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2장 #2 보통의 평범

by 단영화

해 전 사주 공부에 심취했었다.

20대 중요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접고 공부만으로 시간을 보냈음에도 결과가 녹록지 않아 방황을 심하게 한 탓에 삶이 꽤 고달팠다.

이 공부, 저 공부로 머릿속에 넣은 건 많은데 막상 먹고사는 문제에 갖다 붙이려니 영 시원찮았다.

초중고 12년 공부하는 이유도 최종 목적이 생계 수단 마련인데 이 공부는 최종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니 공부하느라 들인 시간과 돈 대비 남는 게 없었다.

사는 게 팍팍하니 자연스럽게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게 사나 싶어 ‘나’ 자체를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주변에 물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안 나오고 나 같은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 이야기는 TV나 방송 인터뷰에 나올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남에게 물어 방법을 알 수 없다면 공략 대상을 자세히 공부하는 밖에.

당시 가장 먼저 한껏 우울했던 기분을 일단 털어냈다.

생활에 여유는 없었지만 축 처지는 기분에 매일 의지가 꺾여 뭐부터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간다든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본다던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잊고 집중할 거리를 찾았다.

물론 그중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음주가무(飮酒歌舞)도 포함한다.

무얼 하든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면 당연히 헤맨다.

어쩌면 사춘기에 겪고 넘어갔어야 할 나 자신 사용법을 뒤늦게 찾아가고 있었을지도.

늦되고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함께 견뎌준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지랄과 발광의 집합체 같은 기간이 지나니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잠시 잊고 있던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이 떠올랐다.

모든 걸 새하얗게 불태운지라 떠오르는 생각이 딱 하나였다.

‘앞으로 뭐해서 돈 벌어 살지?’

습관처럼 책을 펴고 연필을 잡았지만 목적이 없었다.

수험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의 기억부터 천천히 되짚었다.

내가 뭘 위해 꿈이던 취업과 독립을 접고 공부를 시작했나.

까마득히 먼 오래된 이야기라 나조차 무슨 동기로 공부를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청하게 5년을 날렸다는 생각에 분노가 일었다.

그 후로 내가 멍청하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느라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노와 부정, 자기변명이 번갈아 가며 불길처럼 일어났고 나에게 한 실망을 풀 길이 없었다.

남이 한 잘못이면 남 탓하며 나를 다독일 시간이라도 벌지만, 오롯이 내가 한 오판이고 모든 게 내 탓이었기에 분노를 쏟아내 내 감정을 비울 자리가 없던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블랙홀처럼 무섭냐면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분노하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부정하다가 다시 온갖 핑계를 대며 나한테 내 변명을 대며 옹호하다가 그 과정 자체가 비참해서 다시 좌절한다.

이 과정을 일 년 정도 겪으면 재활용도 못할 핵 폐기물이 된 기분이 든다.

그러다 바닥을 기는 자존감을 끌어올리려 필사적으로 뭐든 하는데 만족감이 들지 않는 완벽한 좀비 상태에 이른다.

내 가치나 필요를 증명할 수 없으면 살 자격이 없다는 지경에 이르면 다시 현실을 잊으려고 고통을 잊을만한 음주가무에 손을 댄다.

그리고 나면 또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자책으로 다시 자신한테 실망한다.

인간 자체가 아주 작은 단위까지 조각나서 우주 먼지로 사라질 때까지 스스로 혼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극복하는 과정에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도움이 된 건 사주였다.

나라는 인간을 이해하고 내가 어떤 식으로 나를 대해야 하는지 처음 이해를 했다.

공부하면서 5세 어린이처럼 주변 사람 - 당시 엄마랑 가장 자주 얼굴을 봤으니 당연히 엄마다. - 에게 키우는 아이 자랑하듯이 ‘내가 이렇대요!’라고 졸졸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서 엄마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주는 타고난 생년월일로 천간에 10글자(갑, 을, 병, 정, 무, 기, 병, 신, 임, 계), 지지에 12글자(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를 조합해 시, 일, 월, 년 총 4개의 기둥을 한 기둥당 2 글자씩 채워 받는다.

천간 10글자, 지지 12글자 조합은 총 60개의 조합을 만들고 60개의 조합은 시, 일, 월, 년지 중에 하나로 들어온다.

서양에서 타고난 별자리가 있듯 동양에는 사주가 있다.

누구나 그렇듯 삶이 감당하기 어려우면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힘을 믿고 싶다.

종교를 갖고 신을 믿으며 기도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토속 신앙과 무당, 사주를 빼고 논하기 어렵다.

대부분 점이나 사주를 보러 가지만 나는 남한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판단하고 싶었다.

오랜 수험 생활이 내 판단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큰 오판은 나 자신 자체였다.

재미로 사주나 점을 종종 보러 갔었는데 늘 말이 달랐다.

누군 사주가 작고 좋지 않으니 자중하고 안분지족 하며 살라고 하고 누군 예쁘고 잘생긴 사주로 나서 복이 있다고 하고 누군 평범하게 살아도 먹고살 걱정 없다고 했다.

내가 긴 수험 생활을 실패로 끝내며 그들 중 반은 틀린 말이 되었다.

8글자만 보고 한 사람을 완벽하게 판단하기는 신이 아닌 이상 어려우니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근거가 필요했다.

신기하게 사주에 큰 변화가 있는 시기에 얼추 실제 삶에도 큰 변화가 왔다.

변화가 오는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다음을 준비할 것인지가 무척 중요한데 공부를 시작할 즈음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가장 최악의 선택을 했던 탓이다.

