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 가족
우리 집 식구는 부모님, 나, 동생 넷이다.
몇 해 전 동생은 나보다 먼저 장가를 갔고 현재 우리 집엔 부모님과 나 셋이 남았다.
동생과는 어릴 때부터 유구하고 장대한 싸움의 역사가 있다.
성인이 되고 각자 갈 길로 가면서 일 년에 얼굴을 한 번 볼까 말까 할 때까지 같은 집 생활권에 사는 동안은 거의 전쟁이었다.
동생이 5살 무렵 생김새가 무척 귀여웠고 내 말도 잘 들어서 나와는 무척 사이가 좋았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 열심히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이 6살이 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남자애라 그런지 유독 자기 거에 애착이 컸고 동생과 나는 성향이 거의 비슷했다.
나 또한 내 거에 애착이 컸고 내 영역이 중요하긴 마찬가지였다.
동생과 나 둘 다 집이라는 내 구역 내에 나 말고 다른 존재가 침범한 것이다.
특히 나와 동생의 전쟁은 엄마를 두고 소유권 주장을 하며 발발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어제까지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르던 귀염둥이 사랑스러운 동생이 뒤통수를 친 것이다.
그럴 줄 꿈에도 몰랐던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신경전의 정점은 내가 9살 봄에서 여름 사이였다.
저녁 9시경 숙제 중이었는데 동생이 며칠째 몸이 아팠다.
나는 엄마가 숙제를 도와주기를 바랐고 동생은 허약한 체질에 몸까지 부실해 엄마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실랑이를 벌이다 서운한 내가 1차 폭발하고 동생한테 소리를 버럭 지르자 짜증이 난 동생이 20cm짜리 형광 초록색 자를 집어던져 내 이마에 꽂힌 것이다.
아파서 엎어졌는데 고개를 들자 엄마 품에 안겨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 뒤로 동생은 내 인생의 주적 1호가 되었다.
치졸하고 비열한 싸움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고 싸움에 지친 엄마가 방에 둘을 넣어놓고 다 싸우면 나오라는 말에 체력이 전부 떨어질 때까지 싸우고 나서야 멈췄다.
그 후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싸움이 더 커져서 원수가 따로 없었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부부 인연이 전생에 원수라고 하던데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집에 나를 긁을 수 있는 사람이 셋이나 있을 수 없다.
각자 찌르는 분야가 다르고 강도가 달라서 한 사람이 긁고 지나가면 다음 사람이 와서 다른 곳을 또 긁는다.
분노가 폭발했다가 삭히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또 자극하고 폭발했다가 삭히면 또 자극하는 무한반복이었다.
제련하는 철도 이 정도로 두드려 대면 전설 속 고수들이 쓰는 명검이 됐을 것이다.
간혹 사이좋은 가족이 TV에 나올 때면 현실감이 없었다.
네 식구 중에 나만 가족에게 긁혔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동생도 만만치 않게 아빠에게 긁혀서 한동안 아빠와 사이가 정말 좋지 않았다.
어릴 때 엄마한테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던 아들이지만 결혼 전까지 엄마하고 사이도 꽤 힘들어했던 걸로 보였다.
온 가족이 개성이 강해서인지 가족으로 오래 살았어도 한데 뭉치기가 이토록 어려운 건 분명 인지하지 못하는 전생의 업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가족의 질풍노도 시기가 얼추 지나니 부모님과 나 모두 뾰족한 모서리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동생도 결혼을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결혼 전만 해도 말 한마디만 잘못 꺼내면 반응이 뾰족해서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나이 먹는 게 반갑지는 않지만 나와 가족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면 빨리 감기 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고 싶으니, 나이를 좀 더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 두 분 다 60줄에 들어서서 언제 가시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즈음이라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성숙한 가족의 모습이라는 목표에선 빨리 감기가 시급하다.
가족이란 전생의 인연에 의해 엮인 공동운명체로, 나 혼자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약속이다.
부모의 육신을 통해 물려받은 DNA로 생명을 빌어 태어났고, 태어나보니 부모와 환경이 정해졌고,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 나가야 한다.
이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다.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태생적 한계이다.
부잣집에 태어났든 가난한 집에 태어났든, 각각 개인의 특성은 다양하고 완벽한 인간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남긴 성인들마저 타인이 지적할 만한 오점 한, 두 가지 정도는 있다.
인격적 면에서 고도로 성숙한 성인이 아닌 이상 99.99%에 해당하는 일반인은 서로 이상하게 여기거나 이상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삶에서 가족이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이다.
가족을 통해 삶의 방향이 형성되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익힌다.
인생이 가족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가끔 태어나자마자 가족을 잃고 성장할 환경을 잃어버리는 상황도 있다.
그러면 기존 가족 구성원이 없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신 여러 사회 구성원을 통해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다.
그중 하나를 따를 수도 있고 새로이 자신이 만들 가정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가정에 태어나면 이미 형성된 문화와 가치관 안에서 자신의 삶을 키워간다.
