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3장 #5 가계(家計) 대란(大亂)

by 단영화

직 전 직장에서 월 급여는 대략 200만 원 초반이었다.

물론 순수하게 200만 원 초반만 받은 건 아니라 식비나 여름, 겨울 휴가비를 합치면 그보다는 많았다.

여름과 겨울에 맞는 휴가철보다 반가운 건 메마른 잔고(殘高)에 쏟아지는 달달한 여유 자금이다.

현시대 대한민국에서 월급 200만 원의 가치는 최저시급에 맞먹는 정도에 불과하다.

2025년 기준 최저시급은 10,030원으로, 월급으로 따지면 2,096,270원이다.

여기서 세금과 4대 보험을 제하면 1,874,490원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이다.

20대 초반, 첫 번째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은 세전 160만 원 정도였다.

학교 기업에 취업했던 터라 그만큼 준다고 하니 군말 없이 알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지인들이랑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가 당시 내 월급이 많은 편이었다.

세금 다 떼고 130만 원 정도 남았고,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30분 거리를 오가며 도로에 많은 돈을 태워버렸지만, 풍족했다.

세월이 흘러 대략 20년 사이에 물가는 치솟아 자장면 한 그릇이 1.5배 상승한 이 시점에 당시 급여나 지금 급여나 비율로 따지면 비슷한 셈이다.

다만 아직 여유 자금이 풍족하지 않다는 사실이 걸린다.

혹시 독거노인으로 늙어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때를 대비해 혼자 살아도 즐겁게 살려면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

경력을 쌓고 일로 사람을 알아가고 책을 내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인생은 늘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위에서 줄줄이 이야기했던 대로, 지금 대한민국 물가와 집값은 장난이 아니다.

천근만근 무거운 인생 짊어진 등을 누일, 고작 10평짜리 방 하나 내 거 하려면 최소한 월급의 반씩 모으면서 순수하게 미래의 행복만 바라보며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

그러려고 태어난 건 아닐 텐데, 상상만 해도 한숨만 나온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중년 이상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생 판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의 영끌의 온상으로 변했고, 몇 년 전부터 크게 유행한 가상 자산은 평범하게 잘 살던 행복한 이들을 벼락 거지로 만들며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뿐만이랴.

주식이다, ETF다, 온갖 금융 상품까지 날뛰며 노는 돈, 눈먼 돈, 뭉칫돈을 부른다.

막막한 현실과 캄캄한 미래에 너도나도 여유만 있다면, 아니 여유가 없어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인생 역전을 꿈꾸며 인생 최대 도박을 하는 것이다.

재밌는 건 비트코인이나 주식 투자, 온갖 금융 상품이 크게 유행하면서 매체에서 젊은 부자들을 주목한다는 사실이다.

영앤리치(Young&Rich)라 불리는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부를 통해 달라진 삶을 전시한다.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손을 떨며 하는 소비도 우습게 해치워 버린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명품, 한 끼에 보통 사람 한 달 치 식비에 달하는 고급 식당의 식사, 평생 한 번 운전대를 잡아볼 수 있을까 싶은 가격의 스포츠카, 한강 뷰를 자랑하는 고급 주택까지, 빈부격차의 전시가 시시때때로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자본주의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야만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제도이다.

원시시대 파워 게임은 누가 먼저 철기를 사용하는지로 갈렸다면, 현대의 파워 게임은 누가 먼저 틀을 깨는지로 갈린다.

예전엔 왕조가 최소 100년 이상을 지속했다면, 현대의 왕조는 10년을 버티기 어렵다.

새로운 도구와 방법은 매년 기술과 개념으로 갱신하고, 기존 세력이 구축한 세계는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방법으로 허물어지고 기운다.

왕조시대와 신(新)야만시대의 대격돌 속에 스파크처럼 튀어나온 부산물인 셈이다.

그야말로 가계(家計) 대란(大)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난해서 좋은 점은 세상에 어떤 풍파가 불어닥치던 의미가 없단 거다.

나는 현재 1인 독립출판사를 운영 중이지만, 수익을 내기가 녹록지 않아 무척 헤매고 있다.

애초에 업계 관련 지식이나 인프라를 갖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책을 내려고 했는데 출판할 곳이 없어 직접 책을 내보려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게다가 책을 내려는 이유도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데 뜻이 비슷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려는 음흉한 수작이 90% 이상이었기 때문에 잘 팔릴 거라는 기대가 없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쓰고 있어서 글도 아주 자유분방하다.

흡사 일기장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 칭찬 백만 번을 드리고 싶다.

이 책에 대한 내 야망은 아무도 읽지 않는 도서관 보관용 서고 가장 끝줄 아래에서 세 번째 칸 오래된 책 냄새 속에 푹 묵힌 채로 가끔 누군가의 손길로 잠에서 깨어나는 원석이다.

잘 써서보다 살아가는데 읽으니 도움이 꽤 되는 책의 위치로, 이제 막 겨울에서 봄으로 세상 만물이 깨어나는 즈음에, 장마가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흐린 날에 우울해서 유가 내고 홀로 집에 있을 즈음에, 온갖 짜증스러운 더위가 다 가시고 막 불기 시작한 가을바람에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릴 즈음에, 한창 추운 겨울 새벽에 일찍 일어났는데 밖에 나가보니 고드름에 쨍한 겨울 햇빛이 반사돼서 눈을 괴롭힐 즈음에, 지나가듯이 어깨를 툭툭 칠 수 있는 책 이고프다.

장황했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나의 출판사는 건재하다.

좋은 의미의 건재함은 아니다.

벌이가 없으니 세상 풍파가 불던, 출판 업계가 불황이던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세상이 어려우니 시작과 진행을 조심스럽게 한다.

이미 늦게 시작했는데 지금보다 더 늦은 나이에 망하기까지 다시 되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은 나이에 뭘 시작한다는 건 빠른 속도보다 쓰러질 만한 상황이나 발목 잡힐 상황을 제거하며 신중하게 진행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한번 고꾸라지면 회복에 적어도 5년 이상 소요될 것이고 세월은 또 5년이 지나 나는 분명 50대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가계대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시피 진심으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몇 년 전만 해도 20대였는데 어느새 30대도 다 지나간다.

가장 반짝이던 시절에 스스로 흙 속에 파묻혀서 인생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이제야 뒤늦게 하나씩 인생의 단계를 밟아가는 내 처지가 참 가엽다.

젊은 친구들 보면 어릴 때부터 심각하게 사회에 피해를 주거나 남을 해치는 일 아니면 다 해보라고 하고 싶다.

어릴 때 못한 일 나중에 나이 먹어서 하려면 체력도 안 따라주고 환경적 한계도 많아 억지로 밀어붙여야만 가능한 상황이 반복해서 생기니 의지가 꺾이기 쉽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꿈이든 가능성이 몇 프로가 있든 계속 끊임없이 그냥 하는 사람 앞에 한계는 없다.

돈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당장 급한 불만 끌 수 있을 정도라도 있다면 꼭 살면서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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