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 2세 계획이었던 것
어느 날 TV를 봤는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본인인 연예인 사유리 씨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애를 낳았다.
당시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나이가 많아서 난자를 냉동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만 혼자 아이를 낳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몸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엄마 말로는 전신의 뼈와 근육이 늘어났다가 줄어든다고 하더라.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체육 시간에 운동하다 발목만 접질리고 근육에 무리만 해도 근육통으로 며칠 동안 고생을 한다.
대략 24시간 이상 전신의 뼈가 이음매 하나하나 늘어나는 고통을 겪는다니, 나를 낳아준 사실만으로도 엄마한테 황송할 따름이다.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고 아이를 안아보는 기쁨이라고 표현하던데 절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그런 부담스러운 과정을 배우자 없이 홀로 견뎌냈다는 말인데 인생을 참 과감하게 사시는 듯하다.
아마 나라면 인생에 대단한 변곡점이 없는 이상 거의 내릴 수 없는 결정이기 때문에 그녀의 결정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결혼이나 가족, 아이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어릴 때 장래 희망을 써낼 때에도 부모님은 선생님을 권한 적이 있지만 나는 선생님처럼 미래를 어깨에 24시간 얻고 사는 직업이 싫었다.
당장 나만 봐도 내가 나 같은 인간을 제대로 사람의 길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어릴 때 엄마 말 안 들으면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너 같은 자식 낳아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면 유독 소름이 돋고는 했는데 나 같은 자식이나 나 같은 학생을 만났을 때 나는 제대로 된 어른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에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나와 같은 성향에, 나처럼 생각하는 인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고 압박감이 대단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나 같은 인간이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교사가 되거나 부모가 된다면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상대가 바로 나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나이 먹고 어쩔 수 없이 잠깐 학습지 교사로 일하기는 했지만, 일주일에 딱 하루 한 과목당 10분 안짝으로 가르치고 가는 선생님과 인생의 방향을 가르치는 선생님하고 다르지 않은가.
내 인생 방향도 제대로 설정 못 해서 헤매고 사는데 누가 누굴 가르쳐서 인간의 길로 인도한단 말인가.
아마 어릴 때 인연이 된 초등학교 선생님의 영향이 커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의 어머니였는데 그 선생님 덕분에 나는 학교생활에 무사히 정작 했다.
인간관계 자체가 어려워서 매번 교실에서 붕 뜨기 일쑤였는데 글쓰기를 권해주셔서 처음 글을 써 보고 몇 번 상을 받다 보니 친구들이 저절로 생겼다.
그 선생님이 딱히 10살짜리 꼬맹이한테 너는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 건 아니었지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경험을 했더니 선생님이란 참 대단한 직업이라고 여겨서 더 부담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과 엄마는 거의 동급의 책임감과 중압감을 주는 단어다.
2세란 내 숨이 다해서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한 존재를 생산해 내는 일로, 그 존재가 내 말을 듣지 않아도 따라오는 책임은 나에게 떨어지며, 그 존재 때문에 죽도록 아프고 슬퍼도 그 아이가 존재하는 한 모든 일을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대상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판단해 보자면 나는 결코 엄마한테 좋은 2세는 아니었다.
얼마나 노력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나 2세라는 존재의 삶에 대한 포인트를 잘 잡느냐가 중요한데 엄마와 나는 그 포인트를 아는 날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말이 없는 어린이여서인지 엄마 인생에 풍파가 많아서인지 알 수 없으나 결론적으로 시기를 놓치고 나니 매끄러운 관계로 되돌리는 데만 삶의 절반 이상이 걸렸다.
인간관계의 조기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서 또 한 번 깊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2세를 낳았을 때 나는 그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애가 커서 5살쯤 유아원에 간다고 치면 5세 이전에 나는 그 애의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이는 인간의 최소 의사소통을 배우기까지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 이외에 의사소통의 방법이 없다.
관찰만으로 사람의 마음과 욕구를 파악할 수 있다면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 문제는 벌써 다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거의 미션 임파서블 급의 인생 최대 미션이 아닌가.
최근에는 내 입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생에 결혼이나 출산이 일어날 확률이 독거노인으로 살다 죽을 확률보다 현저히 높다고 본다.
아마 2세는 책임감, 부담감 운운하기 전에 만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꿈도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 만약 2세를 보는 날이 온다면 생각지도 못한 책임감, 부담감의 달콤한 액기스를 맛볼 수 있을지도.
인생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