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5 나
나는 현 사회 기준으로 별 볼 일 없고 도태된 30대 미혼 여성이다.
결혼 시장에 내놓기엔 나이가 너무 많고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미모가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늘씬하냐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뭐 하나 재주가 특출 나 먹고살 걱정이 없느냐 하면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전부인데 사회엔 글밥 먹고 사시는 훌륭한 인재가 널리고 널렸으며 사업 수완이라도 있으면 일 만들어 배짱 좋게 밀어붙이기라도 할 텐데 시도해 볼 밑천이 탈탈 털어봐야 주머니 속 먼지가 전부다.
인망이 좋아 인적 네트워크라도 빵빵하면 여기저기 기웃대며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일거리라도 찾아볼 텐데 긴 수험 생활로 단절된 세월이 10년이라 어디 연락할 데도 없다.
가진 건 몸뚱이 딱 하나뿐인데 그마저 다 늙어가니 도태됐다는 말이 딱 적당하다.
최악이라면 최악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 자체로는 세상살이가 그다지 아쉽지 않다.
어차피 늦은 김에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구분해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면 그만이다.
특히 현재 내 상황에서 미혼은 생각보다 메리트가 크다.
성인이지만 아직 부모는 아니니 부모가 된 또래보다 책임질 사람이 적어 아직 철이 덜 들어도 괜찮다.
젊은 날에 부릴 수 있는 객기를 부려도 어차피 감당은 나 혼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덜 여문 어른으로 약간 덜떨어진 행동을 하고 살아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엄마가 보면 한숨과 잔소리를 폭탄처럼 투척하시겠지만,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나 하나쯤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또 혼자 있으면 적적하긴 해도 뭘 하든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할 수 있다.
나는 20대에 일반적으로 남들이 했을 법한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게 사회생활도 배워야 하고, 이제 막 돈도 벌어야 하고, 여유가 생기면 놀기도 해야 하며, 아득히 먼 꿈도 이뤄야 한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숨만 쉬고 살아도 80살 전에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살다가 제 나이에 은퇴도 못 할 것 같아 살짝 겁이 날 지경이다.
이제부터 살면서 나아질 수 있을 상황이 드디어 된 걸 보니 사람마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어릴 때 엄마가 본 내 사주가 결혼을 일찍 하면 이혼할 팔자라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찍 결혼해서 마음고생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충분히 숙성한 후 한 번에 좋은 인연 만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또 별거 아닌 게 된다.
이제 앞으로 내가 도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찾으면 나의 결혼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세상만사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고 상황은 보는 관점마다 다르다.
최근 본 콘텐츠에서 요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자의 조건이나 환경을 선택하는 기준을 줄줄이 늘어놓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나는 거기에 거의 한 가지도 부합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따돌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회의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게 긁힌다는 건가 싶고 갑자기 뭔가 준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나라는 사람 자체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이미 졸업한 학교를 바꿀 수도 없고 갑자기 회사를 그들이 제시한 결혼 기준에 맞춰 들어갈 수도 없으며 하루아침에 통장을 빵빵하게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어차피 20대와 비교하면 늙은이일 뿐이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은 여자에게 집안 배경이란 남자의 연봉이나 재산과 같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애초에 사회의 결혼 시장에 발가락도 들이밀 수 없는 자격 미달이란 말이다.
여기까지 오니 현타가 세게 오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흥미가 떨어진다.
부자가 동네 부자 정도면 나도 열심히 벌어봐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삼* 정도 되는 재벌이 되면 그저 대단하다고 우러러보는 것처럼 나에게 결혼 허들이 지나치게 높아 스쳐볼 생각도 안 든다.
요즘 결혼 시장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생존자들을 향해 손뼉 칠지언정 아무 감흥이 없는 이유다.
결혼자금을 댈 수 있고 가정을 부양할 만한 경제적 능력과 2세를 위한 배우자의 외모 스펙, 나고 자란 환경과 습관, 사회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수치화하려다 보니 지금의 기준이 세워졌을 거라고 가늠해 본다.
예전에 부모님 세대가 했던 결혼은 지금과 다른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경제적 풍요로 따지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있는 사람은 있고 없는 사람은 없다.
