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4장 #1 세상 일

by 단영화

는 하고 사는 행색에 비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아주 진지하다.

유심히 관찰한다면 금방 알아차리겠지만, 나는 상당히 일상 자체가 맹한 편이다.

어디서든 손해 보지 않고 잘 살아가려면 행동이 다부지고 야무져야 한다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종종 나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찾는 물건을 코 앞에 놓고 다른 데서 찾으니 부모님 보기에도 퍽 안심하고 밖에 내놓을 딸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 쳐다보듯 조마조마한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그럼에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고 타인의 고통에 쉽게 물들며 정의라는 단어에 금세 불타오르고 미래라는 말에 금방 흥분한다.

여기까지 설명만 들으면 청년이나 열혈이나 파르르 타오르는 철없는 젊은이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실제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정의의 1군으로 살면 현대 사회에서 아싸(아웃사이더) 오브 아싸(아웃사이더)가 될 확률이 높다.

똑같이 입 밖으로 낸다고 다 같은 불만이 아니다.

사회에 밝고 맑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긍정적인 면만큼 어둡고 우울한 부정적인 면도 있다.

사람의 생각은 각각의 사람당 각각의 생각이 있으니, 사람 수만큼 또는 사람 수보다 훨씬 많은 의견이 나온다.

같은 상황이라도 보는 각도는 사람 수만큼 많을 수 있으니, 정의의 개념도 다르다.

학교에서 배운 도덕과 윤리, 정의의 개념은 단순히 기준에 불과하다.

고등학교만 가더라도 대부분 배움과 현실의 괴리에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원리원칙과 규칙, 사람 간의 약속을 가르치지만 정작 나아가야 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은 위대한 배움과 전혀 다르다.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는 높은 자리의 권력 엎은 분들조차 막돼먹은 무뢰배와 같은 행동으로 언론의 1면을 장식하고 사회의 일원이 대신 얼굴을 붉힌다.

미래에 사회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이라고 표현하지만, 어린이들이 자라나 따라갈 길은 얼마나 있는가.

고운 꿈을 지킬 수 없다면 마음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

어른이라는 말은 얼마나 많은 이유로 단단한 갑옷을 만들어 자신을 꽁꽁 숨기는 철의 방패가 됐는지, 각각의 사회와 정의에 관한 의견은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벅차다.

작금의 사회는 늘 자기 대신 총대 멜 사람을 찾는다.

온갖 감언이설과 감동적인 말로 수식한 한 권의 책이나 한 장의 그림, 한 줄의 SNS 명언으로 사람들을 자극한 후에 누가 제일 앞에 설 것인지 찾아 나선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의 나 같은 사람이 신나서 손을 들면 사회는 그들을 차출하여 가장 앞줄에 세운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도 의도도 없던 무언가를 하는 극단적인 인물이 되어 사건의 파도를 타고 어디론가 의도치 않은 곳으로 흘러간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학교에서 발생하는 사고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그러니 세상일이란 지나치게 관심이 많아도, 관심이 없어도 문제다.

그래서 옛 성현 중에 중도를 강조하는 분이 나와서 뭐든 간에 쏠리지 말고 현명하게 판단해서 처세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러면 언제쯤에나 나서서 신념을 내보일 수 있을까.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죽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신랄하게 까대는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겁쟁이로 한평생 자기 자신을 혐오하다 죽어야 하는 걸까.

세상에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 하지 않은가.

적어도 누울 자리, 죽을 자리, 들을 말 따위쯤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사회적 선택의 자유나 여유 정도는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학교 열심히 다니고 책 많이 읽고 공부하면서 열심히 사는 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뭘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지 이유가 있어야 나의 시간이 되었을 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학생 때, 남들이 쓸모없다고 하는 생각을 한참 할 때였다.

사회 시간이었는데 교과서에서 한국의 역사 중 일제강점기를 배우는 즈음이었고 당연히 당시 독립운동 하셨던 역사적 인물에 대해 배웠다.

사진을 보다가 문득 교과서 속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과연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나처럼 나약한 사람은 누가 와서 겁만 주면 아는 대로 다 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잡아가서 고문하려고 시늉만 내도 다 불었을 것만 같다.

그분들은 어떻게 그 시대에 그 불우한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을 불살라서 살 수 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재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 특정한 상황이 닥친다면 평소 했던 생각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지 않을까.

그 시대에 시대의 암울과 어둠을 보고 평소 했던 생각대로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냥 내가 한 것이라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단순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소에 내 최후의 날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 일 없이 살다 평온하게 밥 먹고 잠자다가 죽으면 다행이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던가.

시대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사건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가치를 위해서 죽을 것인가.

그 죽음이 개죽음이 아닐 확률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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