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2장 #4 나이 먹기

by 단영화

25년 새해가 밝고도 7개월이 지났다.

나는 또 나이를 한 살 먹었다.

24년에는 회사 다니며 대학원 다니고 자격증 준비하면서 출판사 창업 후 수익 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렸던 나날이 꿈결처럼 사라졌다.

전 회사는 계약이 끝나 다른 직장을 찾아 취업했고 대학원은 2학기까지 잘 마쳤으나 금전적 압박으로 휴학했으며 1년 넘게 준비하던 자격증은 취득한 덕분에 취업에 잘 써먹었고 출판사는 아직도 기초 자금 모으려고 이리저리 나를 굴리는 중이다.

퇴사하면 회사 다니느라 못했던 일 다 하려고 계획도 빡빡하게 세웠는데 역시 예상대로 욕심이 과했다.

원하던 세무 자격증 취득하려고 학원 등록하고 서울대학교 산하 교육 기관에 공부하러 다니면서 양봉 공부까지 겸하려고 했다가 출근 전에 체력이 바닥 나 회사 가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아 4월 말로 모든 활동을 파업하고 드러누웠다.

지금 쓰는 첫 에세이와 소설 초판만 완성했다.

1월부터 4월까지 스펙터클한 휴직기를 보내지 않았나 싶었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이룬 일이 없어 허탈하다.

사람 일이란 늘 바쁜 듯해도 손에 쥔 결과가 적으면 공중으로 흩어지는 구름 같기 마련이다.

시간을 허투루 보낸 듯해서 첫 출근길에 입맛이 썼다.

나도 30대 후반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얼른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이라는 말이 직접 와닿는다.

어릴 땐 당시 나도 늙었다고 생각해서 곡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진짜 나이 먹고 보니 그때 엄마가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떠올리면 헛웃음이 난다.

솜털 보송보송한 햇병아리가 초여름 새벽녘 찬바람에 어미닭 옆에서 골골 대는 꼴 아니었을까. 하하하.






년 새해가 밝으면 응당 1년 동안 나를 돌아보며 아쉬운 점, 뿌듯한 점을 찾아 정리하고 이번 한 해에 할 일을 가늠하고 계획을 세운다.

오랜 습관으로 주로 좋아하는 영화나 프로그램 같은 걸 보는 척 머릿속으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스스로 가장 의문인 건 생각을 할 거면 생각만 하고 좋아하는 영화나 프로그램을 볼 거면 보고 난 다음 생각하면 되지 꼭 틀어놓고 생각해야 하나 싶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자책하고 비난할 걸 예상해서 그러지 말라고 먼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나의 음험한 수작인가 싶기도 하다.

한 번도 스스로 잘했다고 뿌듯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리 속 빼곡한 스케줄 중 완료하지 못한 일정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더 많이 성취하지 못한 점만 계속 떠올리며 자책과 책망의 시간을 하루 종일 보내곤 했다.

새해 첫날부터 뭐 하는 짓인지 되돌아보면 절대 행복하지 않게 사는 101가지 방법을 연구하는 수준이었다.

나를 돌아보면서 인간은 때론 살기 위해 슬픔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아도취(自我陶醉)도 방향이 각기 다르다면 나는 일반적인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비틀린 셈이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선 성취욕 강한 어린이의 한 해 반성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다.

올해도 역시 비슷한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2년 6개월 회사 다니는 동안 얼마나 나태한 시간을 보냈는지 떠올렸다.

월급을 아껴 할 수 있었을 일과 시간을 아껴 배울 수 있었을 일들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곱씹다 보면 속이 쓰리다.

다년간 반복했으니 빠르게 이번 해에 할 수 있으면 빠르게 해야 할 <To do List>에 넣는다.

욕망을 최대한 부풀려 최대한 많은 목록을 만들고 예산과 시간상 불가능한 일은 얼른 지우고 나면 빡빡 해도 할 수 있는 목록이 나온다.

