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야기 3

프랑스 에너지기업 - 나도 빽 쓸줄 알아!

by 스몰가이

금융자문사인 C사를 통해 사업주의 명확한 요구사항을 확인한 필자는 이들의 공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담당 부팀장님 및 팀장님과 함께 경영진 보고 자료를 수없이 만들었다. 핵심 내용은 우리가 왜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지면 안되는지,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 질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사내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우리가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지게 된다면 필자가 제일 우려했던 새로운 Market Practice, 뉴노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던 것이다. 따라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 이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여러번 경영진 보고를 하게 되었다.


필자가 사내에서 우군을 만드는 사이 우리의 영악한 적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날 회사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팀장과 부팀장이 과장 나부랭이에 불과한 필자를 찾아 왔다. 특히 기획팀장은 인사이동 이전에 IB부서에서 근무했으며,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필자의 직속 팀장이었다. 이들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들이 하는 질문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핵심 질문은 '왜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였다. 기획팀을 대표하는 회사의 핵심 인력들인만큼 순수한 의도로 우리나라의 수출지원을 위해서 그런 질문을 했을 수도 있으나, 필자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직감했다. 당시 3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던 필자는 필자보다 10여년이나 연배가 더 높은 선배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보면 건방진 답을 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 발언을 쏟아 냈던 것 같다.

"제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다양한 리스크 경감방안은 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지, 지원을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특정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회사가 망하면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더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 한 건에 대해 리파이낸싱 리스크 위험을 책임지는 순간 다른 모든 프로젝트도 똑같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만약 사고가 나면 우리 회사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입니다. 제발 저를 믿고 맡겨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중에 필자가 나이가 들어서 그들의 연령대가 되고 나서야 그들의 입장에서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 보았다. 한참이나 어린 직원이 선배들을 가르치려 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지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느꼈을 그 감정이 이해된다. 다행히 필자가 속해 있는 팀의 담당 팀장, 부팀장은 필자를 적극적으로 믿고 지원해줬다. 당시 IB 업무는 회사내에서 매우 생소한 분야였고, 관련 인력도 전체 인원의 5%도 되지 않는 분야여서 해당 업무를 경험해 본 직원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필자는 운이 좋게 30대 초반에 해당 부서로 발령이 나서 업무를 경험하고 있던 중이었고, 필자의 담당 팀장과 부팀장은 마흔을 넘겨 회사 생활을 한지 15년이 넘어 서야 비로소 IB 관련 부서로 인사이동을 할 수 있었는데, IB 업무 경력으로만 놓고 보면 필자보다 어찌보면 신입인이었다. 담당 팀장과 부팀장이 업무에 생소했던 만큼 필자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필자의 담당 부팀장은 성격이 호탕해서 회사내의 마당발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킹에 능했던 그는 어느날 담배 한대 피자며 필자만 밖으로 따로 불러 내었다. 그가 전해준 이야기는 다소 놀라운 것이었다.


"내가 기획팀장 직속 상사인 기획부장한테 불려 갔다 왔다. 너 기획부장이 기획부장으로 승진하기 전에 옛날에 IB 업무 팀장 했던 거 알지? E사 애들이 여러 인맥 통해서 기획부장한테 연락해서 컴플레인 했다더라. 그리고 기획부장이 나한테 말하더라. '그 사람들이 'Small Guy'가 위의 팀장, 부팀장 다 제끼고 지 멋대로 설쳐댄다고 하던데 너는 짬밥이 부팀장이나 되면서 밑의 애 하나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뭐하고 있냐??'라고"


필자는 선배가 전해준 말을 듣고 두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외국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 않게 뒤에서 빽 쓰고 장난질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필자의 담당 부팀장이 필자가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해서 다소 위축되어 있고, 선배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도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인류의 역사속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패배한 전투의 대부분이 내부의 분열에서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적이 전투가 개시되기도 이전에 우리 진지를 흔드는 이간질 책략은 어찌 보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전투 없이 승리할 수 있다면 시간적인 측면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베스트이지 않겠는가? 만약 필자가 거기에 무너졌다면 말이다.


협상에서 이간질 전략은 흔한 것이다. 외부의 적도 중요하지만 내부에도 항상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중에서도 나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하물며 남은 오죽 하겠는가? 같은 협상팀에 소속되어 있는 동료라도 무조건 나의 편일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내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한 이에게는 외부의 적은 내부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다.


따라서, 협상에서 승리하려면 내부에 우군이 항상 있어야 한다. 외부의 적이 그 어떤 경로로 쳐들어 오고 이간질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부로부터 든든한 신임을 받고 있다면 나의 뒤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앞만 보고 돌진해야 하는데 나의 뒤를 내 가족이, 내 형제가, 내 동료가 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면 어찌 전력을 다해 적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다행히 필자의 담당 팀장, 부팀장은 필자와 끝까지 함께 했다. 필자를 밑의 직원이라고 억누르지도 않았으며, 외압에 대해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사람들이었다. 또한, 필자가 한 말 때문에 다소 무안했을 기획팀장은 필자가 이 바닥에서 업무를 할 수 있게 도와 준 첫 팀장이었다. 입사 4년차에 처음으로 IB 부서에 전입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필자에게 기회를 준 사람이었다. IB 업무에 생초짜였던 필자에게 프로젝트를 맡겨 경험을 쌓게 해준덕에 지금의 싸움을 할 정도로 필자가 업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획팀이 우리팀의 업무권한을 침해하여 필자의 프로젝트에 개입 했다고는 보기 어려웠고, 설사 들리는 소문대로 우리의 적이 기획팀이라는 빽을 쓴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외부 고객과의 관계 설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기획팀의 입장을 고려 하면 한번 정도 우리팀 일에 간섭한 것은 서로 체면치례 정도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필자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가 남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쎈 상대인 적을 어떻게 제압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는 많이 복잡해져 있었다.


생각보다 강하다....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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