외모 선별이 오늘날의 이야기일 뿐이라면 조선시대 미모로 날렸던 기생이며 후궁들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회자될 리가 없다.
사주는 옛날 사람들이 더 많이 따졌고 가정환경과 배경도 만만치 않게 봤다.
하지만 옛날과 요즘 결혼을 비교했을 때 요즘 결혼의 만족도가 더 떨어져 보이는 건 내가 이 시대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현재 나는 연락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친한 친구들이 이미 20대 초반에 모두 결혼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만 지금까지 남아서 혼자 노는 데 아주 익숙하다.
죽이 잘 맞던 친구들은 결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나와 함께 오래오래 늙어갈 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결혼한다며 소식을 전해서 결혼 전에 친구들 배우자 얼굴도 못 봤다.
당시 결혼식에 가서야 친구들 배우자를 처음 봤는데 평소 친구들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유부녀가 된 친구들의 가정을 위해 두루뭉술하게 언급하자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미남 배우나 아이돌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음에 놀란 건 결혼식 비용이었다.
풍족하지 않은 상황이라 큰 금액을 들이지 않았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결혼식을 약소하게 하고 신혼여행이나 살림집 마련에 보태겠다는 이야기였다.
신혼집도 가능하면 빚지지 않고 가진 돈 안에서 해결하고 앞으로 배우자와 살면서 같이 가정을 이뤄가겠다고 했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배신감 반, 걱정 반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첫 아이를 출산하고 축하해 주러 갔을 때 엄마가 된 친구는 기쁨에 살짝 들떴어도 여전히 내 친구였다.
아이의 탄생이란 천지가 개벽할 듯 대단한 일이긴 해도 한 사람 인생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친구들의 신혼집이나 출산 과정까지 요즘 콘텐츠나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 달리 별 탈 없이 무난했다.
요즘 결혼 기준으로 보자면 전혀 맞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나름 잘 결혼했다.
당시에 무척 행복해 보였고 소식은 끊겼어도 잘 지내는 듯했다.
이런 점에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굉장히 유용하다.
친구들은 결혼생활에, 나는 수험 생활에 전념하며 소식이 끊겨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즘 결혼도 그저 내 관념 속에 사는 파랑새 같은 것이 아닐까.
어릴 때 서예를 오래 배웠다.
읍에 속하는 작은 동네에 살았는데 오밀조밀 학원 종류가 제법 많았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경험시켜 주고 싶어 하셔서 학원을 여러 군데 다녔다.
그중에 엄마랑 나, 동생이 서실을 같이 다녔었다.
내가 10살이 되는 해였는데 처음 서실에 발을 들였을 때 맡았던 먹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젖 배불리 먹고 나서 한잠 자고 일어난 갓난아기의 구취와 깨끗한 잉어 비늘 비린내가 뒤섞인 것 같은 묘한 냄새가 서실에 가득했고 하얀 벽을 삥 둘러 자랑하듯 연습한 한지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걸려 있었다.
서예 연습용 책상이 나란히 놓였고 동네 아저씨 두어 분이 서서 글씨 연습 중이었다.
서예 선생님은 지긋한 연세의 할아버지셨는데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였다.
엄마랑 이야기를 한참 하시더니 오셔서 나보고 글씨를 한자 써서 보여주시고 한번 써 보라고 하셨다.
붓 잡은 자세가 어설퍼서 붓 잡는 법부터 찬찬히 알려주셨고 나는 써주신 글자의 순서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붓을 잡았다.
그렇게 시작한 서예를 중학교 3학년까지 총 7년을 배웠다.
뭘 모르는 상태에서 대회도 자주 나갔었고 상도 제법 탔다.
충북 단위나 전국 단위까지 출품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땐 관심이 많지 않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랑 취미가 같아서 좋았고 동생보다 잘 써서 기뻤고 실력이 괜찮았는지 칭찬 많이 받고 상 자주 타서 마냥 즐거웠다.
당시 동생과 한참 전투력 자랑하며 싸워댈 때라 엄말 사이에 두고 신경전이 장난 아니었다.
유치하게도 때리는 건 한계가 있으니 뭘 하든 동생만 누를 수 있다면 다 좋은 시절이었다.
차츰 연습 시간이 쌓이고 아는 글자가 제법 늘었을 때다.
