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2 사랑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이야기이다.
사람은 태어나 살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좋아한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이성이 될 수도 있고, 부모님이나 연예인이 될 수도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재채기와 같아서 냉정한 이성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조절하기 어렵다.
마치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밖으로 티가 나는 자율신경계의 반응처럼, 아무리 감추려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만약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조절해 나 스스로 속일 수 있을 정도라면, 그는 조절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는 것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감정을 통해 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의 힘이다.
그 반증이 바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하는 이야기이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그 유명한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대목이다.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감흥 없던 옛날이야기일 뿐인데, 나중에 춘향이, 몽룡이 나를 알고 나니 말이 달라졌다.
당시 나이로 16세 전후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 일생일대 가장 화끈한 사랑을 한다.
그 배경에는 신분 상승을 향한 춘향이의 야망이 깔렸을 수도 있고, 상황을 이롭게 이용하려던 몽룡이의 철저한 계산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두 사람이 만나 불같은 사랑을 했을 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을 거라고 본다.
사랑에 빠졌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 가야 했고, 두 사람은 뜨거운 야망과 차가운 이성이 장점이었을 수 있다.
사랑은 불장난이고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지만, 사랑이 촉발한 폭발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각자 밑바닥에 깔려있던 본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쯤 보면 사랑이란 부드럽고 나약하고 따뜻하며 사랑스러운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핵폭탄보다 무섭고 걷잡을 수 없는 야생성이며 한계를 뛰어넘는 허들 브레이커이다.
때로 부모님의 사랑을 보고 초인적인 영웅의 초능력이라 표현한다.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위협에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된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본능의 힘을 사용한다.
자식을,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열정적이고 순수하며 인간적이라고 본다.
생물은 인간이 생각하는 형태의 아름다움을 일평생 내내 유지할 수 없다.
삶을 산다는 건 무척 많은 모순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내 형태를 잡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 여정에 있어 가장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는 바로 이 사랑이다.
물리적으로 고칠 수 있는 몸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성형이 널리 성행하는 시대에 외형은 얼마든지 돈과 시간을 들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위협적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과 감정은 인간 사회를 떠도는 유령 같다.
입맛대로 바꿀 수 없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심지어 밖에서 올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나타난다.
잠을 잔다고 피할 수 없고, 깨어 있다고, 군중 속에 있다고 벗어날 수 없다.
감정과 욕망을 해결할 수 없다면 사회에 어떤 자리에 있든 사는 내내 죽지도 못하고 산채로 화형 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중에서도 최고가 사랑이다.
온갖 성서에서 설명하는 신의 사랑이 인간 세상을 보살핌에도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살도록 도우려고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시지만, 배우는 건 자식 본인이다.
그래서 이 사랑이 세상에 있음에 감사하지만, 해결하지 못한다면 세상 살기 편한 현대의 삶에서 지옥문이 열린다.
타인이 나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천천히 문이 열린다.
진정한 유산이란 이 지옥문을 스스로 조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몇 년 사이 남의 연애를 구경하는 TV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다.
연예인들의 유사 연애도 있었지만, 짝이나 나는 Solo, 환승연애 등 본격적으로 일반인의 연애가 등장했다.
연반인이라 불리며 연일 SNS상에 그들이 뭘 했고 누구와 만났고 뭘 입었는지 회자됐다.
개인적으로 거의 8년 가까이 누굴 만난 적이 없어서 내 연애도 해결 못하는 마당에 남의 연애사가 재밌을 리 없었다.
잠깐 흥미를 보였지만, 이내 곧 사그라들었다.
우리나라 최고 미남 미녀가 나와 연애를 한다 해도 어차피 남의 일이다.
눈은 즐겁지만, 그 재미를 대신 남이 원격으로 느끼는 데서 만족감이 전혀 없었다.
대리만족도 마음에 와닿는 게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내 흥미와 다르게 세간에 시청자 반응은 뜨거웠고 프로그램은 매번 잘 됐다.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 크고 연애나 사랑에 관심이 많구나 싶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오히려 구설수에 오를 만한 행동을 보이면 반응은 더 뜨거웠다.
연애나 결혼에서 얻을 수 있는 감정이 보는 시청자들도 같이 분통 터뜨리면서 공감할 수 있었던 듯하다.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다큐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매번 다양한 데이트 폭력과 사랑에 기인한 범죄를 다뤘다.
그*이 알*싶*나 궁*한 이*기* 같은 사회적 사건 사고를 다룬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자주 보는 편인데, 유독 요 몇 년 사이 데이트 폭력 사건을 자주 다뤘다.
가장 충격받았던 사건 중 하나는 어금니 아빠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이*학 사건이다.
*플릭*에서 한국 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됐던 N번방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룬 다큐를 방영하기도 했다.
아직 어린 10에서 20대에 이르는 젊은 소년들이 여성들의 약점을 무기로 삼아 노예처럼 부리며 인생을 파괴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계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성범죄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 로맨스 스캠 등등 전부 다 셀 수도 없다.
특히 10대 사이 일어나는 성범죄가 한계 없이 극악무도해서 매년 새로운 종류의 범죄를 갱신한다.
한쪽에선 이상적인 연애와 사랑, 결혼을 동경하고, 다른 한쪽에선 사랑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사건을 다룬다.
사회판 사랑의 단짠이 있다면 이런 맛일까.
좋은 면을 실컷 이야기하고 나쁜 면을 질리도록 보여줘서 어쩌면 보는 것에 만족하고 끝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나쁠 걸 알고 하는 사람을 보고 바보라고 하던데, 젊은 세대가 이미 사랑의 나쁜 면을 다 보고 배웠는데 함부로 덤벼보라고 떠미는 건 잔인하다.
그러니 사회 어느 시점에는 분명히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시점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학창 시절이나 훨씬 더 어릴 때 미숙한 사랑에 실패하고 도전하는 기회를 얻지 못할수록 성인이 된 후 실패할 기회를 잃는다.
비단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단지 나에게 국한된 개인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다.
자연스럽게 나이 먹으면서 저절로 알게 된다고 여겼던 사랑 같은 감정마저 살면서 감정에 따른 나의 행동을 시도해 보고 거기서 배워볼 기회가 필요하다.
하지만 살기 팍팍한 사회는 가면 갈수록 높은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고 감정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거부하는 경험조차 거절한다.
인종, 피부색, 성적 취향, 성별, 외형, 개성 등 외적 다양성을 이토록 추구하는 세상에서 외형보다 훨씬 다채롭고 섬세한 감정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라니 진짜 살기 힘들다.
누군가는 무지개를 7가지 색깔이라 칭하고 다른 누군가는 700가지 색깔이라고 말한다.
감정도 몸의 감각기관과 뇌의 적절할 콜라보로 누군가는 정확하게 7가지로 느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기쁜 감정만 700가지 일 수 있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점점 어려운 건 산업 발전으로 전문가의 시대가 오면서 감정을 다루는 기술조차 전문가이길 바라는 사회 풍조로 인한 것일 수 있다.
감정이 폭발하는 사춘기조차 어떤 시도도 허용되지 않고 발산이 실수가 되면 어디에서 미숙한 단계의 감정을 다뤄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