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3장 #6 식물 키우기

by 단영화

생이 늘 그렇듯 시작은 단순히 식비 때문이었다.

상경 후 첫 일 년 동안 식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바람에 열심히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다행히 회사 점심은 모두 도시락을 가져와 먹는 분위기였고, 덕분에 유난스럽지 않게 조용히 식비를 아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한 번 장 볼 때마다 산 것도 없이 식비가 파격적으로 많이 나와 부담감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원체 먹성이 좋기도 하고,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서글퍼지는 육식파라 어쩔 수 없었다.

최선의 타협으로 저렴한 고기를 사거나 섭취 횟수를 최대한 줄였지만, 다 먹고살자고 열심히 일하는 건데 먹고 싶은 걸 못 먹어가며 이 거친 세상을 견디자니 의욕이 땅으로 꺼져서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가뜩이나 먹고 죽을 고기도 부족한 마당에 기본적으로 고기에 곁들여 많이 먹는 파나 마늘은 왜 이렇게 비싼지 눈물이 났다.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의 입장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다.

땀과 노력을 들여 키운 농작물이 수익을 내야 내년 농사를 준비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가난뱅이 소비자 입장으로 기본적인 양념만 쟁여놓는데 최소 수십만 원 이상이 드니 아쉬움이 컸다.

뭔가 상황을 타파할 특단(特段)의 조치(措置)가 필요했다.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의 보통재(普通財) 가격이 가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니 1인 가구의 가장인 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동물을 키워 잡아먹기는 어려우니, 텃밭을 가꿔보기로 했다.

내 인생에 있어 손에 꼽히는 큰 결심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유인즉, 우리 가족과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프로 화분 킬러이기 때문이다.

식물만 키우면 죽이기 일쑤였다.

남들하고 똑같이 물 주고 햇빛 쐬어주는데 어째서 내 선인장만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것인가.

애정이 넘쳐서 과도한 사랑으로 축축하게 죽어가는 거라면 신경을 덜 쓰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다음엔 바싹 말라죽는다.

분명 물을 전보다 긴 기간을 두고 줬지, 안 주지 않았는데 왜 죽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병에 담가만 놓으면 신경 쓰지 않아서 알아서 쑥쑥 자란다는 실내 식물도 이유 없이 사망하곤 했다.

과연 선인장도 말라죽게 하는 내가, 내 입에 들어갈 텃밭 작물을 키워낼 수 있을지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키운다고 들였다가 쓰레기만 한 트럭 만드는 건 아닌지, 얼핏 70%의 미래가 엿보였다.

애초에 텃밭이 유지는 될까, 한 계절이 지나가기 전에 텃밭이 텅텅 비지 않을까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 집은 나 혼자 살고 있으며, 혼자 사니 혼자서 뭘 하든, 다 내 마음이다.

이 작은 10평 집의 공간은 월세를 내는 한 나만의 작은 왕국이다.

범법 행위와 이웃에 피해가 가는 민폐가 아닌 이상, 홀로 이불을 둘둘 말고 거실에서 애벌레처럼 기어 다닌다 한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런 마당에 작은 텃밭을 만들고 싶다는데 못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장 화분과 흙, 식물 씨앗을 구매했다.

비료를 뿌리면 더 잘 자란다고 했지만, 언제 죽을지 몰라서 비료 구매는 보류했다.

앞, 뒤 난간에 화분을 올려놓을 자리가 있어서 대충 텃밭을 꾸려 화분을 내놓았다.

첫 번째 일주일 만에 텃밭에 싹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씨를 몇 개 안 뿌린 것 같은데 텃밭에 흙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나중에 엄마가 집에 놀러 왔다가 보고 새싹을 솎아주어야 한다고 해서 한 번 싹 쥐어뜯어 놓았더니 몇 포기 안 남기는 했지만.

씨 뿌린 뒤 새싹이 올라오고 미친 듯이 자라는 동안 사진과 동영상을 미친 듯이 찍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 손에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놀라움에 어안이 벙벙했다.

해준 거라곤 흙에 씨 뿌리고 물 주고 햇빛 아래 놓아두었을 뿐인데, 잘 자라서 작지만 제 모습을 어엿하게 갖추니 감개무량했다.





차저차 얼렁뚱땅 적당히 대충 자란 상추와 부추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가로 40cm, 세로 25cm 화분에 작고 여린 잎이 빼곡하게 가득 찼다.

키는 얼마 자라지 않아 빈약하기 그지없는 이파리가 작은 미풍에도 파리하게 휘날렸다.

과도를 들었다가, 가련한 이파리의 흔들림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버터와 잼용 나이프를 단단히 쥐고 푸릇한 이파리를 쓱 쓸어보았다.

심지어 탄력도 없이 양쪽으로 흐늘거리는 모양이 뭔가 못할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린 새싹을 먹어도 괜찮은 것인가.

과연 이 어린 잎채소가 제대로 채소 맛을 낼 수 있을까.

물만 먹고 자랐는데 이 작은 이파리에 영양소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심란한 마음에 한참을 쳐다보았다.

색깔마저 너무 연두연두하고 푸릇푸릇해서 해사하고 맑게 웃는 어린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이 어린잎 채소들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아린 마음을 부여잡았다.

눈을 딱 감고 왼손으론 어린 채소잎을 잡고 오른손에 든 나이프로 뿌리 가까이 줄기를 끊었다.

사실 줄기를 끊는 건지 뿌리째 뽑는 건지 모를 행위였다.

