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의 새로운 나이키, 디젤.
지난 십수년간, 광고계에서 꼽는 최고의 패션 광고주는 나이키였다. 광고는 몰라도 'JUST DO IT'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실제로 나이키 광고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나서 광고 크리에이티브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까지 평가받는다.
나이키를 제외하고 광고계에서 주목받은 패션 광고는 1990년대의 베네통을 꼽을 수 있다. 차별과 금기에 도전한 베네통의 광고시리즈는 매번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패션 광고는 예전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2008년경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 이후, 크리에이티브와 상업성의 팽팽한 대립은 결국 자본의 승리로 기울어졌고, 패션쇼마저 '팔리는' 옷의 전시장으로 전락한 시대에 광고라고 별다른 수가 있었을 리 없다. 유서깊은 명품 브랜드마저도 당장의 매출에만 치중한 결과 패션 광고는 어느새 셀러브리티의 외모 경연장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 광고알못인 필자가 보기에도 '와 이거 좀 많이 신박한데'라고 생각했던 캠페인이 있었다.
디젤의 'GO WITH THE FAKE'다.
우선 사진부터 보자.
아무 설명없이 이 사진을 보면 '허름한 거리, 이태원같기도 하고, 누가 봐도 디젤 로고를 베낀 데이젤(DEISEL) 로고, 짝퉁 매장이구나' 싶을거다. 아무리 봐도 그 이상으론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곳은 지난 뉴욕패션위크 기간동안 디젤이 운영한 팝업 스토어다. 짝퉁 데이젤 티셔츠는 모두 디젤의 디자인팀이 직접 만든 리미티드 에디션이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짝퉁 가격'에 판매됐다. 이날 저 옷을 산 사람은 그 사실을 알까..? 몰라도 그만이다. 그게 바로 디젤이 원한 것이니까.
디젤은 이 팝업스토어를 통해 '라벨이 패션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가격이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드레스든 츄리닝이든, 심지어 그것이 짝퉁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으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니까 'GO WITH THE FAKE'는 일종의 재밌는 사고실험인 셈이다.
이 캠페인은 올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무려 9개의 상을 수상했다. 칸 국제광고제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3대 광고제 가운데 하나다. 칸영화제로 유명한 프랑스의 남부도시 칸에서 열린다. (깐느, 칸느로 표기하기도 하는 그곳)
이게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캠페인 'GO WITH THE FLAW'와 그 후속작 역시 칸 국제광고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반드시 소리를 켜고 보자. 음악이 조각난 필름을 이어준다.)
GO WITH THE FLAW 1
https://www.youtube.com/watch?v=aYxG1ASrYKo
GO WITH THE FLAW 2
https://www.youtube.com/watch?v=GMsA2dyF46Id
프랑수아 루슬레가 감독한 이 캠페인의 첫번째 시리즈는 SNS를 통해 '편집된 일상'이 공유되면서 발생한 '완벽함', '무결점'같은 거짓 환상을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꼬집는다. 반대로 두번째 시리즈에서는 자신의 결점을 정말 다 숨긴다면, 그러니까 '완벽함'을 좇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디젤은 2018 칸 국제광고제에서 무려 13개의 트로피를 수상했다. 패션 브랜드 중에서는 유일하게 골드 트로피를 받았고, 디젤의 창립자 렌조 로쏘 역시 이 결과에 대단히 만족한 모양이다.
“이 순간을 기념하게 되어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디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건재하고 용감하게 컴백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는 바입니다.”
이렇게 성명도 냈다.
사실 최근 몇년간 패션계에서 디젤의 실적은 부진한 편이다. 디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갭, 게스같은 미국산 데님 브랜드들이 모두 같은 하락세를 겪고 있으니까.
진짜 실력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크리에이티브 브랜딩을 통해 디젤이 반전의 모멘텀을 맞을 수 있을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