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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Jan 10. 2020

1/9_가족 모임

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6/356)

 내일이 할머니 생신이셔서 같은 지역에 사는 가족들끼리 모였다. 식당에 가니 최근 다리를 수술하진 할머니께서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계셨는데 살짝 당황스러웠다. 어르신께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사실 조금 귀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엄마께서 몰래 나한테 봉투를 주신다. 할머니께 내가 준비한 용돈인 것처럼 드리라는 것이다. 오늘도 엄마 대신 봉투를 내밀며 어른인 척하고 왔는데, 부모님께 죄송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받으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한테 로또가 되면 갚는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뿐이다.

 할머니는 올해로 79세시다. 케이크에 초를 꼽으려다가 초가 우수수 떨어져서 깜짝 놀랐다. 합의 끝에 큰 초 7개만 꽂기로 했다. 케이크는 반은 식당에 감사의 마음으로 전하고 나머지는 할머니와 손자, 증손자들에게 나눠졌다. 나는 너무 커버려서 나에게까지 돌아오진 않았지만,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너무 가식적인가 ^^ 그렇지만 아가들이 볼이며 코에 온통 초콜릿을 묻히고 빨간 풍선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는 걸 구경하는 걸로도 충분히 당이 차올랐다.

 오랜만에 사촌오빠의 아이들을 만났다. 올해 5살, 3살이던가. 큰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더니 제법 의젓해졌다. 작은 아이는 낯선 곳에서도 울지도 않고 호기심이 넘쳤다. 어쩜 둘 다 부모님을 쏙 빼닮았는지. 오빠한테는 연락 좀 하라고 해드 락에 두 번 걸렸다. 그나마 최근 오빠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서 그 정도로 끝났다. 연락을 위해 운을 떼는 것은 어찌 그리 힘든지. 전화 걸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 그러나 그건 다 내가 게으른 탓이다.

 막내 사촌 동생은 키가 183인데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했다. 언제부터 중학교 졸업식이 1월이 됐을까? 엊그제 졸업했다는 데 전혀 몰랐기 때문에 미안했다. 덩치는 한참 전에 어른보다 커져서 인제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이 안 믿긴다. 오늘도 대화하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아직도 한참 아기다. 정말 웃겼던 건 사촌오빠와 동생의 나이 차이가 동생과 사촌오빠 아이의 나이 차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빠가 네 나이 때 너는 저만했어'하니 자기도 웃기는지 웃더라. 

 나에게도 오빠는 6살이나 차이가 나서 어렸을 적엔 참 어울리기 힘들었다. 친가 사촌들 사이에서 나는 딱 중간이었다. 그것도 위아래로 편차가 심한 나잇대의 중간. 그래서 사촌오빠들이 놀아주는 사람은 거의 세 살 터울 위인 우리 친언니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나까지 끼워주긴 애매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밑으로 대빵이 되어서 주로 아래 녀석들과 놀곤 했다. 그런데 갓난쟁이던 막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니 참 신기하다. 부모님들이 우리 형제, 그리고 나에게는 조카인 손자들을 보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시는 걸까? 

 그동안 가족모임을 하면 항상 힘들었다. 대학생일 때는 빨리 이 자리가 끝나길 빌면서 핸드폰을 했는데, 이제 나이가 점점 차니 나서서 대화도 많이 하고 리액션도 늘려가고 있다. 어른들과 아이 사이의 중간 다리가 되는 게 예전엔 싫었다. 짐스럽고 부담스러운 자리었다. 이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가 더욱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긴다. 독립을 하고 나니 가족들에게 더욱 애착이 생기나 보다. 나에게 남은 조부모라곤 이제 할머니뿐이 안 계신데, 계신 동안이라도 더 좋은 추억 많이 남기고 살가운 손녀가 되고 싶다. 후회를 해보니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 사실 지금도 더욱 잘할수록 죄책감이 든다. 왜 예전에는 이렇게 잘하지 못했지? 하는. 이런 괴로움도 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감수해야겠지.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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