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1장 #4 먹고사는 일

by 단영화

생에 첫 반항은 꿈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학년 때 학교에서 진로 조사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해 중학교 시절 내내 썼던 나는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위한 대학 진학을 원했다.

사실 글 쓰는 직업을 위해 선택할 대학 관련 정보는 당시 문외한이었다.

계속 글을 썼더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국문학과로 유명한 대학을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미래의 대학은 당연히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였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글은 쓸 수 있지만 그때는 어렸고 당연히 그래야만 글 쓰는 직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어릴 때부터 써 온 소설이 책장을 가득 채운 채 언젠가 빛을 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성적만은 좋은 편이었다.

물론 시골 학교이고 공부에 뜻을 둔 학생이 많지 않아 가능했지만 다섯 손가락 밖으로 나가지 않게 잘 유지했다.

그 고된 공부를 참고 견딜 수 있던 원동력은 오로지 소설가라는 꿈이었다.

학교에 진로 조사서를 제출하려고 17살에 부모님과 처음 진지하게 진로 이야기를 나눴다.

조심스럽게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돌아온 한마디는 ‘안 된다.’이었다.

청천벽력이자 날벼락이었다.

머리가 멍하고 눈앞이 새하얘졌다.

당시 어린 생각에,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면 사고도 안 치고 말썽도 안 부리고 말씀도 잘 듣고 남들 보기에 좋은 자식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 딱 하나뿐인 걸 반대하신다.‘라는 원망이 생겼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부모님은 집에서 자식 뒷바라지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일단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당시 내 나이는 17살이었다.

더군다나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며 모든 예능 활동까지 일체 중단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숨구멍마저 틀어막겠다는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달라지고 대학 이외에 많은 선택지가 생긴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나의 17세에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 임용이라는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든 숨구멍을 만들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땐 부모님도 나도 융통성이 없었다.

최후의 보루까지 뺏기는 처지가 되자 분노가 극에 달했고 나는 7년을 모은 모든 소설과 글을 다 찢어서 고무 대야에 넣고 종이 반죽을 만들었다.

거의 반년에 걸쳐 베란다에 전시해 놓고 항의 시위했으나 부모님도 당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내 반항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나는 우리 집의 장녀로 타고난 성격에 비해 웬만한 모든 일을 참고 살았다.

동생도 한 성격 해서 유아원 때부터 부모님이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녔다.

버거운 엄마 인생에 나까지 손을 얻으려니 이러다 이른 나이에 조실부모할 것만 같아 나라도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입 밖으로 나와야 할 모든 말을 삼켰다.

그래도 진로만큼은 반항이라도 해보고 싶었고 도저히 양보가 안 됐다.

부모님이 뭘 원하든 인생에서 내가 뭘 견뎌야 했든 확실히 언젠가 내게 될 거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무산되고 나니 갑자기 인생이 붕 떴다.

그 뒤로 시작된 수많은 반항의 세월을 생각하면 차라리 억지로라도 진로를 원하는 대로 정하는 게 나았다.

지금은 누가 내게 진로 상담을 청하면 무조건 반항할 거면 하고 싶은 거 하고 참고 살 수 있으면 주변에서 하라는 거 하라고 한다.

자기 성질 못 이겨서 망나니가 되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휩쓸고 가는 태풍급 재앙이 된다는 걸 몸소 직접 겪고 나니 참는다고 참을 수 없는 것도 있더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 뒤로 몇 년 전까지 먹고사는 일이라는 개념은 발작 버튼이자 분노 유발 버튼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오신 아빠의 어록이자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은 ’ 먹고사는 일 아니면 신경 쓰지 마라.‘이다.

우리 집만 아니라 다른 가정에서도 부모님의 입장이라면 대부분 그럴 거라고 본다.

어른이 되고 보니 먹고사는 일은 만만치 않고 나 하나 책임지는 것만으로 충분히 삶은 어렵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자식을 낳고 먹이고 입히고 기르는 무거운 중책까지 감당하시는 것이다.

세상 모든 부모님의 희생을 숭고하게 여기다 보니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2세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상황에서 나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에 서 있었고 부모님은 가능한 판단 중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셨다.

결론적으로 내 입장은 꿈과 엄마 목숨 중 택일이었으니 선택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라고 별수 있을까.

2세에게 더 나은 제안이나 대안을 줄 수 있을까.

부모라면 누군들 자식 원하는 바 전부 들어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오랜 시간 끌어온 내 반항은 천인공노할 대역죄이다.

복구하느라 반항한 시간의 2배 이상 들었으니 억울할 일도 없다.

조용히 할 일 하며 내 인생 살아가는 것밖에 여태 견디며 기다려 주신 부모님께 돌려드릴 길이 없다.

부모님도 하필이면 그 많은 아이 중에 나 같은 성격의 자식을 얻어서 오래 고생하신 걸 보면 부모, 자식 간에 인연이란 참 어려운 업이다.






