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1장 #1 독립

by 단영화

울에 직장을 잡으며 상경했다.

벌써 2년도 넘은 일이지만, 최근 내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큰 지각변동이자, 현재 사는 모양의 초석이다.

사실 이번에 출가하기 전에도 몇 차례 독립을 시도했었다.

가장 처음 집을 나온 건 대학에 진학할 때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그 후 한동안 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하려고 고시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열악한 주거 환경이 견디기 힘들어 원룸으로 이사해 자취 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지금 한 독립이 완벽하게 첫 번째 자취 생활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생활비를 마련할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매번 부모님께 손을 벌려 생계를 유지했고 알바를 했었어도 오롯하게 스스로 생활을 꾸려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취업을 준비해서 직장에 자리를 마련한 뒤 독립할 집을 얻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경제적 자립을 이뤘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한 경제 공동체에서 탈출했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때가 되면 그래야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20대 중후반이면 늦어도 직장을 잡거나 직업이 생긴다.

빠르면 20대 초반, 늦으면 30대 중반까지 대부분 여성은 결혼과 출산을 겪는다.

30대 후반이 된 내 나이쯤이면 출산이 빨랐다면 자식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고 출산이 늦었다면 한참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는 중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상당히 늦깎이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구제 못 할 백수였냐고 묻는다면 또 그건 아니다.

짧든 길든 계속 일을 하려고 노력했고 직업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말하기에는 역부족일 만큼 벌이를 늘리거나 다른 일을 더 찾아야만 하는 생활 가능한 상황이 반복됐고, 누구나 그렇듯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일이 아무리 즐겁다 한들 생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는 법이다.

그때가 되고 나서야 나 하나 스스로 책임질 만큼 버는 일을 찾아야만 반복되는 악순환이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걱정했던 바가 현실로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꿈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뒤라는 말이 화가 치밀어올라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었지만, 그 말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없을 만큼 애송이었다.

홀로 내 삶을 제대로 감당해 본 경험이 없던 나는 은연중에 자립을 목표로 나아가면서 다른 한 손에 부모님을 놓지 못했다.

독립이 늦은 가장 큰 이유는 은연중에 일신상 무슨 일이 생기면 내 곁에 부모님이 계시니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는 나의 뿌리 깊은 의존 때문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오로지 목표는 최대한 빠른 경제적 독립이었다.

대학을 선택한 이유도 빠른 경제적 독립이 가장 컸는데, 당시 부모님 사이가 무척 안 좋아서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엄마를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 때 담임 교수님이셨던 교수님 밑에서 첫 직장을 얻어 자리를 잡았다.

그때 일 하면서 난생처음 들어본 변리사라는 특허 전문 대리인 일에 빠져서 그만 본래의 목표를 잃고 말았다.

경제적 자립과 거리가 멀지만 멋지고 돈벌이가 좋다는 전문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험 생활, 거기서부터 시작한 방황이 무려 10년의 인생 공백을 만들었다.

야심 찬 포부와 완벽하게 다른 반대쪽 길을 선택하면서 나는 뒤늦게 부모님 속을 자글자글 썩이는 원인이 되었다.

대부분 반항이라면 10대 시절 시작해 20대 전에 끝내기 마련이지만, 10대 후반에 조금씩 포문을 열어 20대 중요한 시기에 절정을 이어간 셈이다.

살면서 내가 부모님 속 썩이는 원흉이 되어 두 분 인생 최대 애물단지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내 인생 먼저 깔끔하게 해결하고 부모님 인생까지 매끄럽게 썰매 태워 밀어드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발목에 모래주머니가 된 모양새였다.

이래서 한 치 앞 인생 어떻게 될 줄 모르니 함부로 입 놀리는 거 아니라는 것 같다.

당시 내 상황에서 남들 걱정할 때가 아니었는데 뭘 모르고 남 걱정이나 했었다.

걱정했던 애들은 다 자기 밥벌이 잘하고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고 나보다 인생 잘 꾸려가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친했던 친구들 전부 소식 끊긴 지 오래라서 다들 뭐 하고 사는지 알 길은 없지만 지금처럼 뭔가 하면서 바지런히 살면서 지내다 보면 언젠가 연락이 닿기는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경제적 독립이었다.

20대가 되고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만 하면 최대한 빨리 돈을 모아서 독립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었다.

얼마나 강력한 바람이었냐면, 대학은 다니는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이미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혹시 성적이 좋으면 또 장학금을 탈 수 있지 않을까 악착같이 이 악물고 공부했다.

