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다 난리. 모르면 당신만 바보!
온라인 쇼핑에는 도가 트였다. 생수부터 매트리스까지. 살면서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은 '클릭'으로 해결했다. (요즘은 그마저도 손가락 '탭'으로 바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받은 택배 상자만 모아도 아파트 한 채 높이는 거뜬히 쌓고도 남을 거라는 사실이다. 한 때는 이렇게 축적한 나의 온라인 쇼핑법을 가지고 인터넷 방송을 해볼까 고민했을 만큼 이제는 사진만 봐도 실물 견적이 보이는 경지에 다다랐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오프라인 쇼핑을 고집한 것은 고가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패션 에디터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비사교적인 성격탓에 명품 매장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지만, 그런 물건을 살 때면 잘 꾸며진 매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직접 착용하고, 별로 살 생각이 없는 옷도 굳이 입어보곤 했다. 고민 끝에 고른 물건이 정성스럽게 포장되는 걸 지켜보는 것도 모처럼 누릴 수 있는 호사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매치스패션이 파격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브렉시트 파동으로 파운드화 환율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 '이만한 기회가 없다'는 거다.(매치스패션은 영국의 온라인 편집숍이다) 어디한번 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침대에 누워 매치스패션에 접속했는데, 이게 왠걸. 파격적인 가격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분더샵에서 보았던 슈즈 디자이너 말론 슐러의 레이스업 펌프스를 덜컥 주문하고 말았다.
예상외로 충동 구매의 결과는 성공적, 나아가 감동적이었다. 감각적인 대리석 패턴의 박스를 열어보니 정성스러운 손편지가 나왔고 "당신의 물건을 소중하게 포장했답니다. 부디 마음에 들길 바라요". 제품 포장을 담당한 직원이 직접 쓴 편지였다.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틈만나면 네타포르테, 매치스패션, 마이테레사닷컴같은 유명 온라인 편집숍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나의 첫 패션직구는 저렴한 가격때문에 시작됐지만 보면 볼수록 직구를 할 이유가 늘어났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실험적인 쇼 피스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레이블도 연일 쏟아졌다. 독일의 마이테레사닷컴은 작년 한 해에만 로저 비비에, 프라다, 오프 화이트, 아크네 스튜디오, 돌체 앤 가바나, 끌로에 등 수많은 브랜드와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으며 마이테레사닷컴은 발렌티노의 2017 F/W 컬렉션을 공식 출시일보다 일주일 먼저 판매했다.
럭셔리의 최극단에 있는 시계와 주얼리도 예외는 아니다. IWC,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쇼파드 등 내로라하는 시계주얼리 브랜드들이 경쟁하듯 네타포르테에 입점하더니 작년 5월에는 콧대높은 까르띠에마저 네타포르테를 통해 신제품 12점을 먼저 선보였다. 세상에, 매장에도 없는 까르띠에 시계를 온라인에서 살 수 있다니!
이 과감한 시도는 곧바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4000파운드(580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가 업로드된 지 단 2분 만에 한 아시아 고객에게 판매되는 기록을 세운 것. 정녕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아무리 고가의 제품이라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흐름을 제대로 짚은 곳이 모다 오페란디다. 모다 오페란디는 매 시즌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선별하고 자체적인 디지털 트렁크 쇼를 연다. 이를 통해 고객들이 예약 구매를 신청하면 그때부터 상품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런 독특한 프리오더 시스템은 이미 해외에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모다 오페란디의 고객 한 명은 연평균 7회 쇼핑하며 한 번 주문할 때마다 1400달러(약 150만원)를 기꺼이 지불한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베인 앤드 컴퍼니(Bain & Company)에 따르면 전 세계 럭셔리 마켓의 온라인 구매 비율은 현재의 8% 수준에서 2025년에는 20~25%까지 폭등할 전망이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들도 저마다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패션쇼가 끝난 직후부터 온라인 판매를(오프라인 매장은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See Now, Buy Now’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버버리가 대표적이다. 펜디는 파페치와 함께 온라인 커스터마이즈 서비스를 론칭했다. 캔아이 F 가방과 스트랩유의 컬러와 디테일을 자유자재로 조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오직 파페치와 펜디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패션 그룹인 LVMH 역시 자체적인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향후 몇 년 동안 럭셔리 e-커머스 마켓의 춘추전국시대가 예견된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서비스의 발전도 가속화되고 있다. 모다 오페란디는 일부 지역에서 무료 반품과 픽업 서비스를 시행 중이고 매치스패션은 쇼핑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퍼스널 스타일리스트 프로그램을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업무 시간에 한해 한국어 서비스도 가능하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배송 기간도 혁신적으로 단축했다. 추가 금액만 지불하면 3일이내에 세계 어디든지 배송이 가능한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배송 서비스에 가장 만족하고 있는 곳은 영국의 ASOS. 한가지 배송옵션(보통 20~30달러 사이)만 제공하는 마이테레사닷컴이나 네타포르테와 달리 ASOS는 배송기간에 따라 무료에서 40달러(정확히는 39.48)의 특급 배송까지 고를 수 있다. 무료배송과 특급배송을 모두 사용해봤는데, 실제 무료 배송은 10일이 걸렸고 특급 배송은 단 이틀만에 도착했다.
물론 해외 직구는 직접 제품을 경험해 볼 수 없는 태생적 한계(패션 카테고리에선 치명적이다)를 비롯해 환불 및 교환을 할 때 요구되는 복잡한 절차, 정확하게 얼마가 나올 지 예측하기 어려운 관세 등 여전히 많은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쇼핑의 무언가를 원한다면, 온라인에 접속해보자. 그곳에 새로운 별천지가 있으니까.
** 이 글은 <헤리티지 뮤인> 2월호에 실렸던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