10대 시절 겪었던 좌절을 매번 반복해서 생각해 본다.

지금은 당시 했던 결정 말고 다른 선택지를 생각 자판기처럼 꺼내지만 돌아간다면 같은 상황에서 그때의 그 상태인 내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후회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전과 다른 선택을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많다.

글을 쓰면서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방법도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하는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결국 객관적으로 불 수 있는 제삼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주인공의 입장이라면 당시의 판단이 아마 최선일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주변 사람이나 평소 믿고 따르던 사람을 찾는 이유가 객관적 입장에서 판단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의 연애는 잘 보지만 자기 연애는 잼병이라는 말이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에 운명이나 인생이 있다.

특히 내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운명이나 필연 같은 게 존재한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그 시절에 내 꿈을 이뤘다면 나는 가족을 잃었을 것이다.

차갑고 냉정한 본성 그대로 인간이나 사회를 배우지 못한 채 모든 걸 수단으로 바라보는 냉혈한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나 스스로 도구로 여길 수 있는 마음엔 동정심이나 연민이 깃들기 어렵다.

나조차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타인이라고 다를까.

인두겁을 뒤집어쓴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종종 하는 자신에 대한 비하 같은 발언은 그저 자존감이 낮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였던 행동이나 생각에 기반해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컨대 제대로 된 가정환경에서 교육 없이 자랐다면 충분히 어떤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모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나 또한 부모님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우여곡절 많고 항상 고통스러운 상처를 받는 환경이었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보니 내가 어떤 인간인지 먼저 판단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가정환경이 내게 최선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이었다.

어린 나이에 내 손에 원하는 만큼 풍족한 환경이 제공됐다면 나는 한계를 모르는 철부지로 자랐을 것이다.

오만불손해서 내 위에 사람 없고 세상을 발아래 두고 산다고 여겼을 것이고, 욕심이 많아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뉴스 사회 1면에 나오는 이야기가 남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불우한 환경을 정신 승리로 이겨내 보려는 허접한 궤변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성품이나 그릇이 있어 각자 할 일이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높이고 부를 쌓으면 좋다고 하지만 명예나 부는 큰 책임이 따른다.

큰 책임을 감당하려면 그에 맞는 인물이 되어야 하고 날 것 그대로인 원석 상태에서 세밀하게 조각한 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대 후반부터 30대를 살면서 내내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은 다시 돌아간다 한들 나는 똑같은 과정을 겪을 것 같다.

지금 배운 걸 그대로 가져간다면 다르겠지만, 모른다면 어차피 배워야 다른 선택이 가능할 테니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부처님도 먹고는 사셔야 했고 예수님도 먹고는 사셔야 했다.

해탈했든 권력이 하늘을 찌르든 신도가 많든 뭐가 대단하든, 인간 육신을 벗지 못했으면, 응당 먹고살아야 한다.

하늘에서 인간 육신을 벗어나는 혜택을 주어서 햇빛만 쬐어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전혀 상관없겠지만 지금 당장 인간 육신은 그렇지 않다.

상상하는 근엄, 성스러움, 위대함의 최대 대척점에 위치한 인간적임은 먹고 자고 싸고 성욕을 느끼며 치졸하고 좁아터진 마음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사는 일이다.

아무리 영혼이 위대하고 크다고 한들 인간 육신 안에 담겨있는 한 그 옹졸함을 벗어나기란 어렵기 마련이다.

성인군자라 한들 사랑하는 여성이 눈앞에서 잘생긴 다른 남성과 바람을 피우는데 ‘허허 내 여자 능력이 대단하네.’ 하고 넘어갈 위인이 있다면, 또 그 여자가 잘생긴 삼천 명의 애인을 두고 ‘당신은 그래도 내 첫 번째 남편이잖아.’라고 애교를 부릴 때 ‘허허 내 여자 능력이 대단해서 위대하군.’하고 넘어갈 위인이 있다면 믿도록 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성인군자는 존재할 수 없다.

이 글을 써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배가 고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그러나 최근 사회에는 최소한의 돈만 주어진다면 최대한 돈을 벌지 않고 살고 싶은 자들이 종종 생기곤 한다.

모든 의식주와 본능에 관련된 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 신종 좀비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좀비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도태되고 도전할 용기를 잃은 무희망상태야말로 사회 분위기 말살을 일으키는 진짜 무서운 좀비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했다.

그땐 사회적으로 의욕이 없는 자들일 지라도 적어도 식욕이란 것이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먹방도 보지 않는 풍조나 사회, 규칙, 인간관계, 가족, 게임, 교육, 소비 등 모든 걸 지겨워하는 분위기 자체가 감돈다.

아마 지금은 먹고사는 일보다 영혼을 채울 가치를 찾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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