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바다를 보러 왔습니다. 거의 일 년만입니다. 저의 바다는 늘 동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던 투명한 바다가 몰아쳐 부서지면서는 하얗게 새다가, 끝없을 것 같은 깊이가 생길 때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물은 변하지 않지만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동쪽 바다는 이것을 명확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저는 이 광경을 좋아하지요.
바다에 도착해서도 하늘이 흐린 것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는 듯이 모래사장을 거니는 사람들을 햇빛이 구름 사이 작은 틈새로 비추는 광경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손을 맞잡은 연인과 두꺼운 웃옷에 꽁꽁 싸인 아기와 아기를 안은 부모, 살짝 들떠 보이는 노인들이 바다 곳곳에 있었습니다. 저도 소란스레 사진을 찍는 무리를 지나쳐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했습니다. 찬 바람을 맞은 것처럼 물기는 금방 말라버렸지만 비릿하고 짠 바다의 냄새는 꽤 오래 남아 있었지요.
몇 시간이고 바다에 머물며 제각기 다른 형태의 파도를 보았습니다. 모래사장에서는 옅은 연둣빛을 띈 맑은 바닷물이 한 두 뼘 높이로 솟아올랐다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파르르 끓어오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는지 모릅니다. 커다란 바위에 부딪치는 바닷물도 투명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훨씬 파란빛에, 둥글게 휘몰아치며 있는 힘껏 바위에 자신을 던지는 모습이 보는 저까지 빨아 들일 것 같더군요. 산산이 깨 부숴 지고 희게 흩어지는 바닷물에 커다란 바위도 별 수 없이 흠뻑 젖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리 쉼 없는 파도를 바라보다 당신을 생각한 것은 하릴없는 일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 마음에 몰아치는 것도 떠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파도가 제각기 다른 모습인 것을 보았다고 적었지요. 마음에 치는 파도는 제 물살에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지도, 부딪쳐 깨질 단단한 바위도 없이 그저 일렁일 뿐입니다. 매번 넘치지는 않지만 완전히 가라앉힐 수는 없습니다. 바위에 파도가 실어 나른 따개비와 해초가 켜켜이 쌓인 것처럼, 파도를 가둔 곳에 시간의 더께가 쌓인 것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있으며 해가 집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작은 모래 알갱이가 신발 어디엔가 숨어든 것 같습니다. 툭툭 털어보겠지만 편안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바다에 올 때면 파도를 보느라 생긴 모래의 흔적을 완전히 털어버리긴 어려웠습니다. 물론 그것이 오지 않을 이유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아마 바다를 보며 또 편지할 날이 있을 겁니다. 그때, 다시 오랜만이라고 인사하겠습니다.
블라인드 레터[Blind letter] : 수취인 불명의 편지. 모두에게 혹은 아무도 아닌 이에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