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 웃는 일
사람은 생각보다 삶에 필요한 게 많다.
구색에 맞춰 기본 의식주만 갖추려 해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매년 한국 경제 수준은 좋아지지만 덩달아 물가도 같이 치솟아 요즘 함부로 외식하기 무서울 만큼 살벌하다.
식비만 올랐어도 다행이다.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면서 한때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저렴하게 팔았다.
사람들이 대거 쇼핑 대란에 편승하면서 인터넷 쇼핑 시장은 단기간에 거대 시장을 형성해 기존 유통업계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시장의 규모가 달라졌고 저렴한 가격을 벗어나 명품이나 디자이너의 개성 있는 옷처럼 다양한 수요가 늘었다.
그에 맞춰 옷 가격이 무섭게 상승하며 또 다른 기록을 연일 경신했다.
더 슬픈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폭발하는 엥겔지수와 면티 한 장 수십만 원을 넘어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주택 가격이다.
몇 년 전, 취업해서 부모님 집에서 독립했을 때 자취방 구하느라 꽤 애먹었다.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보증금을 구해야 했는데 상황이 순탄치 않았다.
빌린 보증금 이자에 월세까지 감당하려니 허리가 휘청일 지경이었다.
가계를 단단히 졸라매고 식비까지 최대한 줄여가며 보증금을 상환했을 때 오랜만에 기뻐서 마음 편히 고기를 사 먹었다.
차츰 여유가 생겨 텅 빈 집에 살림살이를 하나둘 채워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은 방이며 거실이며 짐으로 터질 지경이라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으니 감개무량하다.
맥시멀리스트의 삶이란 늘 그렇듯 뭘 사고 채워도 또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
이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한 군데서 살다 보면 짐이 이사하기 부담스러울 수준이 된다.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습관이 든 터라 간소하고 단순한 삶을 동경해 보기도 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인간에게 천성이 왜 있는지 절감했다.
돈 쓰는 재미로 사는 나는 인간의 삶에서 기적에 가까운 기능을 수행하지만 얻을 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가성비 끝판왕이자 극한의 효율을 자랑하는 한 가지를 남보다 대단히 많이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웃음이다.
옛날 TV쇼에 신바람 박사로 유명했던 황수관 박사님이 나와서 웃으면 복이 온다면서 인생에서 웃음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오죽하면 웃음 치료사 같은 직업이 생겼을까.
개인적으로 웃음을 치료의 방법으로 쓰려고 애써 웃음 치료사라는 직업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보다 TV 프로그램을 여러 방향으로 고민해 보고 수준 높은 개그 프로를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 황 박사님은 무척 유명했다.
나 또한 박사님의 주장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요즘 쇼츠 중에 타인에게 명언처럼 충고하는 영상을 가끔 보곤 하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대부분 사람을 움직이는 첫 번째 요소는 사람의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뛰어난 지능을 지녔어도 결국 몸은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과 같은 몸에 다른 뇌를 지녔고 큰 용량의 뇌로 인한 높은 지능 덕분에 사고를 하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통과 외부 환경의 요소로 신체는 변화를 겪고 특정 감각을 받는다.
아픔을 느끼면 기분이 나쁘고 기력이 떨어져 기분이 나쁘다.
오죽하면 옛 성인들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까지 남기셨겠는가.
웃음은 신체를 제어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한꺼번에 빠르게 잊도록 도우며 나아가 세상의 어떤 의사도 불가능한 일인 기분 전환이 순식간에 가능하다.
어릴 때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너무 나빠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날뛰고 싶은 기분을 걷잡을 수 없는 날이면 일부러 크게 웃었다.
당장 재밌는 책을 집어 들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몸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나를 웃기려고 갖은 애를 쓰다 보면 뭐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면 던지려던 필통도 다시 내려놓을 수 있었고 찢으려던 책도 곱게 덮을 수 있는 인내심이 생겼다.
나쁜 말, 상처 주는 말도 다섯 번 중에 세 번은 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다.
몸의 감각을 통해서 기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기분이 통제되지 않으면 당연히 온갖 손해가 발생한다.
*발(욕설임) 비용이라는 신조어를 들은 적 있다.
이 또한 기분이 나쁘니 돈을 써서 기분을 좋게 하겠다는 뜻으로, 일단 돈이 든다.
돈을 쓰면 쓴 만큼 아웃풋이 나와야 물질주의 사회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는데, 이 비용은 이름과 뜻에서 벌써 손해로 시작해서 손해로 끝난다.
이 비용을 쓴 적이 있다면 공중에 돈다발을 현금으로 뿌린 것과 같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혹시 해당한다면, 축하한다.