어떤 형태이든 가족이란 울타리는 구성원에게 태생적 한계를 줌과 동시에 개인의 불완전성을 보완한다.
자라면서 부모님에 불만 없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불만은 어릴 때는 어린 마음에, 나이 먹고는 치기와 응석으로 생긴다.
어릴 때 나는 엄마를 무척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매년 생신과 결혼기념일을 꼭 챙겨드렸고 팩팩한 일상에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좋은 성적도 받아올 수 있었다.
덕분에 학교 다니는 내내 상장 사냥꾼이 되어 각종 대회마다 안 끼는 데 없이 쫓아다녔었다.
받을 수 있는 칭찬 중에 최고는 바로 엄마발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오랫동안 불만을 품었었다.
피아노 학원을 오래 다녔는데 피아노에 덧붙여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더 배우고 싶었다.
당시 동생도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직접 확인한 것만 두 손에 꼽고도 남을 만큼 학원을 안 갔다.
어차피 안 다니는 학원 끊고 나나 더 가르쳤으면 했지만 엄마는 마지막까지 동생을 학원에 꾸준히 보냈다.
보통 내가 집에 가졌던 어린 시절의 불만은 가난으로 인한 욕구 불만족이 대부분이다.
충분히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지 못하니 말은 안 해도 꽤 서러웠다.
어린 마음에 동생을 질투하고 나한테 관심을 쏟아주지 않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다른 학원을 더 다녔다면 다방면으로 발휘 중인 호기심은 어릴 때 모든 욕구가 충족됨과 동시에 사라졌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넘치는 학구열을 자랑하며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이 어린 시절의 결핍일 지도 모른다.
또 다른 불만은 음식에 대한 제재였다.
원체 식욕이 왕성해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는 과체중 어린이로 간식부터 아빠 술안주까지 빠르게 동내는 재주가 특출 났다.
이 또한 단순히 어린이의 불타오르는 식욕으로 생긴 불만이라 말을 꺼내기도 창피하다.
그때 엄마가 날 막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어 평생 다이어트의 노예가 됐을 것이다.
나이 먹고 나서 최대 불만 역시 엄마였다.
오랜 시간 엄마를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엄마는 늘 나에게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반듯하고 맑은 정신으로 사회를 보려고 노력했고 올바른 삶을 탐구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 끌어주는 사람이었고 당장 완전한 답이 아닐지라도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실마리를 주었다.
5년여 변리사 수험 생활이 망하는 과정에서 나는 몇 번이나 흔들렸다.
1년이 지나자마자 바로 돈이 떨어졌고 기본 강의조차 다 듣지 못했다.
갑자기 가난한 환경이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압박감을 이겨낼 만큼 강하게 여물지 못했다.
매번 정신적으로 무너질 때면 엄마를 붙들고 앉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잘 달래주던 엄마도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고 기대만큼 훌륭한 답을 주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고통의 길에 서서 두려움에 휩싸인 채 도착지가 없는 마라톤을 달렸다.
고통이 극에 달하자 불만은 원망으로 변했고 나의 가난과 가족이 모두 지겨웠다.
다시 돌아보면 변리사 시험을 치르기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부모님도 부모님인 경험은 처음이고 큰 시험에 표류하는 자식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인생의 방향을 정해달라고 징징대는 수동적이고 멍청한 응석일 뿐이었다.
부모님이 잘못한 점을 끝없이 토로하며 탓할 거리를 찾는 미성숙한 치기는 가족을 완전히 자신과 다른 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완전한 자신과 부족한 가족 사이에 간극을 만들지만 어른이 된 후에 곧 알게 된다.
자신도 거기서 멀지 않은 종자이며 대단히 새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평생에 걸쳐 가족이 주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운명은 사람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뛰어난 인간이라 해도 DNA로 줄줄이 이어져 온 습관이나 행동을 전부 뒤엎을 만큼 가족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이상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장이다.
연을 끊고 산다고 한들 사회에서 그런 것 따위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여전히 가족은 가족이다.
누군가 가장 빛나는 자리에 올랐을 때 사회는 반드시 그의 가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다.
한 인간의 삶이 평가받는 데에는 한 가족 전체가 도마 위에 올라 가치를 평가받는다.
설령 인연을 끊고 스스로 자라난 사람이라더라도 DNA로 이어진 가족을 통해 평가하며 그의 미래를 점친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지 모른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못했어도 DNA의 유사성이라는 연결고리로 착실히 쌓아 온 본성의 변화 자체를 무시당하고 일생의 노력이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경제력을 축적한 집안이나 명예가 있는 집안이라 한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까지 정신 교육이 된 경우는 드물다.
내가 원하는 위치까지 어느 정도 올랐다면 반드시 뒤돌아서 가족을 보아야 한다.
혼자 걷는 길이 빨라 보여도 언젠가 운명이 연좌제로 묶어 정해 놓은 운명인 피붙이들을 끌어올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