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3장 #4 돌보는 일

by 단영화

수저의 길로 접어들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뀐 건 스스로 돌보려는 노력이었다.

미리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살면서 나 자신을 아주 막 다루는 성향이 짙다.

그런 성향의 출처는 당연히 가진 게 얼마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포기해야만 한다면 내 걸 포기하는 게 가장 간단했기 때문에 생겼다.

상황으로만 보자면 당연한 일이지만, 내 삶의 측면에서 보자면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가장 쉽고 만만하게 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라 좋은 일은 아니다.

레토르트 식품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3분의 정성이 있고, 컵라면도 익는 5분이 기대가 있으며, 패스트푸드도 주문하면 10여 분의 기다림이 있는데, 나는 나 자신을 그보다도 못한 대우를 했다.

되돌아보면 이해는 하지만 참 서글프다.

없는 이의 입장이란 알면서도 자기 손가락을 잘라 오늘을 먹어야 하는 때가 있다.

이는 경제적인 상황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응당 감정적, 정신적인 상황에도 해당한다.

예전엔 경제적으로 부자면 감정적, 정신적 부자가 될 거라고 믿었지만 요즘엔 각각 다 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뭐가 무엇보다 더 낫다고 비교할 순 없지만 인간적인 삶의 질을 기준으로 두자면 나는 정신적 부자를 가장 먼저 꼽는다.

이런 말은 내 주머니가 빵빵하고 난 다음에야 설득력이 생기니 지금 꺼내는 건 구석에 몰린 생쥐의 허세와 다름없다.

가장 이상적인 길을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정신적으로 상황에 맞는 정신적, 감정적 토대를 차근차근 밟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모든 걸 다 배울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전혀 필요 없겠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부딪치는 모든 상황에 대부분 타인이 있고 외부 환경에서 생기는 모든 충돌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촉구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튕겨서 엇나갈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쌓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방황하는 사업체의 대표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남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서 현실에 만족을 구한다면 가장 성장이 불균형한 상태이다.

어린이 시절에 삶의 기본 지표는 자기 자신이다.

맛본 음식이 내가 맛있는지, 오늘 한 놀이가 내가 재밌었는지, 어울리는 친구가 내가 신났는지, 부모님이 신경 써 주는 환경이 내가 만족하는지, 어린이는 나를 기준으로 행복하다.

어른이 되며 사회생활을 하려면 남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큰다.

배려는 나를 무시하고 남을 위해 양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생활에는 나도, 너도 포함한다.

너만 있고 나는 없거나 나만 있고 너는 없는 상황은 사회생활이 아니라는 말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이면 보라색이 되듯, 나와 너의 공통분모인 사회생활은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닌 제3의 색이다.

제3의 색에서 정하는 기준은 빨간색이 조금 더 들어갈 수 있고 파란색이 조금 더 들어갈 수 있다.

제3의 색은 보라색이라는 한 단어로 정한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색은 들어간 비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어린이 시절처럼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안다면, 내가 내 삶에서 남보다 훨씬 선명하다면, 공통분모가 되는 사회에서 어떤 색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하기란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战不殆)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란 말이다.

혹자는 삶을 전투라 일컫는다.

만약 삶이 치열한 대전투라면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유명한 철학자, 학자, 정치인, 장군 등등 많은 사람이 이미 다 했던 말이니 알면서 못하는 대표적인 일이라 하겠다.





국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돌본다고 표현하면 늘 많은 오해를 받는다.

아주 기묘한 일이다.

남에게 표현할 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챙긴다는 건 이기적인 사람으로 이야기가 통하곤 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면서 자신의 상황을 챙기는 사람 보고 이기적이라고 할까.

자기 관리의 대표적인 예는 운동과 요리, 영양제, 취미 생활을 주로 꼽는다.

예능에서 자기 자신을 챙겨야겠다면서 건강식품을 챙기거나 병원 진료를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러 가는 사람을 보여주면서 건강식품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아프기 전에 병원을 내방하고 맛집을 찾고 놀러 다니면 방탕하고 낭비벽이 심하고, 지 몸만 귀한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든다.