생각이나 마음이 기운이나 에너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사주의 기본 전제이다.

인생이 크게 변하거나 움직이는 시기에 내가 주로 받는 영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주를 공부하고 나서 느낀 건 사주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지만, 도움을 받기에 그만한 것도 없다는 점이다.

나를 이해하고 블랙홀 같은 시기를 잘 빠져나온 후에 사람들과 관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상에는 평범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가장 힘든 시기에 내가 힘들었던 이유의 근본은 평범이었다.

또래들은 취업이나 연애, 결혼, 인생의 목표 같은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나는 아니었다.

남들은 요트 타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자신의 인생에서 미지의 신대륙을 찾아가지만, 나는 망망대해에 구멍 뚫린 조각배를 타고 부러지기 일보 직전의 노를 저어 태풍을 피해야 하는 격이었다.

물론 남들의 인생도 스펙트럼이 넓어 나보다 못한 삶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삶까지 다양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평범이라는 지표로 보았을 때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20대 또는 30대 여성이라면 현재 이런 모습이라고 내놓는 모형 기반이다.

평범하다는 건 어디 하나 모나지 않고 무난해서 어디서나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최대 장점은 눈에 띄지 않아 충돌이 없고 매사 평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생이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요, 평화로운 호빗 마을인 셈이다.

잔잔하니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있지만 인생사에 격정적으로 시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평범하다는 건 인생이 안정되고 안전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때론 ‘나 정도면 평범하지.‘라는 말을 가장 안전한 말로 방패 삼아 적당한 울타리를 만든다.

그 안락함이란 대단해서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갖춘 이라 하더라도 울타리 안에서 몇 년만 지내면 백조인 자신을 오리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보통이다, 평범하다는 말은 그보다 범용성을 지녀서 외모는 물론 실력까지 후려치기에 아주 적당한 말이다.

뛰어나다는 말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건방지고 남의 눈에 띄어 시기를 살 수 있는 마법의 단어로 잘못 말했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뛰어나고 특출 나지만 보통이다, 이 정도면 평범하다고 가장하여 타인을 기만하고 평균을 올려 치며 보여주기식 세상의 정점을 찍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라고 특별할까.

어떻게 하면 평범의 범주에서 안락의 배를 타고 느긋하게 유영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한다.

그냥 제일 평범한 정도의 평범한 삶에서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 보면 평범하게 죽어서 평범하게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꽤 많은 시간 고민한다.

평범을 지향하는 사람이 뛰어난 사람뿐만 아니라 그 반대에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니 오해는 금물이다.





는 사실 태생적으로 관종(관심 종자)에 가깝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 욕구가 있다.

가장 밑바닥의 생존 욕구부터 가장 상위의 자아실현 욕구까지 인류 공통의 본능이다.

과학 발달로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세상에 특히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주 소비 콘텐츠가 TV에서 SNS로, 또 쇼츠 같은 일반인 영상물로 옮겨가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듯이 브런치 작가나 블로그 작가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뿐이랴.

자유롭게 웹소설이나 웹툰을 기고하기도 하고 인터넷 카페나 모임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알리고 표현한다.

그야말로 자아실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서막을 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나 고대 동양 사상가들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옛날엔 붓 좀 잡아보고 토론장에서 침 좀 튀겨봐야 책도 쓰고 학문의 역사에 입김도 넣었는데 현대에 와서 고대 엘리트들이나 하던 일을 모두 하고 있다.

옛날 옛적 이집트에서 간신히 파피루스에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적어 남기던 편지 한 장을 생각한다면 인류의 문화 발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성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화와 무선 통신 발달이 초래한 사람 간 거리 단축은 갈수록 지식의 응축을 촉진한다.

단적인 예로 나는 부모님에게서 독립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보고 싶다면 핸드폰 영상 통화로 부모님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다.

10년, 20년 전 핸드폰을 생각하면 상당히 놀랍다.

10년 전에 아이폰6s가 나왔고, 20년 전에 싸이언, 애니콜, 모토로라가 있었다.

무려 나는 핸드폰도 없을 시절이다.

현재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한다.

한국의 보통인 스마트폰 영상 통화와 공공기관 업무 처리, 은행 업무, 음식 배달과 장보기 배달 시스템이 과연 평범한지 의문이다.

이런 현실에 태생적 관종 기질은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 되었다.

천지에 나를 표현하지 못해 안달 난 친구들이 널렸고 심지어 그들 중 많은 수가 직접 나서서 표현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표현할 수단과 방법까지 널렸다.

어릴 땐 주변에서 얻는 관심과 집중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지는 쾌감에 중독돼 베짱이 같은 태도로 아무도 안 볼 때 일개미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시대가 아니다.

너무 많은 재능러와 스타성이 반짝이는 친구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아마 평범은 세상에 쏟아지는 은하수 같은 아름다운 재능의 그림자일 것이다.

닿지 않는 달이나 별이 아련하고 애잔한 것은 빛 아래 숨죽여 달과 별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머물기 때문이다.

어둑한 수면 아래 너도, 나도 몸을 뉘어 평온을 얻으려 함이다.

평범은 그렇게 안온하고 강력한 방패가 된다.

평범을 지향하는 나는 그래도 오늘도 글을 쓴다.

잘 쓰나 못 쓰나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우주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별이 쏟아지고 달이 뜨는 광활한 우주는 우리가 보는 시작점이 시작이 아니고 우리가 보는 마지막 자락이 마지막이 아니다.

밤하늘의 은하수는 사실 우주 전체 아닌가.

이전 05화산다(Live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