쑤욱하고 뿌리까지 뽑혀 올라오는데 아무런 저항감이 없다.

이 녀석들 혹시 흙에 심긴 게 아니라 살포시 기대어 자라는 중이었나 의심이 들었다.

그대로 심어도 감쪽같이 다시 자랄 것 같았지만, 일단 꾹 참고 먹을 만큼 채소를 뜯었다.

흙을 털고 흐르는 찬물에 깨끗하게 헹궜다.

식초를 살짝 뿌렸더니 살균이 아니라 살생이 돼서 채소잎이 축 늘어졌다.

덕분에 수확한 채소 중 반은 거의 아무런 식감이 안 났다.

채소가 아니라 그냥 유기물 덩어리를 씹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정상적으로 살아남은 한 줌의 상추와 부추가 남았다.

상추는 올망졸망 동글동글한 잎사귀가 정말 미니어처 상추였으나, 부추는 어딘가 이상했다.

씨앗 포장지의 그림은 넓적한 잎 모양의 흔한 부추였는데, 막상 자란 모습을 보니 흡사 잔디 같았다.

영양분이 부족해서 솔잎처럼 가느다랗고 빈약했다.

솔부추도 먹어봤는데 전혀 맛과 식감, 형태가 달랐다.

일단 수확했으니 먹어보기로 했다.

설마 먹고 죽을 채소 씨앗을 팔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 한 줌과 여태 고생해서 길렀으니 그 맛을 봐야겠다는 의지가 대부분이었다.

입에 넣고 우물우물 몇 번 씹으니 여린 잎은 순식간에 한 덩어리로 뭉쳐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먹기 전에 의문이었던 채소 맛은 먹고 나니 미궁에 빠졌다.

평소 먹었던 채소 맛은 입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론가 사라진 건지, 원래 알고 있던 채소 맛이 아니었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기는 해도, 맛있는 채소가 어떤 맛인지는 안다.

텃밭에서 수확한 나의 첫 출하물은 무맛에 풀비린내가 났다.

말 그대로 풀 비린내였다.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이슬 맞은 뒷산에 올라 넓은 들에 손으로 휘휘 저어 잡풀을 한주먹 뜯어 씹어먹으면 날 법한 날 것의 맛이다.

먹는 내내 맛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접시만 바라보았다.

몇 차례 수확하고 토스트에 곁들이 채소로, 겉절이 샐러드로 만들어 먹었지만, 그 풀비린내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탈 나지 않은 걸로 봐서 못 먹을 무언가는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썩 달갑지 않은 결과에 실망감과 허탈함, 비통함과 무력감이 서로서로 손잡고 내 마음에 찾아와 문을 박차고 들어와 패악질을 했다.

텃밭 농작물을 향한 열정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후로 회사 일이 바빠져 한동안 텃밭을 방치했더니 나중엔 보고 상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길게 자라서 대략 90~100cm짜리 상추 나무로 변했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허리춤까지 올라왔는데, 긴 원줄기에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뻗은 곁줄기가 지네 다리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가지가 원추형을 그렸다.

꼭 앙상한 침엽수처럼 생긴 것이 잎 다 떨어진 트리 같았다.

햇빛을 과하게 많이 쬐서 그런지 흙이 비옥해서 그런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다음 해에 식물원에 갔다가 얻은 농작물 씨를 세 가지 얻었는데 불행하게도 세 농작물이 모두 새싹만 틔웠다가 한 여름 강렬한 뙤약볕에 타 죽었다.

알고 보니 아직 어린 식물은 계속 뜨거운 햇볕 아래 내놓지 말아야 했다.

이렇게 텃밭 작물은 빠르게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덕분에 식비는 식비대로, 작물 키우는 비용은 비용대로 두 배로 들었고 나는 아직도 도시 농부의 텃밭 가꾸기라는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꼭 제대로 된 상추를 수확해서 고기를 싸 먹어 보고 싶다.





쓸한 첫 번째 텃밭 수확의 추억과 별개로 반려 식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전엔 오로지 먹기 위해 텃밭을 가꿨다면, 가장 최근 데려온 식물들은 모두 관상용이다.

인생에 먹지 못하는 꽃이나 화분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실패는 했어도 수확까지 해본 경험이 나름 좋았던 모양이다.

자주 화분 판매처를 기웃거리다가 늦가을에 뒤늦게 불이 붙었다.

사고 싶어서 고이 담아뒀던 화분들을 대거 들였다.

화분 둘 자리를 만들려고 온 집안을 다 뒤집었다.

침실에 둘지 거실에 둘지 고민하다가 침실에 뒀었는데 이상하게 화분이 이유 없이 죽었다.

깜짝 놀라서 이리저리 옮기다가 마지막으로 거실로 옮기면서 지금은 자리를 잡았다.

계절이 변하고 식물이 자라서 분갈이도 하고 나름 정성을 쏟았지만 이번에도 화분은 반타작이 났다.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면 말라 있고 출근하고 돌아오면 죽어 있고 말라서 물을 주면 까맣게 썩고 물이 많은 탓에 잎이 갈변해서 적게 주면 새하얗게 메말랐다.

가장 최근엔 분노가 득도로 변했다.

하물며 같은 종인 인간도 이해를 못 해서 맨날 부딪치는데 뿌리로 영양소만 먹고사는 전혀 다른 종인 식물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겠나.

허나 아직 포기하진 않았다.

돌아오는 봄을 기약하며 한동안 화분을 세심히 관찰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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