빈곤한 계좌를 조금이나마 채워보려고 학교 도서관의 독서 장학금을 받으려고 도서관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갔고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서 교내 근로장학생도 했었고 한동안 기숙사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대학은 대전 외곽에 위치해 시내 중심 상권과 거리가 있었고 버스 노선조차 잦지 않은 지역이라 밖으로 드나들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기숙사에 살아서 외부에서 알바를 구하기 어려운 터라 교내에서 돈벌이를 만들지 않으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승냥이 같은 눈으로 예의주시하며 다녔다.

하려고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웬만한 일은 다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이 뭐든 일이 마음대로 술술 풀려가기만 하면 밖에 둔 논밭 생각에 손에 쥔 한 줌 쌀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법이라, 하늘에서 나를 괘씸하게 여겼던 건지 그 목표는 얼마 안 가 무참히 무너졌다.

이래서 사람이 겸손하게 살아야 하나 보다.

자기 욕심에 자기 발등 스스로 찍어서 고생하는 것이다.

변리사 시험에 꽂히지만 않았어도, 아니 어차피 시험에 꽂혀서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면 수험 생활을 현명하게 하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욕심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눈을 가려 어리석음에 사리 분별 못했던 걸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후 수험에 실패하고 억지로 첫 번째 반독립을 했다.

빠른 독립을 원했지만, 그마저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그토록 원하는 독립은 하자마자 즉시 후회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세상 모든 부모님이 자식에게 주고 싶은 환경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지금은 누군가 혼자 사는 게 좋지 않냐고 물으면 가능한 한 결혼할 때까지 부모님 곁에서 되도록 오래오래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추천한다.

주변의 누가 물어봐도 결혼할 생각 아니면 그냥 부모님이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부모님 집에서 경제 공동체로 함께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일단 보증금을 구하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부담해야 할 월세가 없고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처럼 반드시 발생하는 생활비가 줄어든다.

더불어 일부 생활비를 보탠다고 해도 혼자 나와 살면서 부담하는 식비에 비하면 훨씬 적다.

자취 초기에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나 놀이공원을 1년 365일 간다고 생각하면 놀이공원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가끔 만들어 먹는 떡볶이나 파스타가 맛있어도 매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달앱과 친근해지는데 1회 배달 최소 비용이 1만 5천 원 이상인 곳이 많다.

TV에 나오는 내용 중 배달 비용으로 몇백만 원씩 쓴다고 하는 심각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부모님과 살면 제때 끼니를 챙기지 않으면 잔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매번 배달 음식을 먹으면 불쌍해서라도 챙겨주신다.

어릴 때야 잔소리가 그저 잔소리였지만 커서 보니 잔소리라도 없으면 인간 꼴을 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무슨 일이든 장단점이 있듯, 한 인간의 삶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되냐 하면 또 그건 아닌 이유다.

독립해서 나와 산다고 해도 예전의 나처럼 정신적으로 계속 부모님 곁에 머무는 사람도 많다.




립이란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말이다.

비장하기 그지없는 독립이라는 글자에 담긴 무게는 대단하다.

홀로 사회에 발을 들이려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정신적으로 오롯이 내가 나를 감당해야 가능하다.

최고의 결과를 낼 필요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이루어진다.

혼자 살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던 어떤 삶의 형태라도 일평생을 함께 한 나의 첫 번째 둥지를 떠나는 경험을 겪어내야만 한다.

따뜻하고 포근한 깃털로 잘 꾸려진 둥지에서 차디찬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첫 번째 날갯짓은 한 개체의 몫인 탓이다.

또한 독립은 익숙한 가정에서 사회로 나와 겪는 주변을 둘러싼 새로운 환경까지 포함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고 누굴 만날 것이며 어디로 갈지까지 환경 속에서 해야만 하는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한 인간이 성장하며 가꿔 온 삶을 바라보는 시선, 방향을 결정하는 가치관, 목표를 결정하는 신념이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물리적 독립을 했지만 단단하게 여물지 못했더라도 어차피 삶을 단련하는 과정을 겪는다.

단지 첫발에 결실이 여물지 않았을 뿐이지 언제 맺더라도 결실은 맺는다.

독립이란 애초에 완전히 홀로서기이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형성되고 사람들은 서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어 완벽하게 혼자란 있을 수 없다.

하다못해 천 년 전에 쓴 철학서를 읽고 지식을 습득하면 똑같이 그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과 나는 생각의 방향이라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긴다.

다만 내가 나에 대해서 결정권을 가지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타인과 삶을 조율하며 사는 방식의 홀로서기는 가능하다.

독립이란 결국 사회에서 타인과 살기 위해 오롯이 나로 살아보는 연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