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5 배움에는 끝이 없다
사람 모양으로 산다는 건 어렵다.
항간에는 뱃살이 많을수록 인기가 많다는 참치가 부럽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도 우스갯소리로 떠돌지만 내 관점에서는 수영을 멈추면 근육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죽는다는 참치와 사람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제대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배움이란 학교나 기관에서 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80년이라고 보더라도 짧으면 10년, 길면 20년 이외의 시간은 전부 인생을 살며 몸소 배운다.
그땐 책이나 선생님, 교육 교재 같은 보조기는 없고 오로지 인생이라는 길에서 나 하나만 놓이는 것이다.
학교라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에서 나와 비포장도로를 직접 손수 포장해 가며 걷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부유하다면 유리하기야 하겠지만 태어나서 해야 하는 일의 양과 질을 따졌을 때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곱게 포장하며 걸어가야 하는 입장은 사람인 이상 누구나 같다.
열받는 건 곱게 포장해서 깔아놔 봤자 나중에 한잔 하며 내 인생이 그랬다며 미화하고 자랑할 때나 쓸모 있지 다시 그 길로 돌아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미 깔아놓은 고운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내 발바닥이 경험하지 않을 보상 같은 것이다.
다만 내 뒤로 자신의 길을 깔고 오는 이들의 포장 재료 중 하나로 던져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도 똑같이 자신 앞에 있는 비포장도로를 곱게 정비하며 걷기는 또 마찬가지이다.
옛말에 80 노인이 되어서도 3살 어린아이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이미 조상님들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80이 되어서도 참치처럼 열심히 헤엄치며 자신 앞의 길을 포장하지 않으면 얼마나 걷기가 어려웠는지를 말이다.
무덤에 들어가 관뚜껑 닫는 날만이 우리네 제대로 된 휴식의 종착지이며 한숨 돌리는 날인 것을.
나이 먹고 은퇴하여 10년, 20년을 똑같이 살더라도 그 삶에 배움이란 없을 수 없다.
하루하루 쌓이는 속도와 깨닫는 양이 다를 뿐이다.
가령 은퇴 후 자식들도 가정을 이루고 손주를 봤으며 금전적 걱정이 없고 잔여 삶을 누리는 이가 있다고 치자.
남은 삶에 늘 건강할 수 없고 자손의 삶이 늘 평안할 수 없으며 사람은 각양각색이라 사회에 살면 당연히 사건이 생긴다.
아무런 자극 없이 20년을 무사히 보냈다 한들 한평생을 살아본 이에게 감상이 없을 수 없고 되돌아보며 느끼는 바 한 줄 쯤은 있을 것이다.
작년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물론 학문에 뜻이 있다는 이유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볼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아주 불순한 의도로 입학했다.
입학 후에 보니 사이버대학원이라 내 의도와는 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왕 입학한 김에 새로운 지식도 익히고 공부도 해볼까 싶어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늦은 나이에도 학문적 의미로 공부한다는 걸 알았다.
긴긴 인생에서 나처럼 불순한 의도로 공부를 시작한 사람도 있을 테고 자기 계발로 인생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적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애초에 태어나서 배운 공부는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통해 세상을 압축해서 배우는 것이었다.
초, 중, 고 학생의 삶은 대부분 그렇게 이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책과 종이를 통해 배운 지식이 인생과 저절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정작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지식인 인간관계 기술이나 감정을 다루는 방법,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 같은 건 알려주지 않는다.
자기 개발서 중에 심리학이나 명상 같은 나 자신을 알아보는 책들도 나왔고 인문학이 한참 유행하기도 했지만,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사용하고 사는 가는 의문이다.
유행만큼 사회에 핵심 가치가 됐다면 왜 미성숙한 인간성에서 비롯한 사건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오히려 초등학교 때 배운 도덕조차 잊히고 있는 것이 실상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사회를 대표하는 이들의 행동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배움에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