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야기 2

프랑스 에너지기업 -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리파이낸싱 리스크

by 스몰가이

필자의 협상 이력에서 2009년도는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해이다. 2008년 후반기부터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내가 하는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진행되던 모든 프로젝트는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글로벌 IB는 대규모 해고에 나섰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글로벌 IB 서울지점 사람들도 하나 둘 소리 소문 없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는 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잘렸더라, 누구는 잘리는 대신 퇴직금과 보상금으로 얼마를 받았다더라 등 당시 시장에서는 흉흉한 소문만 들려왔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망하지 않는 직장을 다녔기에 이런 암울한 상황이 당장 생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필자가 하고 있는 일에는 상당한 타격이 있었다.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자금 공급원 역할을 하던 글로벌 IB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이런 시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인생은 놀라움과 예외의 연속이라 했던가? 이런 시장 상황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글로벌한 수준의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예외였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 프랑스계 자본 E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예외였는데, 이들은 금융위기 이전부터 추진하던 바레인 가스복합 화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하였으나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인 H사가 이 프로젝트를 약 2조 원에 시공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프로젝트가 무산된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안 좋은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미국에서 들려오던 금융기관의 부도 소식도 어느 정도 무디어져 가고 있던 2009년 2월쯤이었던 것 같다. 사업주인 E사를 자문하던 프랑스계 은행 C은행과 세계적인 Law Firm인 S로펌이 우리를 찾아왔다. 당시 핵심 쟁점은 리파이낸싱 리스크였다. 발전소를 가동해서 전기를 판매하고 나오는 수익은 25년 동안 이어지는 데 반해 대출만기는 5년에 불과하여 리파이낸싱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국제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수익형 부동산 원룸 오피스텔을 1억 원에 사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치자. 오피스텔 1억 원을 자기돈 100%로 살 수 있겠으나, 대출의 레버리지 효과 (대출을 이용하면 얻게 되는 자기 자본 수익률 증대효과)를 감안하면 투자자는 투입되는 자기 자본을 최소화하고 대출로 나머지를 채움으로써 수익률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피스텔을 사기 위한 1억 원을 자기돈 2천만 원(20%), 은행돈 8천만 원(80%)으로 마련한다고 하면 이 은행돈 80%에 대해 저리의 장기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때 수익률이 올라갈 것이다.


만약 세입자가 25년의 월세계약을 맺고 매월 일정금액의 월세를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25년 동안 지급한다고 하자. 이 월세금액으로 은행 대출도 갚고, 수익도 내야 하므로 이 25년 동안 지급하게 되는 월세의 합계 금액은 당연히 오피스텔 원가 1억 원보다는 높을 수밖에 없다. 25년 동안 걷어 들이는 월세 금액의 합계가 1.5억 원이라 가정하면 한 달에 나오는 월세는 (1.5억 원/300개월) 50만 원이다.


가장 이상적인 금융구조는 25년 동안 나오는 월세에서 은행 이자 및 원금을 먼저 충당하고 나머지는 내가 수익으로 챙기는 것이다. 만약 은행 대출만기가 25년이 아니라 5년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자를 빼고 원금으로만 한 달에 (8천만 원/60개월) 약 130만 원을 갚아야 한다. 월세는 50만 원인데 은행에 한 달에 내야 되는 돈만 130만 원(이자는 계산 편의상 감안하지도 않았다)을 넘어가므로 아예 사업성이 나올 수 없는 금융구조이다.


만약, 매월 갚아야 하는 돈을 대출만기가 25년인 기준으로 설정하고 마지막 만기 때 남은 금액을 다 갚아야 하는 금융구조로 바꾸면 어찌 될까? 25년 동안 8천만 원을 갚아야 하므로 한 달에 갚아야 하는 원금은 약 27만 원(8천만 원/300개월)이다. 한 달에 나오는 월세가 50만 원이고 은행에 갚아야 하는 돈은 27만 원이므로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나온다. 다만, 이 경우 대출만기에는 약 6,400만 원(8천만 원-59개월 상환원금 합계 1,593만 원)을 일시에 갚아야 하므로 리파이낸싱으로 다른 대출을 찾아서 막지 못한다면 사업은 부도가 나게 된다.


평상시 같으면 이러한 리파이낸싱 리스크는 생길 수가 없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이 추진하는 인프라 프로젝트는 안정성이 높아 글로벌 IB가 너도 나도 대출하려 하므로 낮은 금리, 장기의 대출 조건을 제시하지 못하면 은행이 대출경쟁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서민들에게 은행은 거대한 갑이지만 삼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맞닥뜨릴 때는 은행은 철저한 을이 되고 기업이 갑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은행 자신이 부도가 당장 날 것 같은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은행도 자기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받아서 대출을 해주는 자금 중개인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즉, 은행은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돈을 빌려서 기업에게 다시 돈을 빌려주므로 고객들이 일시에 출금하는 뱅크런에 대비해야 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외부충격이 올 경우에는 평상시와 같이 장기로 대출을 해주기가 어렵다. 은행이 예금이 아니라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재원으로 다시 대출에 나선다면 신용경색 상황에서 장기 대출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필자가 하는 일은 이러한 은행에 대한민국 국가 신용에 준하는 대출보증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대출 보증은 상품의 성격상 직접적인 돈이 들어가지는 않으므로 대출 보증기관 입장에서는 10년이든 14년이든 얼마든지 장기보증이 가능하여 은행과는 입장이 달랐다. 따라서, 자기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바레인 프로젝트 이거 하나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 수출을 지원함으로써 정책적인 소임을 다 한다는 사명에 부합할 것이다. 하지만, Market Practice(시장관행)가 이 바닥에서는 중요한데,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 Market Practice가 되어 너도 나도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만들어 우리에게 떠 넘긴다면 결국 이는 필자가 속해 있는 기관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만약 국가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필자와 세계적인 기업 E사와의 피를 말리는 싸움은 시작되었다. 상대방도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 온 프랑스 대표 선수, 우리도 국제 협상 무대에서 꿀리지 않고 끝장 보는 대한민국의 대표선수 이 둘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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