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3 결혼
결혼은 희뿌연 안갯속 길 잃은 로망이다.
지금은 결혼에 냉소적이기 그지없지만, 어린 시절엔 달랐다.
분명 확고한 환상이 나름 있었고, 적잖이 기대했다.
그렇다고 만화에나 나올 법한 꿈과 환상의 나라에서 휘황찬란한 결혼식을 꿈꾸지는 않았다.
삶이 닭가슴살 마냥 팍팍하고 생간 마냥 비린데 뭘 뿌린 들 맛있으랴.
언젠가 설레는 첫사랑을 할 테고, 또 언젠가 마음에 누군가를 품어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이었다.
만약 평생 함께 살기로 약속했고 책임져야 한다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목격한 결혼이란 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나와 상대가 필요하다.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함께 하고 싶어 해야 성립하는 계약인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바와 타인이 원하는 바가 일치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고, 특히 결혼에서 목적지가 합치해야 행복한 결혼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에 나는 무척 야망 있는 어린이로,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며 지극히 나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허들이 상당히 높았다.
내가 어떤 외모에 어떤 성격, 어떤 조건을 지녔는지는 논외로 하겠다.
꼭 자격이 있어야만 조건을 꼽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당시 조건으로 보자면 가장 먼저 따지는 1순위가 꿈이었다.
떠올려 보면 고작 12살짜리가 뭘 안다고 호감을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질문을 했다.
인터뷰하듯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다 들어보고 꼭 마지막에 한 마디를 붙이곤 했다.
너는 꿈이 뭐야?
생각해 보면 진짜 웃기다.
학교 수업도 아니고, 친구들끼리, 또래끼리 재미로 할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아마 당시 나는 만나면 헤어질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잘 키워서 당첨 복권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같은 동네에 나고 자란 친구들은 단 한 사람도 그 질문을 넘어간 사람이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나는 내 가치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었다.
불우하게 일찌감치 비뚤어진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 줄 만한 인연은 그 후로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다.
지금은 사람 차이일 뿐이라고 여긴다.
마흔을 목전에 둔 이제는 혼자 노 젓는 법을 터득해서 아슬아슬한 조각배도, 망망대해에 통통배도, 그냥저냥 흘러간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보는 여성들의 결혼 관념은 대부분 자기희생적이다.
어린 시절에 시골에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시 시골은 도시에 비해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일반적이어서 노쇠하고 병든 아내일지라도 남편의 수발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도시의 여성들이 모두 주체적으로 가정 내에서,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산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한국의 여성들이 사회 안에서 필수 덕목처럼 여기고 행동해야 하는 행동 지침 자체가 여성에게 일정 이상의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이다.
결혼하면 여자는 잘 살아오던 인생을 내려놓으며 시작한다.
가족을 위해 하는 집안일은 24시간 급여도, 휴가도 없다.
살림은 생활이 실제 돌아가는 집안을 유지, 보수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집에 아무도 오지 않으면 몰라도 생활의 흔적이 남아서 완벽하게 정리한다고 해도 유지가 어렵다.
신경 써서 치우지만 뒤돌아서면 사용 흔적은 집안 곳곳을 헤집으며 어지럽힌다.
하다못해 물 한 잔 마시려고 컵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싱크대는 사용한 컵으로 가득하다.
두 사람만 살 때는 그나마 양반이다.
사랑의 결실을 맺으면 여성은 임신할 수도 있다.
평생 살며 겪어본 적 없는 온갖 불편한 증상을 겪으며 뱃속에 새 생명을 길러낸다.
당연히 2인분의 몫을 매달고 다녀야 하니 몸은 천근만근이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을 마주한다.
고역 끝에 10달을 채우면 드디어 목숨을 걸고 산고 끝에 자손을 낳는다.
갓난아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만 있을 뿐, 일정 기간 이상 자라야만 제 몫을 한다.
적어도 5년 이상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서 길러야 한다.
신기하게 이 모든 과정이 희생 그 자체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경제적으로 누군가를 부양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남녀 가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양질의 일자리인지 아닌지 다를 수 있지만, 경제적 보호자의 역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역할은 오로지 여성에게 태생적으로 맡겨졌고, 현대 과학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지만, 아직은 여성의 책임이자 큰 희생이다.
한 번도 임신과 출산이 불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롤러코스터보다 살벌한 인생의 격변기를 겪는 동안 여성이 불행한 이유는 환경 자체에서 그 희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이 왔을 때이다.
숭고하고 위대한 엄마라는 길을 선택했을 때 여성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행복을 느끼는 건 배우자의 재량이다.
남편이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했을 때 아내가 인정해 줄 때 노력이 빛나는 것처럼, 이 모든 어려운 과장에서 남편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 페미니즘, 결혼, 임신, 출산, 결혼, 남녀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면 부부의 의미를 떠올린다.
혼자 살 땐 이 인생의 길은 하나고 전략기획본부도 하나다.
하지만 결혼하고 배우자가 생기면 이 인생의 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전략기획본부도 둘이다.
그러니 본부를 하나로 합치고 잡다한 길을 솎아내야 한다.
결혼식 올릴 때까지 부부는 한 팀이고 팀워크를 맞춰가야 한다고 알고 시작해도 현실에서 각자 중요한 순간에 자기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배우자를 선택할 땐 반드시 그 끝에 뭘 생각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원래 결혼이란 제 짝과 만나는 것이다.
아내를 하녀처럼 대하면 남편 또한 하인으로 살 수밖에 없고, 아내를 존중하면 남편 또한 배우자에게 존중받는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때로 TV나 언론은 극단적인 예를 들어 사람들의 환상을 깨고 불안 요소를 심는다.
재미를 위한 만든 사회에 떠도는 자극적인 이야기는 성인임에도 완전히 애정관이나 연애관, 결혼관을 정립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그 정도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인생이 흔들릴 정도면 애초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여길 수 있지만 경험으로 채우지 못하면 간접적으로 배워서라도 알아야 하는데 예시가 온통 불륜, 배신, 사기, 폭력이라면 실제를 알기 전에 시도해 볼 용기조차 나지 않을 수 있다.
치킨 광고에서 이 치킨은 먹으면 탈이 나고 죽을 수 있다는 홍보를 한다면 누가 그 치킨을 사먹겠는가.
결혼이란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적어도 내가 먹고 죽을 것 같은 식사는 아니어야 숟가락이라도 들고 먹어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결혼을 다루는 많은 매체에서 설명하기론 결혼 후에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계좌나 생활비를 따로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아마 이혼에 대비하려고 그러는 듯 보인다.
초등학교 때 짝을 정해주면 괜스레 책상 가운데 선 긋고 못 넘어오게 심술부리던 때에서 그다지 진화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주변엔 자주 싸우기는 해도 서로 존중하며 사는 부부가 간혹 있다.
그들이 잡음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없을 뿐이지 보이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부부가 꽤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나는 그들이 아니고 언젠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내 배우자도 그들이 아니다.
맞춰가는 것은 나와 배우자 당사자들의 이야기이고 여기저기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실제 마주 보고 같은 생활권에 경제 공동체로 묶여보지 않는 이상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장 중요한 건 아마 예비 배우자의 존재가 아니라 예비 배우자를 선택할 나의 안목 아닐까 싶다.
세상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지만 나를 위한 완벽한 배우자는 존재한다.
배우자가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변주곡이니 나와 배우자가 얼마나 쿵짝이 잘 맞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지루하다고 하면 노래라도 한 곡 불러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와 배려 정도면 충분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