서실 다닌 지 1년 정도 됐을 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길고 어려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로 ‘나를 잘 갖추고 집안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잘 운영하면 세상이 평탄하다.’라는 말이라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왜 당연한 소릴 하나 싶어 속으로 심하게 비웃었다.
사람이 뭘 모르면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내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한 건 서른이 넘은 후였다.
이렇게 인간은 다들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하며 산다.
지금도 어린 시절 했던 생각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서예를 배우면서 이런 유교적 사상을 자연스럽게 익혔는데 충이나 효처럼 지금은 빛바랜 오랜 개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이 움직이니까 써 보고 대회 나가라고 하니까 연습한 게 대부분이지만 그 와중에도 잦은 노출 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내 생각은 점점 유교 사상에 물들었다.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고 바른 생각을 하며 부모님과 선생님, 이웃 어른을 공경하고 나의 근간이 되는 뿌리를 잊지 말아야 잘 사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배웠음에도 타고난 성정이 한두 해에 바뀌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 내 기준에서 판단할 때와 삶의 방향 설정 시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어려서 배운 지식은 인생 전반에 걸쳐 밑그림을 그리는 주요 재료이다.
덕분에 호기심 많고 급한 성격에 상황마다 튀어 나가지 않고 인내심 있게 나를 누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심부름을 시켰을 때 사야 할 물건을 사고 나면 남은 돈은 그대로 가져왔다.
책상이나 선반에 잔돈이 굴러다녀도 내 손에 떨어진 돈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잔돈으로 뭘 사 먹어도 괜찮다며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이미 주어진 돈이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을 보니 심부름 후 잔돈쯤은 쉽게 심부름 값 대신 주머니로 들어가 간식비가 되기도 했다.
아빠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어린 시절 나를 무척 놀렸다.
눈치나 뉘앙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빠가 보기에 나는 지나치게 순진한 어린이였다.
조금 더 커서 초등학교 무렵 친구들과 한참 어울려 놀 때도 비슷했다.
약속 시간이 1시라면 당연히 12시 30분까지 나가 친구를 기다렸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고, 장난이라도 만나자마자 서로 얼굴 붉히는 게 싫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일지라도 등교 시간이 7시로 정해지면 당연히 그 시간에 등교했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하듯 일상에 루틴을 정하면 그 안에서 움직이는 걸 선호한다.
크게 고민하거나 생각할 필요 없이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훌륭한 방법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1학년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시간관념과 규칙 준수이다.
사회화의 첫걸음인 셈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도 마찬가지였다.
근무 시간이 9시에서 6시까지면 그 시간엔 당연히 근무해야 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서에 기재한 명확한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해당하는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면 응당 지켜야 할 약속이다.
혹시 자신의 사업장에서 피고용인이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싫은 사장님이 있다면 예외겠다.
지금은 그런 사장님이 있는 회사라면 응당 기쁘게 다닐 만큼 진화에 성공하기는 했다.
어릴 때는 곧 죽어도 정해진 대로 일단 하고 나서 고칠 부분을 살펴봤었다.
생각이 조금만 더 유연하다면 하지 않을 고생을 사서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고지식하고 앞뒤가 꽉 막혔어도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거대한 바위도 세월과 풍파 앞에 깎이는 법이고 강 속의 모난 돌도 거센 물살에 구르다 보면 둥글게 변한다.
인생도 삶 앞에서 거대한 바위나 강 속 모난 돌처럼 별 수 없다.
타고난 본성이나 성질머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살면서 생기는 모든 일을 다 이겨내고 난대로만 살기 어렵다.
아무리 고지식한 나라고 한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일에 정석대로 정면 돌파만 하며 살긴 어려울 것이다.
피해가 생길 것이 확실하고 피할 방법이 있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면 힘을 덜 들이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석만 고집하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상황에서 획일적으로 원칙만 가지고 처리한다면 쉽게 넘어가는 일이 하나도 없어 매번 온 힘을 다해 상황을 처리해야 해서 인생살이 난이도가 순식간에 높아진다.
힘을 줘서 처리할 부분과 힘을 빼고 처리해도 되는 부분을 잘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융통이고 여유이자 사회생활의 꿀팁이 아닐까 가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