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나의 불행을 견디는 일

by 이경

블라인드 레터[Blind letter] : 수취인 불명의 편지. 모두에게 혹은 아무도 아닌 이에게 씁니다.




밤이 무척 깊었습니다. 노곤한 하루를 씻어내고 편지를 씁니다.


다만 음악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된 선곡표를 뒤로 하고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어요. 그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듣고 있다가 선곡표를 다시 한번 바꿔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재생되도록 해놓았습니다.


옛 생각이 나는 음악을 들으며 라디오 DJ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프로그램을 끝마칠 때 DJ는 자신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 '좋아하는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라고 말했어요.


저도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남은 삶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을 때도, 밤은 무수히 이어지겠지만 반짝이는 별 하나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죠. 하지만 너무 물러서 흘러넘치는 마음이었어요. 단단히 여미지 못한 마음을 본 어떤 사람들은 제게 걱정과 조언을 때로는 은근한 불안을 건네곤 했습니다.


많이 흔들렸습니다. 건네받은 것들이 순식간에 불어 나는 바람에 그 무게에 휘둘려 넘어지기도 여러 번이었죠. 하지만 아예 다른 방향으로 걸을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사실은 안 했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을 떼고 다른 쪽으로 걷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선택한다는 건 그런 거잖아요. 감내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축복을 받았기에 불행하지 않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적어도 시시때때로 닥쳐올 불행의 출처는 알고 있겠다는 의지였어요.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 것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내리쬐는 햇빛이 좋아서, 바람이 시원해서, 설레는 마음을 만끽하고 싶어서, 슬픔과 공허함을 달래고 싶어서 오래도록 걸으며 살고 싶었어요. 길이 얼마나 험하든 크게 상관은 없죠. 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삶의 무게를 조금은 덜 수 있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택했기 때문에 불행하다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자주 벌어지곤 해요. 그래도 견뎌보려 해보기는 합니다.

당신도 무언가를 위해 무수한 날을 견디고 있겠죠.


끝없이 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기를 바라요. 적어도 어느 한순간만큼은 영원히 늙지 않겠다고, 함부로 낡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꼭꼭 씹어 삼키길 멈추지 말았으면 합니다. 불행하지 않을 기적보다 불행에 견딜 수 있는 작은 희망이 삶에 더 유효하리라는 것을 알잖아요.


내일은 어디를 걷게 될까요. 어떤 음악이 들릴까요. 가만히 생각하다 잠드는 당신을 상상해보다가 오늘은 저도 눈을 감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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