했지만 굳이 꺼내지는 않았어요. 고장이 나버려서 음악이 나오다가 끊기기를 반복하는 상태였거든요. 도대체 무엇을 듣고 있는지 모르게 만드는 이어폰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렇게 조곤조곤 흐르는 조용한 소음에 약간은 몽롱한 기분이 될 때 문득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습니다. 흘러간 인기곡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두어 번 스쳐 듣고는 마음에 들어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던 곡이었죠.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이라 노래하는 쓸쓸한 청년의 목소리가 택시를 메웠습니다.
저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차창 너머의 풍경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았어요. 불이 꺼진 가게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죠. 노랫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는 표현이 꼭 사랑 노래를 들을 때만 쓰이는 건 아니더군요. 조금 슬펐어요. 이런 밤이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차는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카드를 내밀어 택시비를 결제한 후에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죠. 울퉁불퉁한 길. 닫힌 문. 미처 꺼지지 않은 불빛들. 가방과 봉투를 이고지며 걷던 그 길에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어서 제 발걸음 소리와 봉투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만 가득했어요.
참 별 것도 아닌 이야기죠. 그 밤 길에 피어 흔들리던 들장미는 진즉에 색이 바래 떨어졌어요. 가방과 봉투는 비워져 어디론가 치워졌고 길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또 무거워진 제 팔을 버티며 가야할 때 어쩔 도리 없이 거기로 갈 뿐이죠.
당신에게도 그렇게 걷는 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같이 걷거나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넬 수는 없습니다. 그냥 저에게도 그런 길, 그런 시간이 있다고 말할게요. 그뿐입니다.
블라인드 레터[Blind letter] : 수취인 불명의 편지. 모두에게 혹은 아무도 아닌 이에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