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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Jan 14. 2020

1/13_유니콘과 초콜릿 맛 치약에 대해

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8/356)

 나는 여성 서사를 좋아한다. '특히', '유독' 좋아한다. 그러나 '진정한' 여성 서사는 마치 유니콘과 같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존재할 거라 믿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하나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종래에는 기어코 지갑을 열고 마는 것이다. 양치질을 끝장나게 싫어하면서도 초콜릿 맛 치약이라면 하루에 다섯 번도 양치질하는 아이처럼 순진하게 말이다. 여성 서사라며 전부 뻔하고 덜떨어진 현실에 무지개 색 페인트를 진창 처발라놓았거나 재투성이 파운데이션을 톡톡 두들겨 놓은 줄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내가 여성 서사라고 지금껏 덥석 덥석 받아먹은 것들은 그랬다. 

 요즘 대세인 여성 서사는 대충 이런 뉘앙스인 것 같다. "지게 될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최근 화제를 일으킨 AoA 지민의 너나 해 무대에서 볼 수 있듯이 열심히 누군가의 트로피나 예쁜 전리품에서 벗어나서, 소유되고 객체화됨을 벗어나서 자주성을 가지겠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그 정도는 해줘야 진짜 여성이지! 하는 호쾌함과 연대의식을 빚어낸다. 예쁜 얼굴, 다져진 몸매, 소아성애 범벅인 옷차림으로 대표되는 아이돌이란 직군에서 감히 누가 노출 없는 블랙 슈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드랙퀸 사이에서 무대를 꾸밀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 무대로 인해 고취되었는가? 내가 대중문화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AoA는 그 무대를 기점으로 확 부상했고, 앞으로도 그 무대는 오래 회자될 것이다.

 그러나 왜 나는 AoA의 성공이 초콜릿 맛 치약처럼 느껴질까? 

 그들의 성공이 싫은 것이 아니다. 무대는 충분히 멋있었고, 아이돌 산업에 새로운 바람을 기대해볼 만했다. 그러나 나는 멤버들 개개인에게, AoA와 그에 열광한 여성들에게 실망한 것이 아님에도 어떤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그 허탈함이 어디서 오는지 곰곰 생각해봤는데 용적이 허접스러운 내 머리에서 정답이 나온 건 아니었다. 정답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추측은, 결국 모두 눈 가리고 아웅이란 것이다. 당장의 여성 서사는 가뭄에 단비처럼 너무나 달콤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아이돌 산업의 지침은 너무나 굳건하다. 너무 어린아이들을 사회와 단절시켜놓고 젊음을 담보로, 성공을 미끼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는데, 그 훈련이라는 것이 아이돌 본연의 예능을 계발시키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욱 수동적이고 그러면서도 반전의 섹스어필을 해낼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는가. 이것이 문제시되면 더욱 교묘하고 음습하게 '주체성', '주체적 여성상'으로 포장하며 허울 좋게 내보낼 뿐이 아니잖은가. 내가 너무 아이돌 시장을 악마와 동일시하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분통한 것은 나 조차도 자유롭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긴 머리가 의무가 아님을 알면서도 가위질 한 번에 잘려나갈 연약한 단백질 덩어리 몇 가닥을 자르지도 못해, 노브라를 했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가 없는 걸 알면서도 어깨 한 번 피질 못해, 이따금 누군가 성차별적이거나 편증적 발언을 해도 인상 찌푸리질 못해. 유니콘과 초콜릿 치약을 증오하면서도, 누군가 시원하게 까발리길 바라면서도, 영원히 그들을 꿈꿀 빌어먹을 팔자인가 보다. 

 이쯤 쓰고 나니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글에 쓸데없이 반항심만 가득 찬 글이라 민망하다. 어떤 부분은 과장됐고, 어떤 부분은 뜬 구름 잡으며, 어떤 부분은 피해망상 선글라스를 쓰고 지껄였다. 딱히 오늘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갑자기 불이 붙어 써 내려간 글이다. 솔직히 말하면 계기가 아주 없었던 던 건 아니다. 나는 내 나약함(심신을 모두 아울러)이 볼썽사나워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었고, 특히 건강한 '여성' 어른 구성원이 되고 싶어 졌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어른 여성 본보기는 많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에 그런 인물이 되어 줄 수 있는 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여성성'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내 안에 거스러미들이 늘어났다. '사회적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어떤 것-굳이 예를 들면 핑크색, 긴치마, 웜톤 립스틱'을 어쩌다 보니 좋아하게 된 내 정체성을 부정해가면서까지, 나를 잃어가면서 찾은 정체성이 의미가 있는지가 고민이 되었다. 진정 그 취향들이 사회적인 입김으로 형성이 된 것이라 해도 나 자신이 그저 사회의 한 톱니바퀴일 뿐인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나의 생각이 여기서 더욱 발전하기 바라며(기왕이면 유익하고 건강한 쪽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을 내놓는다. 어차피 미숙한 일기 중 한 장일뿐이니까. 후에 머리 용적이 더 늘어나면 생각이든 느낌이든 달라지겠지. 어쨋던 이 보잘것없는 톱니바퀴는 당장은 톱니바퀴가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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