하루아침에 몇천억씩 번 졸부(猝富)나 되어야 평생 살면서 한번 해볼 수나 있을까 하는 미친 짓을 해본 거 아닌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시는 그러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웃음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이며 가장 저렴하고 가장 강력한 무기로, 가장 저렴하기도 하고 가장 비싸기도 하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기분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강압적 억압이 아닌 환기를 통해 생산성을 늘리라는 현명한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주머니 사정 가볍고 없는 게 많은 나는 스스로 대한민국 대표 웃(음)수저로 여긴다.
열심히 웃다 보니 남보다 아주 약간 마음에 공간이 있다.
덕분에 타인의 마음과 가엾은 사정을 돌아볼 정도인 그릇의 인간은 될 수 있지 않았나 가늠해 본다.
물론 무한정 받아들이거나 잘해줄 수는 없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라 일생에 반드시 타인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내게 다가온 사람이 그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사회의 작은 귀퉁이를 든든하게 받치는 한 사람의 몫 정도는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편하게 살았다면 편하게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도 살아보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스스로 자기 비위 맞춰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삶도 어딘가에는 있다.
때로는 무척 비관적이고 현실이 그렇다는 핑계로 쓴 말을 되뇌기도 한다.
내 삶의 가장 큰 난관은 일단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은 전체적으로 가난하다.
가난이 무슨 고난이냐, 굶어봤냐 하고 묻고 싶다면 굶어본 적 있고 생계를 걱정해 본 적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지 않냐고 묻는다면 가난에는 여러 단계가 있고 가난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알 수 있는 단계도 존재한다.
나는 가난이 가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10대 시절 내내 시간이 걸렸다.
계속 돈이 없어서, 그냥 가난이 가난인 줄 몰라서 생긴 습관이 꽤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0대 내내 내 친구들은 나를 짠순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게 왜 짠순이인 줄을 몰랐다.
돈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인간관계에서 친구들에게 돈을 어떻게 써야 쓰는 건지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내 동생은 나와 달라서 적어도 내가 일여 년에 걸쳐 모아놓은 저금통을 매번 털어가서 쓸 만큼 소비에 강한 친구였기 때문에 살면서 돈 쓰는 방법을 나보다 먼저 배웠다.
나중에 보니 친구들 사이에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내 동생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걸 알기는 했다.
돈이 없다는데 계속 매달려봤자 돈은 어디서 샘솟지 않는다.
돈 버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부모님도 모르고 주변 사람도 모르는데 나라고 알까.
나중에 20대가 다 지난 후에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미 말한 대로 나는 인간관계 자체가 어릴 때부터 큰 난관이었다.
소통이란 상호작용으로, 두 사람일 경우 주거니 받거니 쿵작이 맞아야 하고 세 사람 이상일 경우 연주곡처럼 박자가 맞아야 한다.
사회성이라 부르는 개념은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서 서로 맞는 사람과 적정한 선을 그을 수 있도록 연습하며 얻는 노력의 산물이다.
자기 자신 이외 어떤 사람도 대신해줄 수 없고 눈속임도 불가능하다.
오직 내가 나를 알아야만 타인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고차원적 정신 활동으로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깊은 성찰과 다수의 시도가 필요하다.
갓 타인을 인지하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감정이 요동치는 사춘기까지 극단적 상황을 겪어보며 적절한 선을 가늠한 뒤에 얻을 수 있는 특수 기술인 셈이다.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하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보기보다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사회적으로 타인과 섞이기 어려워 생기는 문제가 전혀 없어야 맞다.
나는 3세 무렵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술을 처음 익히는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
사람이 성장할 때 감정적, 사회적 감각을 익히는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20대가 되고 나서야 느꼈다.
만약 누군가 어릴 때 정립되지 않은 개념을 어른이 된 후에 인위적으로 익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살면서 죽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요즘 부모님들이 아이들 경험을 위해 어릴 때 또래 친구들이나 여러 사람과 교류를 시도하는 이유이다.
물론 이뿐만 아니라 어릴 때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애정관과 애착, 잘못된 이성에 의한 상처가 인생 전반에 남긴 상흔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어른들의 행동 중에 유독 성인 남성 어른이 보여준 행동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응어리가 되어 현재까지 풀어가야 할 미스터리로 남았다.
나에게 인생이란 이겨내야 할 일투성이에 견뎌내고 노력해서 정상궤도에 다가가야 하는 도전이다.
트라우마와 무의식에 새겨진 무언가를 알아내서 정의하고 인식해서 사회에 일원이 되고 문제가 되지 않게 다스려서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걷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모른다.
오히려 한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세상을 거부했던 시절에 나라는 인간 자체를 말살시켜 막아버리려고 했을 때가 살기는 더 편했다.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도구 다루듯이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으면 편하다.
다만 몇 년 가지 않아 기능이 하나씩 마비되고 망가져서 내가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다시 그럴 생각은 없다.
그놈의 자존감이며 인간의 영혼이며 생각하고 고려해서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수많은 인간 특성은 내가 나를 무시할 수도 없고 전부 받아들일 수도 없도록 하는 고통의 굴레다.
그래서 나는 웃기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