일 년 중 일정 목록을 보면서 가장 뿌듯한 날일 것이다.

만족감을 만끽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하게 잠든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사는 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많으니까, 기운을 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사탕의 달콤함을 위해 기꺼이 짠 눈물을 마시기도 한다는 걸 이해했다.






20대에 10년 가까이 시험을 준비하며 보냈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 내 나이가 실감 나지 않는다.

엄마가 40대, 50대에 마음은 아직 28살인데 벌써 이만큼 나이를 먹었다며 아쉬워했는데 절반쯤 이해가 간다.

공부하는 동안 오로지 집안 방에만 있으니 출퇴근하는 부모님 이외에 타인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일부러 밖에 나갈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볼 기회가 아예 없었다.

첫 직장 잘 다니다가 무슨 생각으로 다 접고 공부를 시작했는지 여전히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다 접고 시작한 공부면 죽을 둥 살 둥 해도 모자랄 판국에 핑계도 많았던 20대 초반의 나는 참 안일하다.

누군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면 거의 그럴 생각이 없는 이유이다.

현재 이 상태로 돌아간다면 다행이지만 20대의 나는 다시 돌아가도 매번 비슷할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은 늘 환경의 문제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가 더 크다.

당시 나는 나름대로 살기는 열심히 살았지만, 수험으로 보낸 그 시간이 아코디언처럼 접어놓은 종이부채같이 주름이 져서 내 인생에서 어디론가 파묻혀 버렸다.

곧 코 앞에 마흔이 다가오는 마당에 인생 계획에서 해낸 것이 있기는 한지 의문이 들어서 그런가, 내 나이에서 10년쯤 빼야 지금 정신 연령하고 실제 나이가 얼추 맞는 듯하다.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들고 철이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데 나는 과연 나잇값을 어느 정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 계발로 업그레이드를 지속해 우주를 뚫는 것이 나잇값인가,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 부를 축적하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 나잇값인가, 정신적으로 지식 축적으로 사회 현상에 빠삭하고 인간관계에 매끄러운 것이 나잇값인가.

옛 성현들의 말씀으론 자신을 잘 가다듬어 사회에 필요한 인간이 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생이 되어 명예를 얻고 타인의 존중을 받는 것이 훌륭한 삶이라 하셨다.

여기서 사회에 필요한 인간에서부터 어려움이 온다.

도대체 필요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나 직장에서 말하는 필요한 인간이란 대부분 실제 필요한 인간보다는 자신들에게 필요하고 말 잘 듣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이용해 먹기 딱 좋아서 착하고 멍청한 인간을 필요한 인간이라 지칭한다면 성현들의 말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필요란 작게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말하기도 하지만 더 큰 범위에서 보자면 역사를 말할 수도 있다.

역사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다.

기록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산다.

어제는 이미 지난 시간이자 기록된 역사로 어제 일어난 일이 백 년 후나 천년 후에 어떤 의미일지 아무도 모른다.

큰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필요한 삶이자 한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은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뒤얽혀 칡뿌리처럼 진실을 뒤덮는다.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나서야 함이 응당 당연하지만, 최근의 일들을 보자면 인생에 신념이나 핵심 가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경우 그저 역사의 바람에 휘날리다 찢기는 깃발이 될 수도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는 나서지 않는 자를 겁쟁이라 한다.

역사에서 첫 줄에 나서는 이들은 항상 희생자가 되었다.

죽음으로 세상에 부당함을 알리는 이들이 많았고 그들은 타고난 자질이 어떻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눈물 젖은 죽음으로 진실을 증명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용기라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시절 생각보다 많은 재능 있는 인사들이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덕분에 그들은 대한민국이 살아남은 뒤 선진국에서 배워 온 문화와 기술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일조했다.

하지만 중요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존망을 두고 도망갔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짜 나이 먹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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