스스로 잘 챙겨서 사회에 아픈 사람만 줄어도 필요 이상의 의료비 낭비가 줄어드니 사회적으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다니며 운동을 하고 요리를 직접 해서 식사를 하고 취미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직장 외에 여유 시간이 있어야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생기니 뭘 해보든가 말든가 할 텐데 모든 직장이 같은 조건은 아니다.

이 어려운 확률을 뚫고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직장을 다닌다고 보자.

하루는 24시간이고 그중 대략 7시간을 수면에, 12시간을 직장 및 출퇴근에 사용한다고 치면 5시간이 남는다.

식사 시간 1시간 제외하면 4시간, 오차 범위 1시간을 잡으면 3시간이 남는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1시간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씻고 준비하고 이동하는데 추가 1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이제 1시간이 남는데, 이 시간에 장을 보거나 요리하면 하루를 낭비 없이 꽉 차게 사용한 셈이다.

운동과 취미를 병행하고 싶으면 하루에 다 할 수 없으니, 요일별로 나눠야 한다.

일주일에 절반은 운동을, 절반은 취미를, 하루는 휴식을 취한다고 보자.

사회생활을 하며 돌발적으로 생기는 경조사 이벤트와 지인을 만나 인간관계를 돌보다 보면 일주일에 운동과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준다.

여기서 대부분 차선의 선택지로 수면 시간을 줄인다.

1~2시간쯤 줄이면 수면 시간은 5~6시간이 된다.

인간의 육신은 기계가 아니라 굉장히 유동적이다.

특히 인풋 대비 아웃풋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떨어진다.

잠은 1~2시간 줄이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평소 대비 30% 이상 줄어들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자체가 고갈한다.

운이 좋아 타고난 체력으로 버틸 수 있다고 해도 기간이 영원하진 않다.

주변에 아픈 사람 중 젊은 시절 열정 없던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자신을 잃을 만큼 열심히 사는 건 아마 한국인의 가장 큰 종족 특징일 것이다.

뛰어난 열정은 육신과 정신력을 연료로 활활 불타오른다.

요즘 젊은 세대에 번아웃 현상이 많은 이유도 이와 같다.

10대 시절 너무 어릴 때부터 온갖 열정을 불태워 살면, 특히 재밌어서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닐 때, 100세까지 지속해야 할 생명력을 젊은 나이에 일찍 다 태워버린다.

생명력을 다시 채울 방법은 오로지 재미 하나인데 열정은 재미를 찾을 여유 시간을 주지 않는 법이다.

자기 관리란 현대 사회에서 이처럼 빡빡하다.

자칫 금방 여유를 잃고 예민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충돌 지점이 생길 때 세심하게 다루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주변엔 해소하지 못한 충돌의 결과들이 불만으로 남는다.

이쯤이면 이게 과연 자기 관리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자기 관리의 주된 이유가 남과 잘 지내는 훌륭한 사회생활이라면 남과 잘 지낼 여유가 없어지는 순간부터 이미 폭망 한 게 아닐까.

오히려 순수하게 아무 사심 없이 웃을 수 있다면 생산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마음 편한 게 나을 수 있겠다.

인간은 보통 어린이 시절까지 아주 건강하다가 이런저런 사회적 잣대에 물들면서 건강을 잃는다.

몇 해 전 일평생 막걸리와 두부만 먹고사는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건강 관리를 위해 평소 우리가 노력하는 모든 일에 비하면 정말 대충 사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그분은 건강하고 정정하시다고 한다.






자 사는 1인 가구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물론 결혼해도 돈이 많이 든다.

나 하나한테 쏟아붓던 경제를 배우자와 자식에게 나눠 투입해야 하니 벌이가 크게 늘지 않는 이상 파이를 나누는 일에 불과하다.

2인 이상 가구의 장점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경제력을 보태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1인 가구는 이 가계에 내가 아닌 어느 누구도 돈을 넣지 않으니 오롯이 내가 나를 감당해야 한다.

특히 1인 가구는 식비가 많이 든다.

라면을 끓여도 1개 끓일 때보다 2개, 3개 끓일 때 적은 물이 들어가고, 반찬을 소량으로 만들 때보다 대량으로 만들 때 재료비가 덜 들며, 소량 생산보다 대량 생산이 효율성이 좋다.

*스트코나 식자재 마트에서 식재료를 대량 구매 후 소분해서 사용하면 소량씩 구매하는 것보다 식비가 훨씬 줄어든다.

한 번 집밥에 길들면 외식에 드는 비용이 충격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취업한 업체는 세무사무소였다.

뭐가 안 맞았는지 알 수 없지만 2주 만에 세무사무소에서 짤렸다.

야심 차게 세무 자격증까지 구비해서 취업했지만 아마 업계 늙은 햇병아리라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비슷한 계열로 빠르게 재취업을 했고 비슷한 업무를 맡았다.

자격증 따느라 애쓴 것에 비하면 세무회계 지식은 1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공부했던 내용의 곁다리 정도는 잘 써먹었으니 나름 뿌듯했다.

원래 돈이나 경제 같은 관념이 빠삭한 편은 아니었다.

재취업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본 분야에 처음 관심을 두었는데, 세무회계였다.

얼추 감으로 적당히 가계 관리를 해왔는데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다 보니 늘 입출에 구멍이 있었다.

배워두면 어딜 가든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여자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라길래 냉큼 대들었다.

결정까지 10초밖에 안 걸렸지만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한 훌륭한 판단이었다.

서울에 올라오고 혼자 가계를 꾸려가며 매달 가계부를 작성했다.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집에 와서 회사에서 한 일 그대로 내 가계를 운영했다.

그동안 얼마나 돈을 대충 사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느라 버둥대며 인생을 낭비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이 관심 없는 분야도 한 번은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걸 또 체감했다.

편식이 비단 실제 먹는 음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겪는 경험에도 해당한다.

인생에 절대 안 된다는 일이 많을수록 가짓수만큼 인생 낭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배우고 잘 써먹은 덕에 생활은 매년 조금씩 나아졌다.

비록 월 급여는 알바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지만 하고 싶은 걸 할 만큼은 됐다.

이 나이에 처음 보는 나를 믿고 뽑아준 회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 맡은 업무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를 썼지만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업무가 익고 나서 나는 가계에 인풋을 늘려보려 자격증도 따면서 준비했는데, 확실히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가 뼛속 깊이 뜻이 전달되곤 한다.

학벌 좋은 사람들이 취업에 유리한 이유는 젊은 시절에 많은 시간을 취업에 유리한 시간에 투자했던 노력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몸으로 깨닫는다.

뒤늦게 발가락 들이밀면서 그들과 같은 선상에서 같은 대접을 받길 바라는 건 욕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도 응당 있다.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그들의 자리를 바라볼 때면 빛과 그림자처럼 반대로 일반적이지 않지만 자리를 잡은 다른 이들의 자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사회 평균을 0부터 100까지 표시한 평균 지표로 따졌을 때 평균에 속한 사람과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의 지표를 합해야 100이다.

얼추 따졌을 때 평균이 반, 비평균이 반이란 말이다.

반과 반이 잘 어우러져 사회가 돌아가는 거라면, 일반적인 자리가 아니더라도 노력을 차근차근 쌓으면 언젠가 내가 나로 만든 자리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고 책도 내고 하다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지금 이 문장이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다.

꼰대처럼 젊은 세대에게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야망이 있다면 야망에 맞는 삶은 찾아가란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나중에 나이 먹고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나로 사는 삶이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첫 번째이다.

나를 돌본다는 건 내 삶의 뿌리를 단단히 땅에 박는 일이다.

뿌리가 단단하면 위에 달린 가지나 잎이 바람에 날린다 해도 다음 해엔 반드시 새로 가지를 내고 잎이 자란다.

새로 다시 시작한다 해도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님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원하는 바도 가장 큰 틀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각자 생각하는 방법과 방향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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